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직장 선택을 ‘집을 사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해야
당신은 직장의 ‘세입자’입니까?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직장을 옮겨야 할까, 남아야 할까.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이 바뀐다. 옮기려면 새 직장을 찾아야 하는데 좋은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또 찾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남아 있자니 답답하다. 연봉은 성에 안 차고 일만 계속 늘어 성과 스트레스가 갈수록 심해진다. 게다가 능력이 없는 상사는 부하 직원들을 힘들게 한다. 그 상사만 생각하면 당장 사표를 내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인터넷상에서 어떤 직장인이 자신의 답답함을 토로한 글이다. 이 사람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이직을 고민한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언젠가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회사를 가득 채우고 있다. 특히 30대 직장인들 중 상당수가 이직을 기정사실화한 채 언제 떠날지를 고민한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직장이 있으면 언제라도 달려갈 태세다.

30대 직장인들의 이직 고민이 심한 것은 더 좋은 직장과 더 나은 커리어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회사 생활에 대한 나름의 식견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과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도 대체로 잘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해법까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해답을 모르기 때문에 고민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걸까.

◆꿈꾸던 생활이었지만 주인이 아니니 ‘공허’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몇 년 전 서울 근교의 집을 전세 낸 적이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전원생활을 꿈꿔 왔는데 마침 지인이 갑자기 외국 지사로 발령 나면서 그에게 교외의 주택을 빌려줬다.

집 열쇠를 넘겨받을 당시만 해도 그는 전원생활을 조금 경험해 본 뒤 문제가 없으면 아예 그 집으로 이사할 생각도 했다. 아이들도 다 커서 굳이 도심에 살 필요가 없었고 집주인이 싸게 팔겠다며 적극 권유했기 때문이었다.

전세를 얻은 첫해 그는 집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틈만 나면 정원수의 잔가지를 쳐내고 마당의 잡초도 뽑았다. 작은 밭을 일궈 이런저런 채소도 심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선 울타리 용도로 심었던 나무들이 자라면서 전망을 나쁘게 만들었다. 울타리 나무는 또 햇볕을 가려 마당의 잔디를 시들게 했다. 생각 같아선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싶었다. 빽빽한 울타리를 걷어내면 논밭과 마을은 물론 산까지 한눈에 들어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집주인이 아니었다. 집주인은 “알아서 하라”고 말했지만 애써 심어 놓은 울타리를 베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집 주변에 일본식 정원수 대신 감나무와 대추나무를 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집에 살기로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몇 년 뒤를 내다보고 나무를 심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고민하는 사이 울타리 나무는 계속 커갔고 마당엔 잔디 대신 잡초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앞집이 2층으로 증축한다는 소리까지 들렸다.

주인도 아닌 그가 나서 “시야를 가리는 것은 이웃과의 평화를 깨는 이기적 행동”이라고 만류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그는 결국 그 집으로 이사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말았다. 그 집은 더 이상 그가 꿈꾸던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직장을 잠시 머무르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자신이 오너도 아니고 오래 일할 곳도 아니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울타리를 베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길게 보고 감나무나 대추나무를 심기 어려운 세입자와 그 처지가 비슷하다. 하지만 만약 이곳을 평생직장, 적어도 10년 이상 다닐 직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직장 생활을 할까.

많은 사람들이 경영진이나 상사와 동료 때문에 직장을 옮긴다고 말한다. 현 회사는 연봉 구조나 직급 체계, 평가 방식에서 자신과 맞지 않고 심지어 성장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현 직장에 더 머무르는 것은 자신의 발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이직 사유의 상당 부분은 기본적으로 경영진·상사·동료들에게 있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이직 원인의 태반은 사실 본인 스스로가 제공한다. 이직자의 상당수는 애초에 현 직장에서 장기근속하겠다는 결심이 분명히 서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조건이 좋은 직장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옮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정면으로 맞서 해결하기보다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으면 가급적 피한다. 이렇게 대처하다 보니 떠나야 할 요인이 자꾸 더 생겨나게 된다. 아무리 잘 지은 집도 세입자가 살면 빨리 망가지기 마련이다. 주인처럼 관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은 ‘언제·어떻게 옮기느냐’다

이직이 잦은 직장인들은 세입자처럼 행동한다. 현 직장은 언젠가 떠나야 할 곳이고 자신은 이곳에 잠시 머무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내 지인도 처음부터 전원생활을 잠시 경험할 요량으로 그 집을 대하다 보니 세입자처럼 행동하게 됐다.

그가 만약 그곳에서 살기로 작정했다면 집을 사지 않았어도 아마 울타리 나무를 베어냈을 것이다. 앞집이 2층으로 증축하는 것 역시 어떤 식으로든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거주하겠다는 생각이 약했기 때문에 그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집 주변 환경이 바뀌는 것을 그저 방치했다.

처음부터 딱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을 수 있을까. 겉에서 보기에 마음에 들어도 막상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내가 살 집은 직접 가꾸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기 어렵다.

집이 마음에 들기까지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이직이 잦은 사람을 꺼리는 이유도 그가 집을 가꾸기보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스트레스 내성이 약하고 조직 적응력이 부족하고 희생정신이 약하다는 소릴 듣는다. 기업은 웬만하면 이직이 잦은 사람을 뽑지 않으려고 한다. 금방 또 옮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직하지 말라는 얘기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이직은 불가피하고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사회구조와 직장 환경이 변하는 상황에서 평생직장을 주장하는 것은 고리타분하다.

요즈음 새내기 직장인들 가운데 한 직장에서 평생 근무하는 사람은 공무원이나 교원 등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만큼 이직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됐다.

문제는 언제 옮기느냐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직은 경력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해야 한다. 상황에 밀려 하지 말고 분명한 목적을 갖고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다른 직장이 근무하기에 좀 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직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 못 된다. 상황에 따라 직장을 옮기는 것은 경력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이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직장인들이 목적성을 갖고 이직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경력 10년을 전후한 이직이다.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하면 대개 매니저급에 이른다. 대기업에서 차장 승진을 했거나 승진 직전에 놓이게 된다.

매니저는 충분한 실무 경험을 토대로 실무 책임자 역할을 하는 자리다. 과장과 달리 차장은 조금 관리자 느낌을 준다. 이 때문에 대기업은 차장부터 승진을 꼼꼼하게 관리하기 시작한다. 큰 잘못이 없으면 과장까지는 대부분을 승진시키지만 차장부터는 까다롭게 심사해 승진자를 줄인다. 대기업에서 여성들이 차장의 문턱을 잘 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차장 승진이 늦어지거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승진했다면 이직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 그 상태가 이어지면 임원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임원이 되지 못하면 정년까지 안정적 직장 생활을 이어 가기 어렵다.

그러므로 현 직장에서 임원이 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임원이 될 수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게 좋다. 비록 규모가 작고 사회적 위상이 낮은 곳이라도 임원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물론 부장 재직 때 열심히 해서 평가를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차장으로 승진할 즈음이면 임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대개 정해진다. 차·부장 때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상황을 바꾸기 어렵다.

이때 시기를 놓치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 어려워지고 경력 관리도 힘들어진다. 기업에서 시니어를 영입해 임원으로 승진시키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영입한 사람이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경영 철학을 수용하는지, 기업 문화에 잘 적응하는지 파악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영입한 직원이 임원이 되려면 일정 기간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시니어로 입사하면 승진 시기를 놓쳐 임원이 되기가 쉽지 않다.

◆직장은 단순히 월급 받는 곳이 아니다

이렇게 계획적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면 가급적 이직을 자제하는 게 좋다. 이직은 단지 집안의 인테리어를 교체하는 게 아니라 집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문이 고장 났다고 집을 바꾸지는 않는다.

직장은 단순히 일하고 월급을 받는 장소가 아니다. 직장에는 문화가 있고 선후배, 동료들과의 관계가 녹아 있다. 고객도 있고 사업 파트너도 있다. 수많은 관계가 집중된 곳이다. 직장을 바꾸면 이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한다.

그런데 문화나 관계는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상당한 시간과 비용,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투입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나이 들어 이직한 사람들이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상황을 따라가는 이직은 신중해야 한다. 커리어 발전을 염두에 두는 30대 직장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직은 경력 관리에서 쓸 수 있는 몇 장 안 되는 카드다.

만약 경력 발전에 꼭 필요한 이직이 아니라면 힘들어도 견뎌야 한다. 견디다 보면 어느새 관리자가 돼서 부하 직원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러스트 김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