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지자체 중 유일하게 '용역비(퇴직금) 정산제' 도입]
아파트 경비원·미화원 퇴직금 정산제, 오히려 고용 불안 부추겨…
“권고라더니 도입 강제” 반발도
[단독] 경기도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의 치명적 허점
(사진)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에서 경기도가 지자체 중 유일하게 도입한 '퇴직금 정산제'가 고용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는 허점이 드러났다. /서범세 기자

[한경비즈니스=김병화 기자] 경기도가 투명한 아파트 관리에 앞장서겠다며 발 벗고 나섰다. 격려를 받아도 부족할 상황에 차가운 시선만 쏟아진다. 의욕이 과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경기도가 최근 발표한 ‘공동주택관리규약준칙’의 허점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경기도는 기존 계획대로 강행하는 모양새다. 집단 행정소송도 예고되고 있다.

아파트 관리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른 것은 2014년 9월이다. 배우 김부선 씨는 자신이 살던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H아파트의 반상회 도중 난방비 문제로 이웃 주민과 폭행 시비에 휘말렸다. 이후 김 씨는 아파트 일부 가구에 난방비 비리가 있다고 고발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국토교통부는 2016년 8월 공동주택관리법을 시행했고 이에 맞춰 지방자치단체들도 표준화된 규약 준칙 마련 등 제도적 방안 마련에 본격 착수했다.

특히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도내 556개 아파트 단지에서 2년 동안 관리비 152억원이 부적절하게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경기도가 투명한 관리비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적립금 차액 부담… “1년 이상 고용 꺼릴 것”

경기도는 공동주택관리규약준칙을 개정하고 10월 1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입주자대표회의의 감사 기능 대폭 강화, 관리비 누수를 막기 위한 용역비 정산 제도 도입, 관리비 등 연체료 산정 시 일할 계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된 준칙의 허점으로 지적된 부분은 ‘용역비(퇴직금) 정산 제도’다. 다른 지자체의 준칙에는 없고 경기도만 준칙에 추가했다.

준칙에 따르면 경비원과 미화원 등 용역원이 다수의 아파트에서 근무하고 전체 근무 기간이 1년이 넘으면 각 아파트의 관리 주체가 퇴직금을 용역회사에 지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용역회사 소속 경비원 ‘홍길동’이 A아파트에서 3개월, B아파트에서 3개월, C아파트에서 6개월 연속으로 근무했다면 A, B, C아파트의 관리 주체는 각각 적립된 홍길동의 퇴직금을 용역회사에 지급하는 식이다.

문제는 용역회사다. 용역회사는 홍길동에게 퇴사 직전 3개월분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퇴직금을 계산해 지급하는데 종전 근무지인 A, B아파트에서 각각 적립된 금액과 차이가 발생한다.

홍길동이 A아파트에서 월 200만원, B아파트에서 월 250만원, C아파트에서 월 300만원을 받았다면 A, B아파트의 적립금은 C아파트보다 적을 수밖에 없고 마지막으로 근무한 C아파트의 급여를 기준으로 퇴직금을 지급한 용역업체는 그만큼 손실을 보는 식이다.

한 용역업체 관계자는 “A, B, C아파트의 규모나 근무 여건에 따라 급여가 천차만별이고 매년 최저임금이 인상되므로 차액이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영세한 용역업체들은 직격탄을 피하기 위해 경비원이 1년 이상 장기 근무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비원이나 미화원이 다른 아파트로 근무지를 옮기며 장기근속해 퇴직금의 차이가 발생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용역원의 고용 불안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 용역원은 “처음에는 용역업체가 퇴직금을 떼먹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는 준칙이라고만 생각해 기뻤지만 지금은 1년마다 일자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 ‘반영 안 하면 감사 대상’ 공문, 강제성 논란

경기도가 강압적으로 준칙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강제성이 없고 단지별 입주민 의견을 수렴해 자율적으로 시행하면 되는 준칙을 경기도가 강요하고 심지어 협박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한경비즈니스가 입수한 공문에는 강제성이 엿보이는 문구들이 포함돼 있었다. 경기도가 10월 26일 일선 시·군·협회에 보낸 공문에는 ‘준칙의 틀 안에서 관리 규약이 개정되도록 공동주택관리법 제93조 제1항에 따른 지도·감독권 및 관리규약 개정 신고 수리권을 행사해 주시기 바라며’라는 내용이 있었다.

또 이를 전달 받은 안양시가 관내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입주자대표회의 등에 전달한 공문에는 ‘경기도 준칙의 개정 취지와 다르게 관리 규약을 제·개정해 입주자 등에게 피해가 발생할 경우 경기도 공동주택관리 감사 조례 제8조에 따라 경기도 공동주택 감사 대상에 해당’등의 문구가 있었다.

한국주택관리협회 관계자는 “경기도 내 다수의 아파트 관리사무소장과 입주자대표회의가 압력을 느끼고 반드시 경기도 준칙대로 개정해야 하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며 “관리 규약은 위법이 아닌 한 입주민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하는 것인 만큼 준칙 제정권자인 경기도지사가 강요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집단 행정소송을 하겠다는 움직임도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준칙에 손봐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적극 검토할 것이지만 준칙 개정 등의 일정이 워낙 빠듯하다고 말한다. 경기도 공동주택과 관계자는 “퇴직금 부분은 그동안 고의적으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한 것”이라며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고용노동부와 협의해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토교통부가 8월 공동주택관리법을 내놓으면서 2개월 이내에 준칙을 개정하라고 서둘렀다”며 “조금 더 여유를 갖고 개정했다면 지금보다 심도 있는 준칙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기도는 강제적으로 준칙을 따를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억울하다는 생각이다. 이 관계자는 “준칙은 물론 강제성이 없다”며 “일부 단체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경기도의 취지와 다른 내용을 전파해 입주자대표나 관리소장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추가 공문을 보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kb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