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슈의 정치화는 모두 망하는 길이죠"
제조업 넘어 서비스업의 활성화 시급
경제 위기인데 보여주기식 장기 플랜만 넘쳐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약력) 1949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경제학 석사. 2005년 재정경제부 차관. 2009년 국무총리실 실장. 2011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 2014년 한국경제연구원장(현). /사진 서범세 기자
[한경비즈니스=취재 차완용 기자] 현재 한국은 소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내지 20년의 경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론이 곳곳에서 나온다. 실제로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 빠져들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닥친 악재 등으로 9월 수출액(산업통상자원부 집계)이 409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9% 줄어들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을 대표해 온 두 기업에 닥친 악재가 한국 경제의 암울한 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재계의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의 권태신(67) 원장을 만나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의 현주소와 해법을 들었다.
▶‘한국 경제의 위기’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시작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경제 활력 저하는 일본형 만성적 내수 부족 및 장기 침체의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져 있고요. 이는 다시 노동시장을 경직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며 발생한 기업 부채 문제가 다시 정부, 가계 부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구조적 수출 부진과 수출 환경 악화가 큰 문제입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속도가 점차 느려지는 것도 큰 걱정거리입니다.
“새로운 성장 동력 개발을 위한 노력이 절실해 보입니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 성장 전략에서 서서히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특히 서비스업의 활성화가 시급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서비스산업 시장의 개방을 통한 경쟁력 제고나 서비스산업의 수출 전략도 필요합니다.
얼마 전 ‘제4차 산업혁명’의 저자인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제 기업은 덩치를 키우기보다 빠르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기업 환경은 각종 정부 규제 등에 묶여 이런 움직임을 낼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규제를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 10년간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가 1000억 달러에 불과한데 밖으로 나간 투자는 3000억 달러에 이릅니다. 한국이 얼마나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인지 알 수 있죠.
대기업집단 지정에 서비스산업 규제, 금산분리 등등 각종 규제로 한국 경제가 너무나 좋지 않은데도 정부나 국회는 각종 정책에 기업이나 시장보다 복지·분배·평등 개념을 섞어 버리고 있습니다.
시장경제의 발달 덕분에 국가가 발전했지만 분배나 복지의 개념을 넣다 보니 기업들이 국내에서 활동하기에는 경쟁력이 떨어져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최근 이슈가 된 ‘김영란법’도 기업 활동에 문제가 될까요.
“일반 상식에 어긋난 법이죠. 사람이나 기업이나 사람을 만나 활동을 하는데 사람과의 만남을 막는 법입니다. 또 사람과 사람을 불신하게 만드는 법이고요.
누가 누굴 만난다고 하면 “저 사람들 과연 3만원 넘게 먹지 않을까”라고 의심하죠. 김영란법은 전 국민을 범죄자라는 대상에 올려놓은 법입니다. 이는 기업만이 아닌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1919년 미국에서 시행한 금주법과 같은 맥락입니다. 법으로 인간의 욕구와 본능을 제재하자 갱단이 밀주 제조에 나서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죠.
알 카포네라는 전설적인 마피아를 만드는 꼴입니다. 결국 인간의 욕구나 본성을 법으로 규제하자 음지화되고 범죄자가 만들어지지 않습니까.” (사진)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서범세 기자
▶최근 해운·조선 등에 불고 있는 구조조정 바람은 어떻게 보십니까.
“기업 구조조정의 바람직한 방향은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 각각이 제 기능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일부 산업에서는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에 우선하고 있는 듯합니다.
효율적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시장 자율 구조조정, 즉 경제 논리에 바탕을 두고 진행돼야 합니다. 자율 구조조정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큰 틀을 어떻게 짜 주느냐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화장품·바이오 등 신성장 산업이 각광받다가 주춤합니다.
“일시적으로 화장품과 바이오산업이 주춤한 것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여전히 유망한 산업입니다.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한미약품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우려운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셀트리온의 경우 램시마가 오는 11월 화이자와 함께 미국 시장에 론칭할 계획입니다.
화장품 산업도 중국뿐만 아니라 이란 등 중동으로 진출해 시장을 확장시킬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경쟁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전반적인 경제정책 방향 설정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지만 추진 방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구조 개혁을 통한 한국 경제의 변신을 강조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노동시장 개혁, 금융 부문 개혁, 서비스산업 활성화 등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추진력이 미흡합니다. 또 너무 보여주기 식 장기적 플랜이 많습니다. 임기가 5년인데 다음 정권이 들어오면 또 각종 정책은 사라지고요.”
▶대통령 연임제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적극 찬성합니다. 경제와 기업을 살리기 위해선 단기적 정책보다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합니다. 또 정치인들은 당선되기 위해 표만 의식하니까 기업에 세금을 더 걷어 생색내기 식 복지에만 열을 올립니다. 이러다 보니 기업 환경은 더 나빠지고 외국 기업은 들어오지 않고 국내 기업마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우려하는 겁니까.
“주한미국상공회의소·한독상공회의소·일본조인트벤처협회 등의 사람들을 만나면 약속이나 한 듯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지적합니다. 외국인 직접 투자액이 국내 자본 해외 투자액의 절반밖에 안 되는 것도 결국은 기업하기 힘든 나라이기 때문이죠.
실제 2011~2014년 해외 직접 투자액은 1140억 달러였지만 외국인 직접 투자액은 같은 기간 635억 달러에 머물렀습니다. 결국 개혁은 정부의 철학을 바탕으로 과감히 추진해야 합니다. 개혁과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를 철저히 제공하고 정부 주도로 개혁의 물꼬를 터야 합니다.”
▶최근 전경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습니다. ‘해체론’까지 거론되고요.
“잘은 모르지만 전경련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정경유착을 떠올립니다. 오히려 전경련이 있어 세월호에 1200억원, 평창올림픽에 800억원, 각종 사회·경제활동에 지원과 기부를 함으로써 많은 국민들이 혜택을 누리는 측면도 있습니다.”
▶전경련 산하 싱크탱크로서 하는 말씀이신지.
“물론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경련의 산하 경제 연구기관이긴 하지만 분명히 업무가 다릅니다. 연관성도 없고요. 한경연은 순수 민간 연구원으로, 시장경제에 대한 연구만을 객관적이고 면밀하게 조사·분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한경연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미국의 헤리티지재단이나 미국기업연구소(AEI)처럼 시장경제를 창달하는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좋은 정책을 제안하는 기관으로 만들 겁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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