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 200만원 까지 치솟아...원클릭에 수십장 사들이는 ’매크로‘ 처벌 사실상 불가능
한국의 ‘암표충’, ‘콜드플레이’ 2차 내한 공연 성사시켰다?
[한경비즈니스 = 주현주 인턴기자] “표를 중고시장에 내놓으면 100만원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순간 귀가 솔깃했다”

“암표충(암표상벌레) 공연문화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할 문제다.”

전 세계에서 8000만 장의 앨범 판매를 기록한 인기 록밴드 ‘콜드플레이’가 첫 내한 공연을 한다. 콜드 플레이의 인기를 반영하듯 입장권 예매는 시작과 동시에 몇 분 만에 끝나버렸다.
공연을 기획한 현대카드는 "반응이 좋은 인기공연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암표상들이 온라인상에서 매크로(자동명령프로그램)를 이용해 표를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표 구하기 경쟁이 피가 튈 정도로 극심했다는 뜻에서 '피케팅(피의 티케팅)'이라는 말이 나왔다.

현대카드는 2017년 4월 15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한 차례 콜드플레이의 공연을 열기로 하고 11월 23일(현대카드 회원)과 24일(일반 고객) 양일간 온라인 예약을 받았다. 좌석이 4만5000석이나 되는 대형 공연이었으나 예매 첫날 55만명, 둘째 날 90만명이 동시 접속하면서 표가 1~2분 만에 매진됐다. 2015년 현대카드가 주최했던 폴 매카트니 내한 공연의 동시 접속자 수 8만 명과 비교해도 10배가 넘는다.

예약이 끝나자 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암표가 쏟아져 나왔다. 암표 거래 사이트에서 정가 4만4000원~15만4000원짜리 표 가격이 30~100만원에 거래됐다. 암표는 두 장에 최고가 450만원(12월 19일 기준) 치솟았다. 첫날 예매에 성공한 직장인 홍모씨(32)는 “표를 중고시장에 내놓으면 100만원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순간 귀가 솔깃했다”고 털어놨다.

급기야 현대카드 측은 “국내 팬들의 성원에 콜드플레이와 협의해 공연을 하루 더 연장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암표충’, ‘콜드플레이’ 2차 내한 공연 성사시켰다?
(사진) 티켓베이 캡처 화면.


◆ ‘예매 대기’ 50석은 해야 표 한 장 겨우나와


이틀 동안 총 145만명이 몰리면서 표를 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용담처럼 이어졌다. 직장인 강모씨(27)는 “피씨방에서 인터넷 예매 창을 켜고 동시에 핸드폰 앱으로 표 예약을 노렸지만 실패했다”며 “1분 만에 매진돼 허탈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11월 26일 자정에 예스24가, 새벽 2시에 인터파크가 취소표를 푼다는 소식을 듣고 밤새 기다렸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그는 “2차 취소 표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강씨는 취소된 좌석이 예매대기중인 사람에게 넘어가는 인터파크 예매 대기 시스템을 통해 11월 27일 50석을 예약했다. 다음날 오전 취소된 좌석이 한 자리 생겼다는 문자를 받고 곧장 임금 했다. 그는 “중간에 암표를 사볼까 고민도 했지만 웃돈 몇 만원이 아닌 정가의 5~6배를 불러 포기했다”며 “암표충(암표상벌레)은 공연문화에서 반드시 없애야 할 문제”라고 꼬집었다.



◆ 클릭 한 번으로 수백 장 표 예매…매크로 이길 수 없지만 처벌도 못해

강씨는 3번의 시도 끝에 표 한 장을 얻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클릭한번 제대로 못했다. 반면 암표상은 1초 만에 공연 날짜와 시간, 좌석 선택, 결제 정보를 입력하는 ‘매크로 코드’를 이용해 클릭 한 번으로 수십 장의 표를 산다. 의외로 일반인들도 매크로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검색하면 전문적으로 제작'판매하는 곳들과 일반인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블로그가 수 십 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대학 수강신청이나 주식시장 모니터링 등 프로그램에 따라 가격도 1~50만원까지 다양하다.

매크로 피해 사례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지만 처벌할 방법이 없다. 현행 경범죄처벌법상 현장에서 사고파는 거래만 암표 매매에 해당하기 때문에 온라인상에서 거래되는 암표를 단속할 법적 근거가 없다. 정보통신망법은 타인의 컴퓨터에 악성코드를 설치하거나 전달하는 경우만 규정해 처벌한다.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하는 매크로는 정보통신망법의 제재도 받지 않는다.
경찰청 사이버 안전국은 “개인이 표를 수십'수백 장 대량으로 구매해 부당한 폭리를 취하는 등 위계질서를 해치나 현행법상 처벌할 수 있는 법규가 없다”며 “사이버 침입이나 해킹이 아닌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처벌을 피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업계는 매크로 피해가 계속되자 업무방해혐의로 적극 대응에 나섰다. 예스24는 지난 8월 매크로를 이용해 아이돌 콘서트 표를 대량으로 상습 구매한 조모씨 등 6명을 업무방해혐의로 고소했다. 아직까지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매크로 이용자에게 적용된 선례는 없다.
현재 예스24는 한명이 수백 장을 사들이는 매크로 이용 의심자 표를 강제 취소하고 있다. 인터파크는 콜드플레이 2차 공연 예매부터 매크로 방지를 위해 특정이미지의 암호를 입력하는 결제 단계를 도입했다.



*(박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드려 죄송”
한국의 ‘암표충’, ‘콜드플레이’ 2차 내한 공연 성사시켰다?
(사진)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한국경제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드려서 죄송하다”며 “암표상들이 불법적으로 가격체제를 무너뜨리고 있지만 속상하게도 현대카드는 아무런 힘이 없다. 우리의 영역에서 불법방지에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겠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전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동시 접속자 최대 90만명은 국내 공연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며 “암표는 많아야 800~900장 정도로 보고 있으며 매크로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매크로를 전부 막을 수는 없지만 두 예매처와 함께 대안마련을 위해 고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콜드플레이의 2차 추가 공연은 현대카드 회원의 경우 12월 21일 정오부터, 일반 고객은 22일 정오부터 인터파크와 예스24에서 예매가 가능하다.



*(설명) 매크로 = 자주 사용하는 여러 개의 명령어를 묶어서 한 번의 클릭 동작으로 자동 실행시키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문서 안의 같은 문자열을 한꺼번에 변경하는 등 여러 번 해야 하는 일을 간단하게 수행하기 위해 개발됐지만 표 예매 등에서 편법 수단으로 악용된다.



guswn10@hanky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