[롯데 ‘사면초가’]
{잠실 면세점 재도전도 빨간불, 그룹 경영 현안 사실상 ‘올스톱’}
발 묶인 신동빈 롯데 회장…공들인 기업공개·M&A 줄줄이 ‘차질’
(사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미국 루이지애나 주 레이크찰스에서 6월 4일 열린 롯데케미칼 에틸렌 생산 공장 기공식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롯데그룹은 이번 검찰 수사에 따라 안팎으로 사면초가에 놓였다.

롯데는 최근 경영권 분쟁 진정 국면에서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홈쇼핑 황금 시간대 영업정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 등 각종 악재가 잇따르며 패닉 상태에 빠졌다.

게다가 검찰의 비자금 수사까지 겹치면서 그룹 주요 경영 현안이 ‘올스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작년 경영권 분쟁 이후 곳곳 암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1년 회장 취임 후 줄곧 ‘글로벌 경영’을 강조해 왔다. 중국과 동남아 유통 사업을 강화하고 2014년 상반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호텔을 인수한데 이어 지난해 5월에는 뉴욕 맨해튼의 랜드마크인 뉴욕팰리스호텔을 인수했다.

신 회장은 지난해 7월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 이후 기업 투명성 강화, 지배 구조 개선 등에 대한 쇄신 방안을 내놓는 등 경영권 강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롯데는 일본 기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텔롯데 상장과 주요 계열사 기업공개(IPO)를 통해 일본 주주들의 영향력을 줄이는 등의 쇄신안을 계획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사실 롯데그룹의 각종 사업 관련 악재는 지난해 경영권 분쟁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면세점 사업 독과점 논란이 불거지면서 7월 서울 지역 신규 시내 면세점 도전에 실패했다. 롯데면세점은 또한 월드타워점(잠실) 사업권까지 잃었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6월 30일 문을 닫아야 한다.

올해 들어서도 악재는 계속됐다. 롯데그룹은 올 초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다시 위기를 맞았다. 롯데마트가 2006년 11월부터 2011년 8월까지 판매한 자체 브랜드(PB)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는 사망자 16명 등 총 41명의 폐질환 피해자를 발생시켰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특별수사팀은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롯데마트 전 사장) 등 살균제 제품 제조·판매에 관여한 업체 관계자 5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지난 6월 11일 구속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은 지난 2월 29일 롯데마트를 운영하는 롯데쇼핑 등기 임원 중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재직한 주요 임원 43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롯데홈쇼핑은 지난 5월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프라임 타임 영업정지’라는 사상 초유의 강력한 제재를 받았다. ‘롯데홈쇼핑이 지난해 말 재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고의로 제출 서류 중 비위 임원을 누락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따른 중징계였다.

롯데홈쇼핑은 오는 9월 28일 이후 6개월간 프라임 타임(오전·오후 8~11시)에 방송을 내보낼 수 없게 된다. 롯데홈쇼핑은 프라임 타임 영업정지로 6개월간 약 6000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재승인 과정에서 임직원 비리 등으로 인해 승인 기간이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는 불이익도 받았다.

검찰의 압수 수색 직전에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호텔롯데는 당초 오는 6월 29일 상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 이사장의 면세점 입점 로비 연루 의혹으로 상장 일정이 7월 21일로 한 차례 연기됐다.

◆쇄신안 상징이던 ‘호텔롯데 상장’
발 묶인 신동빈 롯데 회장…공들인 기업공개·M&A 줄줄이 ‘차질’
(그래픽) 윤석표 팀장

검찰의 이번 수사로 호텔롯데의 IPO는 무기한 연기됐다.

호텔롯데는 “최근 대내외 현안과 관련, 투자자 보호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공모를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지난 6월 13일 금융감독원에 상장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호텔롯데는 당초 상장을 위한 4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시설 투자 등에 활용할 계획이었다.

한편 롯데그룹은 호텔롯데의 상장 작업을 계속할 방침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호텔롯데의 상장 작업을 7월까지 마무리해야 하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한 변경 신고 등 절차 이행이 물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상장 여부를 관계 기관과 신중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호텔롯데 상장은 일본 주주의 지분율을 낮추고 주주 구성을 다양화하는 등 롯데그룹 지배 구조 개선의 핵심 사안”이라며 “향후 방안에 대해 주간사 및 감독 기관과 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신동빈 회장도 지난 6월 14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 레이크찰스에서 열린 롯데케미칼 에틸렌 생산 공장 기공식 직후 “호텔롯데의 상장은 무기한 연기가 아니고 다시 준비해 연말까지는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호텔롯데) 상장은 국회에서 국민과 약속한 사항이므로 꼭 지키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호텔롯데 상장이 연기되면 다른 계열사 IPO도 미뤄진다.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IPO 이후 롯데정보통신과 코리아세븐 등의 계열사를 차례로 상장해 그룹 지배 구조를 개선할 계획이었다. 이를 통해 신 전 부회장과 벌이고 있는 경영권 분쟁을 최종 마무리하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로 6월 25일로 예정된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등기이사직 퇴진을 더욱 강하게 요구할 전망이다.

연말로 예정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사업권 재도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면세점 입점 비리와 비자금 수사로 면세점 사업권 심사 배점 기준인 사회 환원과 상생 협력 노력 등에서 감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롯데면세점은 “연말까지 약 6개월간 매출 3600억원을 비롯해 임대료 손실 등 총 4000억원의 손실을 감내하고서라도 월드타워점 재개장을 위해 차분히 준비하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해외 기업 인수에도 급제동
발 묶인 신동빈 롯데 회장…공들인 기업공개·M&A 줄줄이 ‘차질’
(사진) 롯데그룹이 검찰 수사 등 잇따른 악재로 곤욕을 겪는 가운데 6월 14일 추가 압수수색이 진행된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롯데케미탈 본사. /(연합뉴스)

글로벌 영토 확장에도 타격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 때문이다.

롯데는 검찰의 압수 수색이 벌어진 6월 10일 인수 의향서(LOI)를 제출해 놓은 미국 석유화학 회사 액시올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철회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6월 3일 폴리염화비닐(PVC) 염소 생산 업체인 미국 액시올을 사겠다는 LOI를 제출했다.

액시올은 롯데케미칼이 총 2조9000억원을 들여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짓는 에탄가스 분해 설비(ECC)에 10%를 투자한 파트너사다. 롯데는 액시올이 최근 미국의 다른 화학회사인 웨스트레이크의 적대적 M&A ‘타깃’이 되자 인수 의향을 밝혔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롯데케미칼은 곧바로 액시올 인수 제안을 철회했다.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은 “검찰 수사로 롯데케미칼의 대외 신인도가 훼손되면 자본시장에서 인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며 “인수 계획 철회는 아쉬움이 크지만 현재의 엄중한 상황을 감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재계와 롯데그룹 등에 따르면 호텔롯데는 최근까지 1조7000억원 규모의 미국 면세점 인수 협상을 진행하다가 검찰 수사 이후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 여파로 호텔롯데 상장이 불발돼 인수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서다. 롯데제과를 포함한 8개 롯데 계열사가 추진하던 물류 회사 현대로지스틱스 인수도 사실상 중단됐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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