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존경’이 우선돼야 원활한 업무 가능…먼저 ‘진정성’ 보여야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내가 아는 기업의 40대 임원은 종종 예전의 자기 행동을 생각하면 창피해 죽겠다고 말하곤 한다. 일반 직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자신의 언행이 떠오를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부끄럽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었는데 지금 보니 상사에게 무례하게 굴고 회사 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불만을 터뜨렸던 것 같다. 너무 부끄럽다.”
그가 이런 얘기를 자주 하는 것은 갑자기 부서의 책임자가 된 뒤 부서를 이끄는 과정에서 부하 직원들의 행동이 치기 어린 자신의 젊은 시절과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어쩌면 그렇게 제가 젊었을 때 하던 말과 행동을 그대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내가 저랬구나’라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런 저를 데리고 일해야 했던 상사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하면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잘났다고 나대는 저를 보고 참 속이 터졌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역시 일반 직원으로 지낼 때는 전혀 모르고 지냈는데 부서의 책임자가 되자 갑자기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눈에 크게 띄지 않았던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일반 직원과 조직 책임자의 관점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 부하 직원과 상사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었다.
◆따르지 않는 첫째 이유는 ‘상사가 싫어서’
20대 후반에 직장 생활을 시작해 몇 년 일하다 보면 한둘씩 후배가 생긴다. 30대 중·후반이 되면 작은 조직의 책임자가 된다. 일부 승진이 빠른 사람들은 조직이나 부서의 책임자 자리에 오르기도 한다.
혼자가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주어지는 성과 목표도 커진다. 따라서 이때부터 자신이 책임져야 할 성과는 자신의 개인적 능력이나 노력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의 참여에 의해 좌우된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부하 직원들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줄 때 속이 탄다. 기본적으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 잘 되자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엉뚱한 논리를 내세워 이리저리 딴죽을 거니 야속하기만 하다.
뜻을 모아 전력투구해도 될동말동한데 따라오지 않거나 옆길로 새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이다. 어떨 때는 확 쏘아붙이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더 분위기만 냉랭해질까봐 참고 또 참으면서 어르고 달래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임원의 심정도 아마 이랬을 것이다.
그런데 직원들은 왜 상사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을까. 다 좋다고 하는 일인데 왜 직원들은 불만을 표시하면서 딴소리를 하는 걸까.
아마도 상사의 지시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직원들은 경험이 부족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회사의 각종 정책이나 결정을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젊은 직원들은 자신의 정보가 부족해 판단이 부정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가 잘못된 결정을 했는데도 상사는 회사의 결정을 따르라고 강요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영진이나 임원들을 만나 회사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상사가 윗사람의 눈치만 보면서 부하 직원만 다그치고 있다고 불평한다.
상사가 주문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반 직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상사의 지시대로 하면 모두가 좋은 결과를 얻는 게 아니다. 상사만 좋을 뿐 자신들은 그리 좋을 것도 없다. 어떤 때는 오히려 나빠질 수도 있다.
내 일도 아닌 상사의 일을, 어쩌면 자신에게 좋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앞장서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상사의 눈 밖에 나지 않을 정도만 하거나 아예 ‘잔소리 듣고 말지’라고 생각하면서 안 하게 된다.
하지만 부하 직원들이 상사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상사가 싫기 때문이다. 상사가 싫다 보니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싫어진 셈이다. 사실 상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가 싫기 때문에 그의 말을 따르고 싶지 않다.
상사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없는 것이다. 상사가 틀렸다고 생각하거나 상사의 말을 따라봐야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상사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직장에서 크고 작은 조직의 책임자가 되면 자신이 맡은 성과에만 관심을 쏟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칫하면 부하 직원들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되고 만다. 부하 직원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안중에 없이 오로지 성과에만 매달린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잔소리하고 다른 조직이나 직원들과 대놓고 비교한다. 때로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업무 투입량을 의심하면서 인사권을 내세워 압박한다. 약점을 들춰내면서 성과 부진을 비판하기도 한다. 부하 직원들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이와 같은 상사의 언행은 직원들에게 상사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거둬들이게 만든다.
특히 상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직원들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상사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상사를 존경하지 않거나 불신하는 것을 넘어 상사에 대한 적대적 감정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사의 얘기가 아무리 옳다고 해도 직원들이 상사의 말을 따르기는 어렵다. 부하 직원들에게 상사가 하는 얘기는 별로 들을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귀를 닫게 된다. 상사의 지시도 이른바 ‘너 좋으라고 하는 일’로 치부해 외면당한다.
이렇게 대부분의 상사는 부하 직원들의 생각을 잘 모른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옛말처럼 회사가 부여한 성과를 달성하는 데 여념이 없다 보니 자신이 부하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을 다 잊은 것이다.
상사 밑에서 일할 때 느꼈던 서러움도, ‘나는 상사가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했던 다짐도 까맣게 잊는다. 오로지 조직의 성과를 책임져야 하는 조직 관리자 입장에서만 직원들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부하 직원들이 ‘왜 저렇게 근시안적으로 보는지’ 답답하기만 하고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될 텐데’라면서 걱정하게 된다.
◆보다 솔직하게 속마음 비춰야 소통 가능
따라서 부하 직원들이 자신의 얘기를 잘 듣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가장 먼저 직원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만약 자신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없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부하 직원들을 따라오도록 강제할 수 있다. 그래도 따라오지 않으면 그들을 다른 부서나 회사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기가 힘들어진다. 자기가 책임을 지고 있는 조직에게 부여된 과제는 결코 혼자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하 직원들의 참여 없이 주어진 성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조직의 책임자로서 원하는 성과를 만들어 내려면 어떡하든 부하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한다.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영 컨설턴트 마렌 레키는 ‘부하 직원이 당신을 따르지 않는 10가지 이유’라는 책에서 부하 직원들이 상사를 따르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상사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을 꼽고 있다. 부하 직원들은 권위가 없으면서도 권위적인 상사의 모습에서 염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따져 보면 상사는 부하 직원보다 잘못을 훨씬 더 많이 한다. 업무 범위가 넓고 성과 책임이 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실수하게 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상사는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권위가 손상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황 탓으로 돌리거나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혹시 잘못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잘못했다고 스스로 반성할 뿐이지 그것을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사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순간 상사는 특별한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힘은 부하 직원들의 마음과 귀를 열고 상사를 신뢰하게 만든다.
부하 직원들은 상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돌아본다. 이렇게 상사에게서 진정성이 느껴질 때 상사에 대한 부하 직원의 신뢰와 존경은 다시 싹이 튼다.
누군가 “당신은 정말 괜찮은 상사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답할까.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체로 부하 직원의 문제는 상사의 문제다. 따라서 부하 직원을 바꾸려면 상사부터 변해야 한다.
부하 직원들이 상사를 믿지 않는다면 십중팔구 상사 역시 부하 직원을 믿지 않는다. 상사의 비판 강도가 높아질수록 부하 직원들의 거짓말이 늘어나고 상사의 개입이 잦아질수록 부하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는 떨어진다.
◆부하 직원의 생각을 더 꼼꼼히 파악해야
겉으로 위엄을 세운다고 해서 결코 엄하게 보이고 권위가 서는 것은 아니다. 또 서로 어려움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한다고 해서 권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권위를 내세워 밀어붙이지 말고 부하 직원의 사정에 알맞은 조언을 해준다면 신뢰와 존경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내가 오늘날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부하 직원의 직간접적 도움 때문’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부하 직원의 신뢰와 존경이 성과와 함께 되돌아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 가지 더. 부하 직원들이 상사와의 관계에서 진정성을 느끼게 하려면 부하 직원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꼼꼼하게 파악해야 한다. 부하 직원들은 자신의 강점과 약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는 상사에게 진정성을 느낀다.
부하 직원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부하 직원에게 걸맞은 기대를 피력해 보라. 머지않아 부하 직원은 그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부하 직원은 상사가 믿고 기다려준다면 상사가 기대하는 것만큼 성장한다.
(일러스트 = 김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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