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리학 카페]
{남녀의 사랑 방식 서로 달라…남자는 기존 폴더 보존하는 ‘새 폴더 만들기’}
‘잉그리드 버그만과 김민희’ 그들의 사랑은 ‘덮어쓰기’일까
(일러스트 김호식)

[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할리우드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은 일세를 풍미했다. ‘카사블랑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에서 열연했다.

그녀가 생면부지의 이탈리아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 ‘무방비도시’를 보고는 사달이 났다. “감독님의 영화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혹시 여배우가 필요하다면 제가 달려갈게요!”

버그만은 곧장 이탈리아로 날아갔고 둘의 로맨스가 시작됐다. 문제는 두 사람이 유부남·유부녀였다는 것. 당시에는 할리우드도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버그만은 로셀리니와의 스캔들 때문에 오랜 기간 손가락질 받았고 영화 출연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요즘 홍상수 감독과 여배우 김민희 사이의 로맨스로 전국이 야단법석이다. 세계적인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을 김민희와 동렬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 50대 중반의 유부남 홍상수와 30대 초반의 김민희는 졸지에 나잇값 못하는 불륜의 주인공이 됐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타인에게 매력을 느끼는지를 근접성, 신체적 매력, 유사성 등 3가지 조건으로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영화 한 편을 찍으려면 최소 6개월은 걸린다. 밤낮으로 가까이 얼굴을 대하며(근접성), 같은 영화판에서 일하는(유사성) 유명 감독과 미모의 여배우(신체적 매력)가 서로에게 끌릴 확률은 상당히 높다.

단순히 낯선 곳으로 여행만 떠나도 마음이 설레는 법이다. 풍광 좋은 지방이나 해외에서 장기간 로케는 사람들의 긴장을 많이 이완시켜 로맨틱한 감정에 쉽사리 휩싸이게 만들 것이다.


◆ 진화심리학으로 본 불륜과 사랑

그렇다고 모든 남녀가 무조건 맺어질까. 그런 조건에서 맺어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소리일 뿐이다. 홍 감독은 현재의 부인을 미국 유학 중에 만났고 딸이 하나 있다고 들었다.

심리학자인 로버트 스턴버그는 남녀 간의 완전한 사랑은 친밀감과 열정과 책임감, 이 세 요소가 모두 충족돼야 한다고 본다. 어떤 남녀가 서로 가까워져서(친밀감), 애정의 불꽃이 일어날 수(열정)도 있다. 하지만 그건 한때의 ‘낭만적인 사랑’일 뿐이다.

콩깍지 사랑이 장기적인 로맨스로 이어지려면 상대방에 대한 헌신(책임감)이 필요하다. 홍 감독은 아마도 지금까지 현재의 부인과 자신이 가진 시간과 자원을 공유하고 딸아이의 양육에도 신경 써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집을 나와 미모의 여배우와 함께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 홍 감독의 친밀감과 열정은 부인에게서 다른 여인에게로 옮아갔고 책임감도 보이지 않는다. 온전한 사랑의 3가지 요소 중 단 하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별을 맞는 방식에는 남녀 차이가 있다고 한다. 뇌과학자인 모기 겐이치로는 그걸 컴퓨터 파일 작업에 빗대 이렇게 말한다. “남자는 자신이 경험한 사랑을 하나하나의 폴더에 보존하고 여자는 이전의 폴더에 덮어쓴다. 결국 여자들에게 사랑은 단 하나인 셈이다.”

과연 그럴까. 잉그리드 버그만은 할리우드로 복귀하고 로버트 로셀리니 감독과도 헤어진다. 물론 그녀는 “남들은 내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나는 멋진 삶을 살았어요. 다시 태어나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라고 했다.

버그만의 말을 들으면 과연 그녀는 전 남편과의 사랑이라는 폴더 위에 로셀리니 감독과의 사랑을 ‘덮어쓰기’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새폴더를 만든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의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 분)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러면 홍상수 감독은 어떨까. 그는 현재 부인과의 사랑이라는 폴더 이외에 김민희와의 사랑이라는 또 하나의 폴더를 만든 것일까. 그렇다면 낭만적인 사랑이 식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새로운 사랑에 책임감이 더해지면서 장기적인 로맨스로 들어갈까.

진화심리학에서는 7개의 부분 자아가 있다고 본다. 새로운 짝을 찾아 헤매는 짝 획득 부분 자아, 좋은 배우자를 지향하는 짝 유지 부분 자아, 착한 부모를 지향하는 친족 보살핌부분 자아 등이다. 홍 감독과 김민희는 짝 획득 부분 자아가, 홍 감독의 부인은 짝 유지 및 친족 보살핌 부분 자아가 과도하게 활성화돼 있다.

어떤 자아가 가장 활성화하느냐에 따라 영화감독과 여배우의 로맨스를 바라보는 시각도 첨예하게 갈라진다. ‘간통죄가 위헌 결정으로 이미 사라졌는데 무슨 시대착오적인 불륜 논쟁이냐’고 핏대를 세우는 사람, ‘남의 사생활 간섭하지 말고 당신 일이나 잘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 ‘헌신짝처럼 내던져진 30년 조강지처를 동정하며 감정이입한 것뿐이다.

그게 무슨 위선이고 사생활 침해 문제인가’라고 분노하는 사람까지 반응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기야 홍 감독이 현실에서 찍는 영화의 결말이 어떨지는 아직은 그 자신도 잘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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