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초연결 시대’에 브랜드 파워를 더욱 키우는 ‘컬래버레이션’의 파괴력
불황, 초연결 시대엔 ‘콜라보’로 돌파하라
(사진)2015년 발망과 컬래버레이션했던 H&M 매장의 모습./한국경제신문

[허지성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1년에 한 번, 글로벌 SPA(제조 직매형 의류) 브랜드인 H&M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선다. 마치 애플이 신제품을 내놓을 때처럼…. 사람들 중 일부는 행사 시작 수일 전부터 매장 앞에 생기는 줄에서 자연스럽게 노숙을 하기도 한다.

바로 H&M의 디자이너 컬래버레이션(협업, 콜라보) 상품 출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2004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매번 큰 성공을 거두며 H&M과 참여 디자이너의 인지도 모두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를 시작으로 소니아 리키엘, 이자벨 마랑, 발망 등 유명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매년 한정 수량만 제작해 출시하고 있는 이 상품은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11월 초 열린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겐조와의 협업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명동 매장 앞에만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출시 당일 오전에 상품 대부분이 품절됐다.

H&M의 가장 큰 경쟁사 중 하나인 유니클로 또한 이러한 컬래버레이션 활성화 추세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핑크 플로이드, 비틀스 등의 뮤직 아티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 등의 미술가와 디즈니·스누피 등 유명 만화 캐릭터의 그림이나 패턴을 가장 흔한 패션 아이템인 티셔츠에 프린트하는 방식의 컬래버레이션 UT(UNIQLO T-Shirt)를 진행해 온 유니클로는 2009년부터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 크리스토퍼 르메르, 하나 타지마, 심지어 고급 의류 브랜드인 띠어리(Theory)와의 협업 의류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는 등 컬래버레이션의 전선을 크게 확대했다.

특히 크리스토퍼 르메르와의 협업 컬렉션인 유니클로 X 르메르(Le Maire)는 소비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 한정 상품을 다시 생산해 판매하기도 했다.
불황, 초연결 시대엔 ‘콜라보’로 돌파하라
불황, 초연결 시대엔 ‘콜라보’로 돌파하라
(사진) 애니메이션 미니언즈와 협업한 GS25의 우유 제품(위)과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채용한 2013 샤토 무통 로쉴드 와인. /각사 제공

◆와인·스피커·우유 등에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최근 컬래버이션이라는 단어가 화제다. 한국말로는 ‘협력’ 이나 ‘합작’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이 단어는 이전부터 빈번히 사용되던 예술이나 디자인 영역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마케팅이나 브랜딩 영역에서조차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된 것이다.

컬래버레이션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아티스트나 디자이너를 섭외해 한정 에디션을 만드는 방식의 협업은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다. 앞에서 예를 든 H&M 이외에도 다양한 업체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협업을 하고 있다.

샤토 무통 로쉴드는 무려 1945년부터 유명 아티스트들과 와인 레이블 디자인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있고 2013년 빈티지에는 한국의 유명 아티스트인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선택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LG전자가 최근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존 월의 작품을 담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내놓았고 PC용 와이드모니터 광고에는 천재 화가인 스티브 윌셔를 출연시키기도 했다.

캐릭터를 활용한 컬래버레이션도 늘어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맥도날드의 해피밀 세트다. 캐릭터 장난감을 어린이용 햄버거 세트의 사은품으로 제공하는 이 컬래버레이션은 국내에서도 마리오·헬로키티 등 선풍적인 매진 사례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편의점 GS25는 유명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미니언즈를 활용한 바나나 우유를 출시해 크게 히트시켰다.

LG생활건강은 치약·방향제 등에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캐릭터인 카카오프렌즈를 활용한 데 이어 색조 화장 브랜드인 캐시캣에 핀란드의 국민 캐릭터인 무민을 활용한 상품을 출시하는 등 캐릭터와의 컬래버레이션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은 최근 그 인기에서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만큼 LG생활건강 외에도 KFC·글라소워터·샤니·티머니 등 다양한 업체들과의 컬래버레이션에 활용되고 있다.

브랜드 간 컬래버레이션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에너지 드링크 업체인 레드불은 액션캠 제조사인 고프로와의 브랜드 협업을 통해 다양한 익스트림 스포츠 비디오를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모험가 펠릭스 범가트너가 약 40km 상공에서 자유낙하하는 자신의 모습을 고프로를 사용해 찍은 비디오로, 유튜브에서만 약 3000만 회 재생됐다. 또한 BMW는 자사의 전기 자동차인 i8을 홍보하기 위해 프랑스 럭셔리 패션 업체인 루이비통과 손잡고 i8 전용 가죽 백 세트를 제작하기도 했다.

좀 더 복잡한 컬래버레이션 방식도 있다. 아마존은 자주 소비하는 생활용품을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주문할 수 있는 대시(Dash) 버튼을 출시했는데, 버튼 목록에 포함된 브랜드는 타이드(세제), 하기스(기저귀), 질레트(면도날) 등 수십 개에 이른다.

◆‘컬래버레이션’ 소셜 미디어 타고 활성화

컬래버레이션 활동이 최근 이처럼 활성화된 이유는 초연결 시대의 도래로 변화하고 있는 브랜딩·마케팅의 방향을 담을 수 있는 ‘종합 선물 세트’와 같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가공되거나 연출된 이미지로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 영향을 주려는 노력이 소비자들이 자신의 경험과 의견 등을 온라인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것이 손쉬워지면서 점점 힘을 잃어 가고 있는 환경에서 컬래버레이션은 빛을 발한다.

첫째, 컬래버레이션은 기본적으로 ‘협업의 결과물로서의 상품’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체가 명확하고 상품도 한정판인 것이 대부분이어서 희소성에 기반 한 소비자들의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한정판’은 이전부터 마케팅에서 자주 사용되는 판매 전략이기에 새롭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초연결이라는 환경이 한정판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다 열광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정판 출시의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는 컬래버레이션은 따라서 폭발적인 소비자 반응을 기대하는 기업이나 브랜드의 전략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둘째, 특정 브랜드들이 협업하고 그 결과로 각 브랜드들의 특징이 반영된 제품이 출시된 것 자체가 소비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요소를 보유하고 있다.

‘신제품은 이러저러한 개념을 디자인에 반영했습니다’라고 힘들게 홍보하는 대신 ‘신제품은 아티스트 A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디자인했습니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보다 직관적이기도 하고 소비자로서는 더 궁금하기도 한 것이다.

특히 컬래버레이션 대상의 아티스트나 캐릭터·브랜드가 이미 다수의 팬을 거느리고 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흥행’ 효과는 이미 전국 맥도날드 매장에 수십 명의 줄을 만들어낸 ‘마리오 해피밀’ 신드롬, 수십 명이 며칠 동안 매장 앞에서 노숙하도록 만든 H&M의 디자이너 컬래버레이션 등의 사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공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이끌어 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환경 속에서 일정 수준의 성공을 담보하는 컬래버레이션을 외면할 수 있는 브랜딩·마케팅 담당자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컬래버레이션 행위 자체가 큐레이션의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큐레이션은 기본적으로 큐레이터의 취향에 기반 한 의도적인 선별을 전제로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컬래버레이션 과정에서 기업은 자신이 차용하고 싶은, 또는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다양한 아티스트나 브랜드들 사이에서 ‘선별’할 수 있다.

컬래버레이션의 대상 후보들은 소비자들 사이에 특정한 반향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의 여부로 선택됐을 것이기 때문에 협업 활동은 마치 브랜드가 플랫폼이 되는 ‘전시’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H&M과 유니클로는 이러한 ‘전시’의 특성을 잘 활용해 SPA 브랜드로서의 특정한 약점들을 잘 보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윈-윈’ 가능하지만 ‘확실한 전략’ 필요

컬래버레이션의 유행은 금세 사그라질까, 아니면 나름대로 마케팅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고 향후에도 지속될까. 컬래버레이션은 브랜드와 마케터들이 거부하기 어려운 장점들을 보유하고 있고 브랜드와 소비자들을 둘러싼 환경 변화 추세와도 부합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주요한 브랜드 전략 중 하나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협업이 파트너들 간 ‘윈-윈’이 되는 상황일 때 성공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신의 브랜드가 컬래버레이션 파트너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명확히 하고 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비즈니스 또는 브랜드의 지향점을 가져가지 않는다면 개성이 강한 업체들과의 반복적인 협업 과정에서 자신의 브랜드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역효과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마케팅과 브랜딩의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공을 들여가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숙성의 시간을 소비자들이 인내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개성을 가진 브랜드들이, 또는 특정 브랜드가 개성이 있거나 팬을 보유한 아티스트,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실체를 가진 제품을 함께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컬래버레이션의 유행은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컬래버레이션은 브랜드의 개성을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기업은 전략적 방향에 부합하는 컬래버레이션을 어떻게 실행해 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다.
불황, 초연결 시대엔 ‘콜라보’로 돌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