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외형 2배 키웠지만 혁신 제품 못 내놔…“스마트폰 시장 더 성장할 것” 낙관론
취임 5주년 팀 쿡 애플 CEO ‘화려한 업적, 우울한 미래’
(사진) 취임 5주년 맞은 팀 쿡 애플 CEO. 연합뉴스

[워싱턴(미국)=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그의 사망 6주 전 애플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8월 24일로 취임 5주년을 맞았다. 잡스 없는 애플은 쿡의 리더십 아래 어떻게 변했을까.

애플의 외형만 보면 잡스의 후계자 선택은 더할 나위 없는 결정이었다. 쿡이 애플 경영을 시작한 2011년만 해도 애플은 수많은 스마트폰 업체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독보적인 1위 업체로 자리 잡았다. 매출과 시가총액, 종업원 수는 5년간 모두 2배가 됐다.

지난해 순이익은 530억 달러로 정보기술(IT)업계 경쟁자인 페이스북·알파벳·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 최근에는 아이폰 누적 판매 10억 대라는 금자탑을 세우기도 했다. 쿡이 잡스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쿡은 우선 잡스만큼의 창의적인 제품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해 4월 그의 주도로 애플 워치가 나왔지만 시장의 기대를 충족할 만큼 독창적인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 더 커진 아이폰 의존도

새로운 제품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폰 의존 비율이 높아졌다. 5년 전 아이폰이 애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2.6%였다. 올해는 62.9%다. 아이폰이 흔들리면 애플이 흔들리는 구조다. 애플의 스마트폰 사업엔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아이폰 매출은 올 들어 1, 2분기 연속 매출과 순이익이 하락했다.

쿡은 취임 5주년을 앞두고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스마트폰 사업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회사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포화설이 도는 스마트폰 사업에 대해 “스마트폰 시장은 전 세계인이 모두 1개씩 가질 때까지 커질 것“이라며 “그때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의 고전에 대해서는 “중국 경제가 일시적으로 과속방지턱을 지나고 있다”며 “중국 경제가 정상화되면 훨씬 많은 성장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8월 16일 중국을 방문, 장가오리 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중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현지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쿡은 “앞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인공지능(AI) 기술이 좌우할 것”이라며 경쟁력을 자신했다.

애플은 2011년 아이폰에 인공지능 시리(Siri)를 탑재해 발표했다. 그동안 인공지능 능력이 급속히 발전했다. e메일을 쓸 때 사용자의 패턴을 인식해 다음 단어를 미리 찾아 준다거나 차량의 주차 위치를 인식해 알려 주는 등 일상생활에서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애플의 인공지능 기술이 구글이나 아마존 등 경쟁사에 전혀 밀리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쿡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재능 있는 사람과 지식재산권(IP)”이라며 “M&A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7월 말 현재 현금 2315억 달러(약 255조원)를 쌓아 놓고 있는 미 최대 ‘현금왕’이다. 애플은 지난해 전체 매출의 3.4%(80억 달러)를 R&D에 투자했다. 미국의 15개 자동차 회사가 쓴 R&D 비용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 기업 M&A에도 열심히 나서고 있다.

쿡은 취임 후 매년 15~20개 회사를 인수하고 있다. 지난 7월에도 인공지능 스타트업 튜리를 2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증강현실(AR)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 AR 스타트업인 메타이오와 플라이바이미디어를 인수했다.

◆ 워런 버핏, 애플 주식 늘려

쿡은 전통적인 기업 경영자들과 다르다. 기후변화 문제나 프라이버시 권리, 동성애자 인권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법인세법은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사업 비중이 높은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에 수익을 남기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며 “문제는 이런 수익을 미국으로 환입하는 것을 막고 있는 세법 체계”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국내로 환입할 때 일반 법인세율(0~35%) 외에 5%의 징벌적 세율을 추가 부과하고 있다. 쿡은 “기업들의 해외 유보 자금 환입을 막는 이런 세법 체계에 대해서는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며 “기업들이 자금을 미국으로 들여와 다양한 곳에 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줘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 후보는 8월 8일 미국 기업의 해외 유보금 환입 시 1회에 한해 10%의 세율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쿡은 “기업 경영자는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최대한 주변 지인들의 조언을 들었다”고 소개했다.

2013년 애플의 탈세 논란으로 상원 청문회에 참석할 때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의 조언을, 2014년 남성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할 때는 앤더스 쿠퍼 CNN 앵커의 도움을, 지난해 전 재산 사회 환원 계획을 발표할 때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쿡이 이끄는 애플에 대한 주요 투자자들의 기대는 엇갈린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는 지난 2분기 동안 애플 주식 보유분을 980만 주에서 1520만 주로 늘렸다. 하지만 헤지펀드계의 큰손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는 애플 주식 3100만 주를 전부 팔았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