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써티컷 사건’이 뭐길래…국내 첫 ‘기관투자가 P2P 상품’ 출시 무산
금융 당국에 발목 잡힌 '핀테크 혁신'
(사진) 금융감독원 전경.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P2P 대출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온라인을 통한 ‘개인 대 개인’의 신용거래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미국의 대표적인 P2P 금융 플랫폼 랜딩클럽은 전체 투자자의 80%가 기관투자가들이다. 쉽게 말해 개인이 직접 랜딩클럽에 투자할 때도 있지만 개인이 자산운용사 등을 거쳐 간접적으로 랜딩클럽에 투자할 때가 더 많다는 얘기다.

자산운용사가 판매하는 ‘P2P 투자 펀드 상품’ 등에 참여하는 것이다. 국내 P2P업계 역시 시장 규모가 커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관투자가들을 통한 간접투자가 늘어날 전망이다.

‘써티컷(회사명 비욘드플랫폼)’은 국내에서 이와 같은 모델을 처음으로 들고나온 P2P 금융 플랫폼이다. 자산운용사가 펀드를 구성해 판매하는 투자 상품인 ‘NH-30CUT론’을 내놓았다.

지난해 6월부터 NH농협은행을 통해 사전 신청으로 대출자를 모집했는데 두 달 동안 2700여 명이 몰릴 만큼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됐다. 지난해 12월 22일 금융감독원이 자산운용사가 펀드를 구성해 참여하는 투자 방식에 대해 ‘불허한다’는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투자냐 대출이냐, 금감원의 ‘고무줄 해석’

삼일회계법인의 전무를 지낸 서준섭 비욘드플랫폼 대표는 2015년 10월 회사를 설립, NH농협은행과 손잡고 개인 투자자가 아닌 자산운용사와 같은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P2P 대출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때만 해도 서 대표는 자신감이 넘쳤다.

해외 P2P 시장의 선례를 봤을 때 언젠가 우리도 기관투자가들을 통한 간접투자가 활성화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 대표는 “다른 P2P 업체들이 개인 투자자부터 시작해 기관투자가들로 확대해 가는 전략이라면 우리는 그 반대 방향을 택한 것”이라며 “NH농협은행의 공신력과 자산운용사의 신뢰를 더한다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미 국내 자산운용사들 가운데 해외 P2P 업체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서 대표는 “해외 P2P 업체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이 판매가 되는데 국내 P2P 업체에 투자하는 게 안 될 리 없다고 확신했다”며 “국내에도 이런 상품이 나오면 오히려 국부 유출도 안 되고 좋을 것으로만 여겼다”고 말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만 같았던 사업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암초를 만났다. 다름 아닌 ‘금융 당국의 규제’ 문제에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 당국이 써티컷의 상품 출시를 불허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P2P 대출에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투자와 대출’ 중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P2P 대출은 ‘돈을 빌리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러니 누군가는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만약 P2P 업체를 돈을 빌려주는 사람으로 본다면 P2P 업체에 돈을 제공하는 개인의 행위는 ‘투자’다. 하지만 P2P 업체를 대출 중개업자로 본다면 개인들은 P2P 업체를 통해 돈을 빌려주는 ‘대출’ 행위를 한 셈이다.
금융 당국에 발목 잡힌 '핀테크 혁신'
(사진)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만 같았던 사업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암초를 만났다. 다름 아닌 ‘금융 당국의 규제’ 문제에 걸린 것이다.

문제는 이를 두고 금융감독원에서 각국마다 제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써티컷은 ‘은행 연계 P2P 모델’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NH농협은행을 통해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은행감독국의 소관이다.

대출 약관 등은 이곳에서 관할한다. 써티컷은 대출 약관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누가 들어올 것인가’가 문제가 됐다.

먼저 저축은행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저축은행감독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저축은행감독국은 저축은행이 P2P에 돈을 제공하는 것을 ‘예금담보 제공’으로 봤다. 현재 저축은행에서 예금담보 제공은 금지된 업무다. 그렇다면 캐피털 회사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은 가능할까.

이를 관할하는 여신전용감독국은 같은 행위를 ‘투자’로 해석했다. 캐피털의 투자 업무는 금지돼 있다. 마지막으로 서 대표는 자산운용사를 담당하는 자산운용국에 해석을 요청했다. 그런데 자산운용국은 이를 ‘대출’로 해석했다. 자산운용사의 대출 행위 또한 불법이다. 결과적으로 써티컷에 투자할 수 있는 기관은 하나도 없게 된 것이다.

서 대표는 현재 한국P2P금융협회와 공동으로 금융위원회에 ‘은행 연계형 P2P 투자 행위’에 대한 법령 해석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예금 담보 제공인지, 대출인지, 투자인지 ‘공통된 해석’이 적용된다면 적어도 한 곳에서는 투자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서 대표는 “3개월 안에 답변이 나온다고 하니 일단 기다려 보는 게 최선”이라며 “1년 동안의 수고가 물거품으로 돌아가지 않게 조속하고 명확한 결정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P2P 업계 "써티컷만의 문제 아니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한 ‘P2P 대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는 법인 한 곳에 연간 1000만원까지만 투자가 가능하도록 한 데 비해 법인 및 전문 투자자는 별도의 투자 한도를 두지 않고 있다.

상당 수준의 리스크 관리능력을 보유하는 점을 감안해 사실상 기관투자가에게 무제한 투자를 허용한 셈이다. 이번 써티컷 사건에 대해 P2P 금융업계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P2P업계로서는 ‘기관투자가들의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인지, 안 된다는 것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승행 한국P2P금융협회장은 “써티컷과 마찬가지로 다른 P2P 업체에 기관투자가의 참여가 가능한지 답하기가 모호하다”며 “결론만 말하자면 ‘이유는 다르지만 결과는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각 부서에 따라 써티컷의 사업 모델에 대한 해석이 업계 전체에 적용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저축은행감독국의 해석은 '은행 연계 모델'인 써티컷의 행위는 금지하고 있지마 다른 P2P업체에는 해당이 안된다. 하지만 자산운용국의 '대출 행위' 금지는 일반 P2P 금융업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자산운용사의 투자가 불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가이드라인과 이번 결정을 비교해서 금감원 내에서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린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기본 방침은 P2P 대출에 기관투자가의 참여를 허용하되 다만 투자자로 참여하는 해당 분야의 금융 관련 법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의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 모델이라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존재한다. 이번 판단이 P2P 대출의 '모델'이 아닌 행위에 대한 '해석'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금감원 관계자는 "기본적인 방침에 변화가 이는 건 아니지만, 다른 P2P 업체들에도 똑같은 해석을 적용한다면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어려워질 수 있는 건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P2P업계 내에서 이와 관련한 우려가 쉽사리 가라Z지 않고 있는 이유다. 금융 당국이 또 다른 이유를 빌미로 ‘같은 결론’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P2P금융협회 차원에서 공동 대응에 나선 이유다.
금융 당국에 발목 잡힌 '핀테크 혁신'
(사진) 서준섭 비욘드플랫폼(써티컷) 대표. /써티컷 제공

익명을 요청한 P2P 업체 관계자는 “해당 부서마다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그에 맞춰 논리를 짜깁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장 서민금융과만 하더라도 P2P 업계에 기관투자가의 참여를 독려한다고 예를 들었다.

1000만원 한도인 개인 투자자 위주의 흐름에서 벗어나면 업무 또한 다른 부서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P2P 대출 업무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보니 한동안 세간에는 ‘금융 당국 내에서도 천형(千刑)으로 통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투자 한도 1000만원의 ‘천’에서 따온 것이다.

또 다른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일단 겁부터 내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단순히 법령의 해석이나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당국 관계자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P2P 업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관투자가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나만 아니면 돼’라는 부처 이기주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님투(Not In My Terms Of Office)’ 현상이다.

현재 P2P 업계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P2P금융 법안’에 희망을 걸고 있다. 민병두 의원(더불어민주당) 등이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 불확실한 요소가 많아 마냥 법 제정을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사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거품이 생겼다가 정리되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투자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아예 ‘시장 진입 제한’으로 규제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과도한 규제는 새로운 산업의 성장을 막는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한국P2P협회 이 회장은 “해외의 사례만 보더라도 P2P금융을 통한 불법·부실 대출은 그 패턴이 뻔하다”며 “이를 연구해 패턴을 구별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이를 가려내는 ‘건전성 규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