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신인맥 (10) 두산그룹
‘매각’과 ‘M&A’로 재충전… 턴어라운드 끝내고 미래 준비 ‘박차’
박승직 창업자에 이어 아들인 박두병 초대 회장, 손자대인 박용곤·박용오·박용만 회장 시대를 거쳐 4세 회장이 탄생한 것이다.
박정원 회장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고 박두병 초대 회장의 맏손자다. 두산으로서는 오너 4세대의 맏형이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그룹 회장에 오르게 된 셈이다. ◆밑바닥부터 쌓아 온 내공 통할까
박정원 회장은 그동안 그룹을 이끌어 갈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아 왔다. 박 회장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1985년 두산산업 사원으로 입사해 31년간 두산의 주요 계열사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일본 기린맥주 과장, 오비맥주 상무, 두산상사 BG(Business Group) 대표를 역임했고 2009년부터 두산건설 회장과 두산베어스 구단주를 맡았다.
특히 1999년 (주)두산 부사장으로 두산상사BG를 맡은 뒤에는 수익 사업 위주로 사업 영역을 정리함으로써 뛰어난 경영 능력을 선보였다. 당시 두산상사는 그룹 주력 사업이 중공업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종합상사라는 업종 자체가 불경기이기도 했지만 취약한 재무구조와 수익 사업 부재가 두산상사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박 회장은 수익 사업 위주의 과감한 포트폴리오 개편을 진두지휘하며 두산상사를 맡은 지 불과 1년 만에 ‘매출 30% 신장’을 이끌어 냈다.
또한 2007년 (주)두산 부회장에 이어 2012년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에 올라 두산그룹의 주요 인수·합병(M&A) 의사 결정을 이끌며 남다른 경영 감각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 밖에 박 회장은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 시절에 2014년 연료전지 사업, 2015년 면세점 사업 진출 등 그룹의 주요 결정과 사업 추진에 핵심 역할을 했다. ‘동대문 상권의 부흥과 상생’이라는 전략 역시 박 회장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연료전지 사업은 2년 만에 수주 5870억여원어치를 올리는 등 (주)두산의 신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위기의 두산그룹’을 살릴 박 회장의 승부사 기질에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는 과묵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소위 은둔형 최고경영자(CEO)로 불려 왔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승부사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두산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지난해 1조70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최악의 실적을 거둔 두산그룹이 턴어라운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격 경영’을 그룹 회장 취임 화두로 내세운 박 회장은 부담감을 줄이고 신성장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두산그룹은 1분기에 2536억원의 당기순이익(연결 기준)을 달성해 지난해 4분기 적자(1조2855억원 순손실)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두산인프라코어·두산중공업·두산건설 등 지난해 4분기 연결 기준 적자를 기록한 주요 계열사들이 모두 1분기에 흑자로 돌아섰다.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줄이고 이익을 늘리며 내실을 다졌다. 두산그룹의 이번 흑자 전환은 4년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던 실적이 반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두산그룹 연간 순이익은 ▷2012년 2000억원 ▷2013년 1300억원 ▷2014년 300억원으로 계속 감소하다가 2015년 1조7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악화 일로였다. 중국 건설 경기 악화와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지난해까지 두산인프라코어·두산건설·두산엔진 등 주요 계열사가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
이에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859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경영난이 최고조에 달해 결국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이를 발판으로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4분기 1939억원의 적자에서 올해 1분기 1112억원의 흑자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두산건설은 영업이익이 지난해 4분기 1962억원 적자에서 올해 1분기 245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두산중공업은 같은 기간 3857억원 적자에서 894억원 흑자로 개선됐다. 두산엔진은 같은 기간 185억원 적자에서 17억원 흑자로 반전됐다. ◆발빠른 구조조정 성과가 실적으로
이렇듯이 두산그룹은 올해 새로운 수장을 맞으면서 실적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원동력은 발 빠른 구조조정이다. 특히 ‘매각’과 ‘M&A’를 통해 키워 온 내성이 현재의 실적 개선으로 나타나고 있다.
두산은 2014년 KFC 지분을 매각해 1000억원을 조달한 것을 시작으로 계열사와 사업부, 자산들을 대거 처분하고 있다. 방위산업체 두산DST(3538억원)와 한국항공우주산업(3046억원)의 지분은 한화에, 두산인프라코어의 공작기계 사업부(두산공작기계, 1조1300억원)는 사모 펀드 MBK에 처분하기도 했다.
두산동아와 광산 장비 업체 자회사 몽타베르, 건설용 레미콘 제조업체 렉스콘도 매각했다. 두산이 2년간 확보한 자금은 3조2500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두산이 2007년 인수한 글로벌 소형 건설 장비 1위 업체 밥캣도 최근 성과를 내고 있다. 당시 5조원(49억달러)에 매입한 밥캣은 인수 이듬해 글로벌 금융 위기가 불어닥치면서 2년간 1조원 이상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며 ‘M&A의 실패작’이라는 오명을 써 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북미 지역의 건설 경기가 살아나면서 실적이 회복되고 있다. 지난해 매출 4조407억원, 순이익 1481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두산그룹은 지난 7월 4일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을 신청했다.
밥캣은 외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패스트 트랙(상장 간소화)이 적용돼 늦어도 10월까지는 상장할 것으로 보인다. 상장 후 시가총액이 4조원 안팎으로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 측은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차입금을 갚는 데 쓸 계획이다.
밥캣의 상장이 완료되면 그동안 두산그룹이 진행해 온 일련의 자구안이 끝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주)두산이 두산중공업을 지배하고 두산중공업이 두산인프라코어를, 이어 두산밥캣으로 이어지는 지배 구조도 안정화될 전망이다.
◆산적한 과제들…박정원식 해법은
물론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구조를 대폭 개선했지만 이것만으로 두산이 정상 궤도에 올랐다고 볼 수는 없다. 아직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미래 먹거리인 신성장 동력의 발굴이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박 회장은 지난 3월 취임식에서 “현장에서는 기회가 보이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공격적인 경영을 두산의 색깔로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곧바로 실행에 나섰다. 취임 석 달 만인 지난 6월 미국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 업체 ‘원에너지시스템스’를 인수하고 사명을 두산그리드텍으로 변경했다.
이 업체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테슬라 출신 엔지니어들이 2011년 설립한 회사로, 에너지 저장 장치(ESS) 시스템 제어 소프트웨어를 북미 전력 업체에 공급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 왔다. 인수 금액은 수백억원 선에 불과하지만 그룹의 미래 수익원을 확보하는 데 알토란같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박 회장은 이미 2014년 연료전지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국내 업체인 퓨얼셀파워와 미국 클리어엣지파워를 인수해 2년 만에 수주액 659%, 매출액 221%를 끌어올린 경험이 있어 더욱 기대를 모은다.
이 밖에 지난 5월 문을 연 시내 면세점을 얼마나 빨리 안착시키느냐도 박 회장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서울 동대문에 자리 잡은 두타면세점은 아직 제품 구색이 완벽하지는 않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두산면세점은 당초 목표했던 매출액(연간 5000억원)에 비해 턱없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두타면세점의 하루 매출은 4억원 수준이다. 연 매출 목표를 채우려면 하루 13억원의 매출을 올려야 하는데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앞서 문을 연 신라아이파크면세점(11억원), 갤러리아면세점63(6억원)은 물론 중소기업인 SM면세점(4억5000만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루 차이로 오픈한 신세계면세점(5억원)에도 뒤진다.
두산면세점의 부진은 유커(중국인 관광객)를 끌어당길 콘텐츠를 충실히 확보하지 못한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부 방침에 맞춰 급하게 문을 열긴 했지만 면세점 흥행의 주요 요소인 3대 명품(에르메스·샤넬·루이비통) 입점이 감감무소식이다.
여기에 그동안 구조조정을 벌이며 발생한 ‘20대 희망퇴직’, ‘면벽 근무’ 등 낮아진 기업 이미지 개선도 필수 과제다. 박 회장도 이 같은 우려를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회장에 선임된 직후 곧장 두산베어스의 전지 훈련장이 들어선 일본 미야자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물론 단순히 구단주로서 코치진과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두산베어스가 잠재력 있는 신인 선수를 발탁하고 꾸준히 기회를 부여해 성장시키는 ‘화수분 야구’로 정상에 올랐듯이 두산그룹 내부에도 화수분 DNA를 주입해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은연중에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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