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보면서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어떻게 이들에게 북핵 문제, 통일 문제, 국가 발전과 경제 위기 등 국가적 현안 과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었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과 특히 어린 청소년들에게 우리 지도자들의 한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 지도자들은 좀 더 성숙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청문회 과정에서 많은 쟁점이 제기됐다. 하지만 그렇게 크게 번져 인내의 한계를 넘어갈 일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청문회는 야당 주도로 진행됐고 경과보고는 부적격 의견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장관 임명을 단행했다. 서로 기분이 언짢았겠지만 여기까지는 가끔 있어 왔던 일이다.
하지만 임명된 장관이 인사청문회 내용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비난하고 이에 야당 의원들이 크게 분노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여당 불참 아래 취임한 지 며칠도 안 된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사태는 더욱 악화돼 여당이 국정감사 등 모든 일정을 거부했다. 여당 의원들은 국회의장 퇴진 피켓을 들고 여당 대표는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보기에도 애처롭고 민망한 모습이다. 사소한 일로 대한민국의 정치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이후 갑을오토텍 노사분규는 끝없는 대치 국면을 이어 가고 있다. 노동조합 측은 생산 시설을 점거하고 회사 측은 직장 폐쇄로 맞서면서 대화가 단절된 채 살벌한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기업은 노조를 경영의 암적 존재로 생각하고 노조는 기업을 투쟁과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면서 서로 기업이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식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사업장이 전국적으로 20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 정치 현실과 너무나 흡사하다. (일러스트 김호식)
이런 노사분규나 정치 파행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협상은 이해가 다른 상대방들이 설득과 양보를 통해 타협하는 과정이다.
협상의 진면목은 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쪽이 반드시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쪽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그만큼 손해이고 협상에 실패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상거래 협상에서 가격을 조금 양보한다면 당초 주장했던 가격에 비해서는 손해를 보겠지만 그 거래를 성사시킴으로써 매출이 늘고 다른 상거래를 파생시키는 등 다른 이익이 따른다. 가격만이 기준이 아니라 2차원, 3차원의 다른 협상 조건도 기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협상을 생각하면 고려시대 서희 장군이 먼저 떠오른다. 993년 거란이 쳐들어와 초전에 패전하자 고려 조정은 겁에 질려 항복 내지는 평양 이북을 분할해 거란에 내주고 화의하자는 주장이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서희 장군은 협상을 통해 오히려 강동6주를 포함해 영토를 북쪽으로 확장하고 전쟁을 종식시켰다. 서희 장군은 거란의 속내를 파악하고 그들의 바람도 충족시키는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전쟁하는 국가 간에도 공동의 이익이 있는데, 같은 회사나 같은 국가 내에서 공동의 이익이 없겠는가.
우리 사회는 최근 선명성이 중시되고 이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파괴적인 사회가 됐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치 대범하고 멋진 것처럼 오인되고 있다. 협상 과정에서 감정이 상했다고 해서 회사가 망해도 좋다는 기업가나 노조는 터전을 잃는 것이다.
상대방의 확실한 약점을 잡았다고 해서 이것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는 것도 대의를 잃는 것이다. 부분적인 것에 전체의 명운을 거는 것은 잘못이다. 극단적인 언행으로 국회의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작은 자존심 때문에 판을 깨는 것은 안 된다.
우리는 어느 사이 벼랑 끝 전술이 먹혀들어 가는 사회가 됐다. ‘안 되면 말고’나 ‘배 째라’식으로 밀어붙이다가 성공해 대박을 내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쁜 문화가 형성됐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인 정치인들부터 이런 행태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상대의 명분과 자존심을 살리면서도 자신의 이익도 지키는 상생의 ‘협상 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정치는 사실 협상 자체다. 다양한 이해를 조정해 전체 국가의 이익이 증진되도록 애쓰는 것이 정치이고 그것이 협상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앞장서 배려와 관용으로 협상과 타협의 모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것이 선순환돼 우리 사회의 문화가 되면, 그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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