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라도 괜찮아…항상 노력하며 인내하는 뚝심 보여야
[한경비즈니스 칼럼=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축구 선수들에게 감독은 커리어의 최종 목표다. 선수 생활은 40세를 넘기기 어렵지만 감독은 70세 전후까지 할 수 있다. 특히 명문 구단 감독은 꿈의 자리다. 명장으로 소문나면 세계적 빅 클럽과 국가 대표 팀에서 앞다퉈 모셔가려고 한다.
영국 프리미어 명문 구단인 맨체스터시티(맨시티)의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은 연봉이 220억원에 이른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맨유)는 지난해 조세 무리뉴를 감독으로 영입하기 위해 연봉 200억원을 제시했다.
프로 축구 구단들이 감독을 파격 대우하는 것은 감독이 워낙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모든 스포츠 종목이 마찬가지겠지만 축구는 특히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다.
감독은 경기의 전략과 전술을 짜고 선수들을 독려하면서 작전을 지시한다. 또 한 시즌 전체를 염두에 두고 팀을 운영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유능한 선수를 영입한다.
이렇게 중요하고 각광받는 자리인 만큼 감독이 되기는 참 어렵다. 감독 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만 71만 명이 훨씬 넘는다. 그런데 세간의 주목을 받는 프로 구단은 1부 프리메라리그에 20개, 2부 세군다리그에 22개 뿐이다. 3~4부 리그도 있고 아마추어 축구단도 있지만 적어도 1~2부 리그의 감독 정도는 돼야 축구감독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명문 프로 축구 구단의 감독은 대부분 성공한 프로 축구 선수 출신들이다. 이들은 선수 때 화려한 경력과 명성을 앞세워 은퇴 뒤 곧바로 코치진에 합류했다.
영국 맨유의 전설적 감독 알렉스 퍼거슨, 독일 바이에른 뮌헨을 이끄는 카를로 안첼로티, 영국 맨시티 감독 호셉 과르디올라가 대표적이다. ◆ ‘흙수저’ 출신도 ‘금수저’ 물 수 있어
이 같은 현상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수장에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출발선이 다르다. 학력이나 경력, 외국어 능력, 집안 배경 등에서 일반 직원들보다 한참 앞 서 있다. 그러다 보니 직장 생활에서 주요 보직을 맡게 되고 성과도 좋아 승진도 빠르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 다른 사람들과 같은 지점에서 시작한 것 같지만 나중에 한참 앞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알려진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직장인들은 허탈감과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수저론’이 끊임없이 회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에서 임원이 되고 최고책임자가 되는 사람들이 모두 화려한 직장 생활의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중 일부는 직장 생활 초기에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몇몇 사람들은 다른 직장인들보다 훨씬 뒤에서 직장 생활을 출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화려한 직장 생활 경력을 토대로 조직의 최고책임자에 오른 사람 못지않게 좋은 성과를 내면서 조직을 잘 이끌고 있다.
대표적인 사람은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이다. LG전자 최초의 고졸 출신 최고경영자(CEO)인 조 부회장은 공고를 졸업한 뒤 산학 우수 장학생으로 LG전자에 입사했다.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은 공업전문대를 졸업한 뒤 대학교에 편입했다. 그는 중소기업을 다니다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고향인 울릉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2학년 때 검정고시를 치렀지만 다시 대구에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다. 그는 삼성전자에 입사해 통신사업부에 배치됐는데 입사하자마자 합작이 깨지는 바람에 컬러TV 개발팀으로 이동했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은 상고를 졸업한 뒤 은행에 취업했다. 그는 야간대학 법학과를 다니다 고시 공부를 시작해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기획재정부 차관과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 일당백 정신, 다양한 현장 경험 중요
이들의 커리어 경로는 화려한 선수 경력 없이 세계적 감독 대열에 오른 사람들과 흡사하다.
세계적 명문 구단을 이끌고 있는 축구 감독들 가운데 선수 시절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했거나 이렇다 할 프로 선수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떤 감독은 아예 선수 경험이 없는데도 빅 클럽을 이끌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대표적인 감독이 영국 맨유의 무리뉴다. 그는 하부 리그를 전전하다 다쳐 스스로 “삼류였다”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 역시 선수 시절 대부분을 아마추어로 보냈다. 그는 29세가 돼서야 1부 리그에 데뷔해 겨우 11경기를 뛰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의 우나이 에메리 감독과 독일 호펜하임의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은 2군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두 차례의 무릎 부상으로 20세에 은퇴했다. 영국 첼시의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은 선수가 아니라 스카우트팀 직원 출신이다.
이들은 어떻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망의 대상인 세계적 명문 클럽의 감독에 오를 수 있었을까. 선수 경력이 약한데 어떻게 내로라하는 스타 선수들을 이끌고 있을까. 우리는 이들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첫째, 이들은 모두 현장 경험이 풍부했다. 이들은 선수 경력이 화려하지 않다 보니 곧바로 빅 클럽의 코치진으로 합류할 수 없었다. 명문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 뛰어난 코칭 스태프와 스포츠 과학자들의 체계적 지원을 받아 가며 훈련하고 경기를 치른다.
이 과정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게 된다. 몸과 머리로 최고의 훈련 프로그램과 수준 높은 전략 전술을 익힌다. 그 결과 감독에게 필요한 코칭 자격증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쉽게 획득한다.
이에 비해 선수 경력이 짧고 약한 감독들은 선수 훈련 방법이나 경기 운영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선수단 장악이 어려울 수 있다. 세계적 선수들이 모여 있는 빅 클럽에서 선수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면 작전 지시가 먹히지 않는다.
자부심과 개성이 강한 선수들은 툭하면 감독의 지휘 방침을 무시한다. 이들을 잘못 다루면 감독이 종이호랑이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특히 팀의 성적이 나쁘면 선수단과 팬들의 비난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다. ◆ 강한 인맥 네트워크 끌어줄 멘토 있어야
이 때문에 스타 선수 출신이 아닌 감독들은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면서 밑바닥부터 다양한 경험들을 충분히 쌓는다.
무리뉴 감독은 통역관부터 시작해 전력분석관과 수석코치 등을 거쳐 감독으로 취임했다.
아르센 벵거나 우나이 에메리 감독은 유소년 구단이나 하위 리그에서 출발했다. 그곳에서 경험을 쌓고 성과를 낸 뒤에도 오랫동안 하위 팀의 코치와 감독을 거친 뒤 빅 클럽에 진입했다.
하부 리그는 재정이 부족해 코치 스태프를 많이 둘 수 없기 때문에 감독들이 1인 다역을 해야 해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경험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약한 네트워크를 보완해 주는 유능한 멘토가 곁에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스포츠계 인사는 철저히 인맥 중심으로 이뤄진다. 공개 채용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인맥이 약하면 원하는 자리로 가기가 매우 어렵다. 실력이 중요하지만 실력만으로는 안 된다.
누군가 자기 실력을 알아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원하는 자리를 얻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선수 경력이 약하면 감독 경쟁에서 일단 밀릴 수밖에 없다.
프로 선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독이나 코치, 구단 관계자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게 된다. 프로 축구계의 고위 관계자들과 알고 지낸다는 것은 대단한 자산이어서 축구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선수 경력이 약하면 밑바닥부터 인맥을 개척해 나갈 수밖에 없다. 멘토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무리뉴 감독은 선수로서 실패했지만 아버지가 감독을 맡았던 프로 구단에서 어렸을 때부터 경기를 보는 눈을 익혔다.
보아스 감독은 포르투 감독인 바비 롭슨의 지도로 17세에 축구 지도자 자격증을 딴 뒤 포르투 유스팀의 지휘를 맡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그는 선수 출신이 아닌데도 코치와 비디오분석관 스카우터를 함께 하며 현장과 이론을 섭렵했다.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은 당시 뮌헨의 U-23 코치로 일하고 있던 독일의 토마스 투헬 도르프문트 감독이 도와줘 스카우터와 비디오분석관으로 취업하는 행운을 얻었다.
◆ 장거리 하듯, 포기하지 않고 버텨라
이들은 성장과 성취에 대한 열망이 그 누구보다 강했다. 이 때문에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중단하거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벤치 신세를 전전했던 시절 좌절하기도 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선수 경력이 전혀 없는 데도 구단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고 축구에 대한 안목을 쌓았다.
이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 기회를 창출했고 축구계 고위 인사들과 인맥을 쌓는 데 가장 큰 자산이 됐다.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과정에서 쌓은 수많은 현장 경험, 1인 다역을 하면서 습득한 전략 전술의 기획과 운영 능력, 지도자 자격증 과정에서 획득한 이론적 지식은 화려한 선수 출신 감독들과 다른 차별적 강점을 만들어 냈다.
이들의 강한 열망은 특히 지도자에게 필요한 인내심을 키웠다. 어떤 분야든 지도자가 자신의 리더십 색깔을 확인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수많은 실패와 성공 경험만이 자신의 리더십이 어떤 강점을 갖고 있는지 알게 해 준다. 따라서 인내심이 부족하면 절대 유능한 리더로 성장할 수 없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리더가 되고 최고책임자가 된 사람들은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자들이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차근차근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익힌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한 단계씩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고 한두 개의 큰 성과보다 수많은 작은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견딘다. 웬만한 충격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정한 길을 꾸준히 걷는다. 이것은 능력이다. 그 능력은 훈련과 경험을 통해 배가되고 습관으로 이어진다.
직원으로 있을 때 평가를 못 받던 사람들이 간부가 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아 최고책임자에까지 오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실무보다 관리에서 더 강점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봤다. 그러니 직장 생활에서 성급한 결론은 피해야 한다.
세상은 꿈을 꾸면서 그 꿈이 실현될 때까지 버티는 사람들의 것이다. 결코 유능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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