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종 레시피로 맞춤 요리 ‘뚝딱’…사람 필요없는 무인 레스토랑도
“사모님은 이제 쉬세요” 부엌으로 들어온 ‘요리 로봇’
(사진) 영국의 몰리 로보틱스가 공개한 두 개의 손으로 요리하는 로봇 '몰리(Moley)'. /로보틱스 제공

[정동훈 광운대 미디어 영상학부 교수] 맛을 보기 위한 요리는 늘 행복하지만 그 요리를 만들기 위한 과정은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노동이자 고난한 과정이다.

재료 구입에서부터 설거지까지의 과정은 노동의 연속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맛있는 요리를 따라하고 싶은 행복한 과정이다. 요리는 노동일까, 즐거움일까. 인간이 요리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셸라 레웬학이 쓴 ‘여성 노동의 역사’에서 여성 노동의 처음은 수렵과 채집이고 새로운 기술 혁명에 의한 여성 해방의 중요한 지점도 가사 노동이다.

◆주방용 자동 조리 로봇 ‘몰리’ 탄생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그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고 주장한다. 세탁기와 같은 가전제품이 가져 온 가사 노동시간의 단축은 경제적·사회적 영향이 인터넷보다 크다는 것이다.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집안일을 혁신적으로 단축한 가전제품은 가사 노동자와 같은 직업을 거의 사라지게 만들었고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을 촉진했기 때문이다.

전기세탁기·식기세척기·진공청소기 등 가사에서의 해방을 얘기할 수 있는 가전제품이 많지만 정작 요리를 위한 기술의 진보는 눈에 띄지 않는다.

빨래를 하기 위해 세탁기에 옷을 넣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고,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고 역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고, 진공청소기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청소가 자동으로 되는 것에 비해 요리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요리 역시 버튼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 같다. 가전 회사들과 로봇 회사들이 부엌과 레스토랑의 혁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부엌에서의 변모를 살펴보자. 가장 대표적인 것은 몰리 로보틱스와 섀도 로보틱스가 개발한 주방용 자동 조리 로봇 몰리(Moley)다.

2015년 4월 독일에서 개최된 하노버 메세 산업 박람회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5월에 ‘CES 상하이’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상을 수상했고, 올해 1월 ‘AI & 로보틱스 어워드’에서 파이널리스트에 오르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은 제품이다.

몰리는 크게 로봇과 인공지능이라는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129개의 센서와 24개의 이음새 및 20개의 모터로 구성돼 있고, 인간의 팔처럼 생긴 로봇 팔 2개가 움직이며 요리를 한다.

로봇 팔의 움직임은 마치 사람의 팔인 것처럼 정교한데, 그릇을 옮기고 소금이나 후추와 같은 양념통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수프를 휘저으며 때로는 칼을 공중에서 한 바퀴 돌리며 채소를 썰 준비를 하는 장난기 많은 청년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채소를 써는 것과 같은 재료 손질에서부터 조리 도구를 고르고 사용자가 원하는 음식에 맞는 요리를 하되 재료 선택, 소요 시간, 칼로리 설정 등 단순히 맛뿐만 아니라 사용자 친화적인 맞춤형 요리를 제공한다.

또한 인공지능 기능을 통해 레시피 라이브러리를 운용하기도 한다. 몰리는 2000종류가 넘는 레시피를 갖고 있는데, 사용자들이 제작한 다양한 레시피를 공유하고 원하는 레시피를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는 요리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모님은 이제 쉬세요” 부엌으로 들어온 ‘요리 로봇’
◆올인원 서비스 ‘스파이스’ 레스토랑

이제는 레스토랑으로 가보자. 스파이스(Spyce)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 학생들이 만든 완전 자동화 레스토랑이다.

보통 로봇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아직까지는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짙지만 스파이스는 현지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저렴하고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세계 최초의 완전 자동화 레스토랑을 표방한다.

사실 자동화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으로 적지 않은 곳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레스토랑은 부엌에서 로봇이 요리하는 자동화의 의미가 아니라 요리된 음식을 각 테이블에 옮기는 의미의 자동화를 소개하고 있어 이를 혁신적인 서비스로 소개하기에는 기술적 진보가 제한적이다.

하지만 스파이스는 메뉴를 주문하면 응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요리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조리에서부터 식사 제공까지 모든 과정을 완전 자동화한 무인 레스토랑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냉장고와 식기세척기·조리기기와 로봇 셰프가 하나의 기기에 담겨 있어(all-in-one) 요리사가 필요 없고 프로그래밍을 통해 일관된 맛을 제공할 수 있으면서도 대용량의 조리를 빨리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상업용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스파이스는 열린 주방 형식을 띠고 있어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를 손님들이 밖에서 볼 수 있게 했다.

배달 요리는 어떨까. 피자는 배달 요리의 대명사다. 줌 피자는 스타트업 도시인 실리콘밸리의 마운틴뷰에서 피자를 만드는 데 로봇을 활용한 떠오르는 기업 중 하나다.

이 기업 역시 스타트업인데, 마이크로소프트에서 X박스 게임 책임자이자 유명한 소셜 네트워크 게임 개발업체인 징가 사장을 역임하기도 한 알렉스 가든이 공동 창업해 더욱 유명세를 탔다. 줌 피자의 핵심은 배달하는 차에서 피자가 구워진다는 것이다.

보통 45분이 걸리는 배달 시간을 22분으로 줄인 것도, 이제 막 구운 바삭바삭한 피자를 먹을 수 있는 것도 모두 프로그래밍된 로봇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부엌에는 요리사와 로봇이 협업한다. 요리사는 숙성한 밀가루 반죽으로 도우를 만든다.

그리고 ‘페페와 존(Pepe and John)’이라는 이름의 로봇은 도우를 받아 그 위에 토마토소스를 뿌리고 다음 단계에서 로봇 ‘마르타(Marta)’가 소스를 골고루 펴 바른다. 요리사가 토핑해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로봇 ‘브루노(Bruno)’가 오븐에 집어넣음으로써 부엌에서의 일은 끝난다.

피자는 오븐에서 90초간 일부분만 구워진다. 배달 음식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핵심이다. ‘빈첸시오(Vincencio)’라는 이름의 로봇이 피자를 배달차에 올리면 요리사는 목적지 도착 4분 전에 피자를 3분 30초간 굽고 30초간 식힌 후 전달한다.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미치기는 하지만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해 배달 받기까지 단순화와 즉석 제조한 것과 같은 맛을 보장받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 해방, 테크놀로지가 답

부엌에서 사용되는 제품들의 디지털화도 요리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삼성은 디지털 커넥티드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한 스마트 냉장고를 소개하고 있는데, 사물인터넷 기능을 지향하고 있어 단순히 보관 역할을 뛰어넘어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로의 확장을 기대한다.

스마트폰이 전화 본연의 기능을 뛰어넘어 손안의 컴퓨터 역할을 하듯이 냉장고도 어떻게 진화할지 흥미진진하다. 올해 나온 냉장고의 특징을 보면, 냉장고의 미디어화가 눈에 띈다.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부엌을 요리 공간만이 아닌 오락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엔터테인먼트 환경으로 바꾼 것이다. 스마트 홈을 지향하는 가정에서는 LG의 스마트씽큐 허브가 매력적일 것이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작동하는 이 제품은 냉장고에 있는 음식물의 유통기한을 알려주고, 세탁기에 있는 세탁물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며, 습도와 온도를 감지해 최적 환경을 만들어 주고, 로봇 청소기를 통한 원격 청소 등 가사 노동에서의 해방을 위한 올인원 리모트 컨트롤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2015 일·가정 양립지표’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가사 노동시간은 남자가 40분, 여자가 3시간 14분, 그리고 맞벌이 부부가 아니라면 남자가 47분, 여자가 6시간 16분으로 조사됐다.

가사 노동시간 전부가 부엌일만 포함되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일상을 생각해 보면 식사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자들이 부엌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당장 남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그리고 인간이 부엌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해답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