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 얼마 전 유명한 오페라를 봤다. 젊은 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였다. 그런데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실망이 컸다.
목소리가 잠겨 거의 노래가 장내에 퍼지지 않았고 나이가 지나치게 많아 보이는 배우는 배역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휴식 시간에 관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남자 주인공의 문제점을 신랄히 비판했다.
알아보니 그는 70이 넘은 노인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 고령이 돼 이제 목소리도 변하고 체력도 떨어져 청년 주인공을 배역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 정도라면 본인이 알아서 맡지 말았어야 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여자 주인공이 이 불균형을 극복하느라 힘들어 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공연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출연진도 진행 팀들도 모두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관객들이었다.
그의 경력을 보니 참으로 대단했다. 그는 일류 대학을 졸업했고 각종 유명한 상을 수상했고 유수의 음악대학과 각종 단체의 장을 역임한 경력을 자랑했다.
그런 경력과 영향력 때문에 하고 싶은 역할을 고를 수 있었을지 모른다. 또는 그 이름 때문에 주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라고 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연 책임자도 본인도 그렇게 하면 안 됐다.
많은 관련자들을 힘들게 하고 결국은 본인의 명예에도 흠이 가는 결과가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오페라의 질을 떨어뜨리고 관객을 실망시킨 것이다.
필자는 나이가 들면 물러가라는 이야기나 나이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재적소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오페라의 남자 배우처럼 배역에 어울리지 않으면 과거가 아무리 화려하고 권한이 있더라도 그 역할을 맡지 말아야 한다.
그가 주인공에 대한 욕심만 없었다면 멋진 오페라를 만드는 일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많았을 것이다. 그의 풍부한 경험을 살리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다른 쪽의 일을 했다면 모두가 더 만족했을 것이다.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인공판막 교체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가 있었다. 수술 부위가 위험했고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담당 병원에서는 수술에 성공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환자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이 분야에 가장 권위 있는 의사를 물색하고 그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신속히 보내고 관련 자료와 인력도 지원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환자가 치유됐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사리는 명확하다. 실력 있는 사람이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로 의사의 경력이나 유명 병원의 체면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일을 가장 잘해 낼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해 맡겨야 멋지게 일이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부총재로 갔던 사람이 업무 부적합으로 휴직하고 잠적해 국제적 망신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그는 과거 KDB산업은행 회장으로 있으면서도 구조조정 등 여러 의사결정을 망친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국가 위신을 실추시켰다. 실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고 자리를 줬기 때문이다. 우리 인사 시스템의 맹점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력 있는 사람들을 삼고초려해 선발하면 되는데 권력자의 대선 캠프, 같은 지역, 같은 학교 사람이었다고 해서 보상으로 자리를 준 결과가 국제적 망신으로 나타났다.
다른 공기업에도 이런 일이 무수히 일어나고 있고 비례대표 등 정치권에도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 자의적인 인사 때문에 국력이 떨어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적재적소가 핵심이다. 기업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찾아보면 인재는 수도 없이 많다.
첫째, 그 자리를 맡을 최적의 사람을 널리 찾아야 한다. 둘째, 특정한 사람에게 꼭 한자리를 주려면 그 사람에게 적합한 자리를 찾아 줘야 한다. 셋째, 인사권자는 각 자리의 중함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선발에 경쟁이 있어야 한다.
경쟁은 서로 싸워 이기는 개념이 아니다. 경쟁은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 가장 좋은 가능성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이제 자의적 인사의 종식을 고할 때다. 제발 엉터리 오페라를 만들지 말고 엉터리 수술을 해서 국민들을 죽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오직 조직이나 국가의 경쟁력을 기준으로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 결국 조직의 업적은 모든 구성원들의 업무 성과이고 그 성과는 그 자리에 최고의 사람들이 갔을 때 이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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