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 말 기업 수사]
{MB 때도 한화·태광 등 강도 높은 수사…레임덕 차단 노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이젠 놀랍지도 않다. 익숙한 풍경이다. 정권 말이면 늘 뒤숭숭하기 마련이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 임원의 이야기다.

최근 검찰이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그룹에 대해 전격 압수 수색에 나서자 재계는 정권 말만 되면 불어닥치는 ‘사정 바람’이 이번 정권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로 이 임원의 말처럼 한국의 재계는 정권 후반부면 어김없이 사정의 광풍에 휘말린다는 공통점을 보여 왔다. 특히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1980년대 이후 정치권에서부터 촉발된 검찰의 칼끝은 항상 재계를 향해 왔다.
[롯데 수사] 임기 4년 차엔 어김없이 사정 ‘칼바람’
(사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 1987년 국제그룹 공중분해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같은 사정 바람이더라도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 정권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을 사전에 차단하고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로 사용되는 ‘권력 친화형 사정’과 반대로 권력형 비리가 불거진 것에 대한 단죄의 성격인 ‘권력 견제형 사정’이다.

큰 틀에서 볼 때 현 정부의 수사는 전자인 권력 친화형 사정으로 비쳐지고 있다. 현 정권의 측근이나 친인척 비리가 아닌 대기업 비리 수사로 사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레임덕을 차단하려는 정부의 ‘군기 잡기’로 읽히는 이유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역대 정권에서도 몇 차례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두환 정부인 5공화국(1981~1988년) 시절 벌어진 국제그룹 사정 조사다. 당시 2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순위 7위 국제그룹은 정관계 로비 의혹에 휘말리면서 1987년 7월 정부가 추진한 부실기업 정리라는 구호 아래 공중분해됐다.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내외가 전두환 정권에 밉보이면서 구조조정의 칼끝이 국제그룹을 향하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시 재계는 정부의 눈치를 보며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양 회장은 당시를 “대통령 자리는 참 좋다. 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으니”라고 회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4년째인 2011년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사정 기관을 동원해 재계에 대한 수사를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한화·태광·오리온·금호석유화학·SK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검찰 수사선상에 올려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 임기 말, 권력형 비리 사건도 줄이어

그런가 하면 역대 정권들은 집권 말인 4년 차에 권력 비리나 정경유착형 게이트로 얼룩져 휘청대다가 사정의 칼바람을 맞고 국정 운영의 동력을 순식간에 상실한 경우가 유독 많았다. 이는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 노태우 정부 이후 이명박 정부까지 공통적으로 반복됐다.

노태우 정부 4년 차인 1991년에는 권력형 비리인 ‘수서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사정의 칼바람이 불었다. 개발제한구역이던 서울 수서·대치 공공용지에 서울시가 아파트 개발 특혜를 내줬고 특혜를 받은 한보그룹이 정치권에 로비한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장병조 당시 청와대 비서관과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국회 건설위원장이던 민자당 오용운 의원 등 의원 5명이 구속됐고 ‘보통사람’을 외치던 노태우 정권의 국정 장악력은 단숨에 추락했다.

1996년 김영삼 정권 당시에는 측근인 장학로 청와대 전 제1부속실장이 17개 기업으로부터 27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며 사정의 바람을 맞아야만 했다.

또한 같은 해 감청 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 비리까지 불거지며 이양호 국방부 장관까지 사정 당국의 감시에 걸려들었다. 이듬해 한보 사태 속에 아들 현철 씨까지 구속되자 김영삼 정권은 회복 불능 상태가 됐다.

김대중 정권 역시 말미에 정현준·진승현·이용호·윤태식 등 이른바 4대 게이트가 이어졌다. 4대 게이트는 벤처 열풍을 이용해 투자자들의 돈을 그러모았고 이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를 벌였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2001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무현 정권은 4년 차인 2006년 '바다 이야기' 파문에 휩쓸렸다. 사행성 게임 산업에 노무현 정권 실세들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도덕성을 앞세웠던 노무현 정부는 치명상을 입었다.

이명박 정부는 앞서 밝힌 대로 임기 4년 차에 사정 기관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재계에 대한 수사를 벌였지만 측근들의 비리가 무더기로 터지면서 검찰 사정은 본격적인 레임덕의 단초가 되고 말았다.

정권 실세들의 무덤이 된 SLS 사건, 씨엔케이 주가조작 의혹,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저축은행 비리와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등이 비리 릴레이처럼 전개됐다. 임기를 1년여 남겨둔 시점에 비리에 연루됐거나 의혹을 받은 측근이 18명이나 됐다.

cwy@hankyung.com

[기사 인덱스]
-경영권 분쟁에 검찰 수사까지…롯데 최악의 위기
-1주일 새 롯데그룹 32곳 압수수색 ‘오너 일가 정조준’
-[롯데의 창과 방패] 검찰 특수통 VS 검찰 출신 변호인단
-발 묶인 신동빈 롯데 회장…공들인 기업공개·M&A 줄줄이 ‘차질’
-신동빈·신동주, ‘6월 25일’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서 또 격돌
-롯데, 이명박 정부 때 2배로 몸집 키워
-[롯데 검찰 수사 후폭풍] “경기 살린다더니…” 투자 위축 우려
-[롯데 수사] 대통령 임기 4년 차엔 어김없이 사정 ‘칼바람’
-[기업 사정 어디까지] 검찰·국세청이 ‘총대’…기업 ‘초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