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멀어진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 꿈…주택 담보대출 금리만 올려 (사진)서울시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주택자금대출 창구. /연합뉴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일각에서 국내 경기 침체의 주범으로 가계 대출 증가를 들고 있다. 언론 보도의 요지도 대부분이 ‘기승전 가계 대출’이다. 현재의 경제 위기가 과연 가계 부채 때문이고 가계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경제가 살아날까.
현재 경제 위기의 원인은 한두 가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대외적으로 세계 경기가 몇 년간 침체된 것이 수출 경제 중심인 한국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재의 정치 상황이 소비 심리 회복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계 대출 증가와 소비 심리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가계 대출 규제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가계 대출이 증가하면 갚아야 하는 대출 원리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소비할 돈이 적어지고 따라서 소비 심리가 침체된다는 것이다.
◆ 주택 담보대출 규제가 경기 악화
현재 대출 규제 수준인 주택담보대출비율(LTV) 70%와 총부채상환비율(DTI) 60% 수준은 2014년 8월부터 완화돼 적용되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2011년 3월 강화된 대출 규제가 적용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대출 규제가 소비 심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려면 이 두 시기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주택 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된 2011년 3월부터 12개월간 평균 소비자심리지수(한국은행 CSI)는 100.33으로 기준선인 100을 약간 웃돈다. 하지만 주택 담보대출 규제가 완화된 2014년 8월부터 12개월간의 소비자심리지수는 103.08로 훨씬 높다.
대출은 단기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24개월 기준으로 조사하면 100.54(규제 강화 시기) 대 102.26(규제 완화 시기)으로, 이 경우에도 주택 담보대출 규제 완화가 전체 소비 심리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주택 시장이 살아나면 전체 소비 심리도 살아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주택 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소비 심리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권에서는 주택 담보대출 강화를 주장한 다. 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주택 담보대출이 강화되면 누가 피해를 볼까.
주택 담보대출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계층은 무주택 서민이다. 본인이 모은 돈만으로는 집을 살 여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대출을 받는 것이다. DTI 규제는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지 말라는 규제가 아니라 소득이 적은 서민에게 돈을 빌려주지 말라는 규제다.
그러므로 정부에서 DTI 규제의 칼날을 들이댈 때마다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지는 것이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자기 집을 마련해 보려는 사다리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이에 비해 투자용으로 집을 사려는 사람은 영향이 적다. 대출 규제에는 LTV와 DTI가 있다. 두 개의 규제로 계산된 대출금 중 낮은 것이 적용된다. 현재 LTV는 70%다. 다시 말해 집값의 최대 70%까지만 대출을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LTV는 순수 대출금뿐만 아니라 전세금까지 포함된 개념이다. 그러니까 과거에 어떤 사람이 집값의 60%에 전세를 줬다면 대출은 집값의 10%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 10%를 두고 DTI 규제가 적용되는지 따졌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평균 75%가 넘는다. 이 말은 전세가율이 70%가 넘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게 되면 LTV에서 먼저 걸려 대출이 한 푼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전세를 끼고 투자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DTI 규제를 해봐야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LTV 한도를 줄여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전세를 끼고 사는 사람은 대출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의미다.
결국 주택담보 대출은 집이 없는 무주택 서민이 이용하는 제도이지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전세를 끼고 집을 사두려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대출 규제를 강화할수록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자산의 양극화를 가져올 것이다.
◆ 대출 규제는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주택 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누가 이익을 볼까. 대출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최근 몇 달 간 대출금리가 급격하게 오른 것을 알 것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신규 취급액 기준으로 2016년 9월의 주택 담보대출 금리는 연 2.80%였는데, 11월의 금리는 3.04%로 0.24%포인트 올랐다. 주택 담보대출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의 대출이자 상승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국 금리가 올랐으니 한국의 금리도 오를 것으로 보고 선제적으로 대출금리를 올린 것일까. 또는 미국 국채 값이 올랐으니 조달 금리가 올라 대출금리가 오른 것일까.
이런 것도 원인의 일부는 될 수 있지만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주택 담보대출 금리가 0.24%포인트 오른 두 달 동안 대기업에 대한 대출은 0.04%포인트에 불과하고 심지어 공공 부문에 대한 대출금리는 0.21%포인트 하락했다. 대출 조달 금리가 올랐다면 대기업에 대한 대출이나 공공 부문에 대한 대출금리도 따라서 올라야 정상이지만 주택 담보대출 금리만 대폭 오른 것이다.
그러면 주택 담보대출 금리만 많이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주택 담보대출 규제가 그 원인이다. 예를 들어보자. 열 명이 대출을 원하는데 (규제 때문에) 다섯 명에게만 대출을 해줄 수밖에 없다면 은행으로서는 이자를 많이 내겠다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줄까, 아니면 이자를 적게 내겠다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줄까. 은행에서 대출이자를 올려도 사정이 급한 사람은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출 규제가 강화될수록 대출이자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주택 담보대출이 강화될수록 그 피해는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주택 서민에게 돌아가고 그 이익은 은행에 돌아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를 겪은 미국은 서브프라임 이후에도 LTV가 85% 수준으로 한국보다 대출이 훨씬 많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이 그것 때문에 경기가 죽고 있다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주택 담보대출 증가를 경기 침체의 원인으로 보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대표적인 사례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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