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유럽 교회 개혁’의 핵심…‘책’을 통해 찾은 시대정신
거죽이 아니라 본질을 개혁하라
[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사전적 의미의 개혁은 ‘제도와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을 뜻한다. 무조건 뜯어고치는 것은 폭력이고 남발이다. 개혁의 전제는 ‘낡은’ 제도와 ‘쓸모없는’ 기구 따위의 존재와 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올바른 개혁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제도와 기구 혹은 생각 등 앞으로도 계속 지키고 따라야 할 가치를 가려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혁에는 ‘엄밀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2017년은 ‘유럽 교회의 개혁’이 일어난 지 딱 500주년 되는 해다.



유럽 교회의 개혁은 단순히 교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자유로운 개인’이 종교에서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근대정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어처구니없는 교회’를 깨닫게 한 지적 성장

교회의 개혁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시민들이 타락하는 교회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분노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지적 성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적 성장은 진지한 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자신의 무지와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진실과 진리 그리고 정의의 가치를 깨닫는 데서 비롯되기도 한다.


한 인간의 인식은 그가 쌓아 온 삶의 경험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공부해 얻은 새로운 각성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한 지식의 토대는 무엇일까. 바로 책이다.


흔히 르네상스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등의 위대한 화가들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것은 주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그림에 깔린 정신도 인간의 시선으로 세상과 삶 그리고 신앙을 바라보는 방식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르네상스의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책이었다. 책은 외부의 인식을 자신의 인식 세계로 수용하는 가장 중요한 채널이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 높은 이상을 내걸고 중세에 대한 경고를 날렸다.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을 통해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면서 그에 대한 비판을 풍자를 통해 시대를 깨우쳤다. 또한 사람들은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등의 작품을 통해 시대를 읽었고 그 안에서 단순하고 소박하며 생명력 넘치는 종교적 원천을 재발견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초기의 복음 신앙이 지닌 순수성을 부활시키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른바 ‘성서 휴머니즘’의 탄생이다. 그러한 자각은 윤리적·종교적 덕성을 함양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의 부패는 오히려 심해졌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증폭시켰다.

면죄부의 판매는 그 결정적 촉매였다. 거기에 불을 지른 것이 마르틴 루터의 비텐베르크 반박문이었다. 1517년의 일이다. 유럽 교회의 분열과 개혁은 그렇게 이뤄졌다. 책을 통해 각성한 시대정신 인식이 종교와 사회의 개혁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비판을 수용해야 발전이 있다

종교는 이미 어느 특정한 교회나 교파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종교와 교회를 걱정하는 형편이다.

도덕적 각성과 시대적 성찰을 통한 실천이 아니라 세력의 확장과 권력과의 유착으로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방식의 교회 성장이 지금 대한민국을 망가뜨리는 현실이다.


지금 교회에서 에라스무스가 나온들 그에게 귀를 기울일까. 마르틴 루터가 출현한들 관심이나 가질까. 지금 그들은 에라스무스를 읽을까.

에라스무스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단순성과 소박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교회의 타성적인 의식과 번거로운 교리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인도를 위한 구원의 종교를 더 높이 평가했다. ‘성경’ 본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그리스도교의 참다운 회복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런 토대 위에서 스콜라 신학의 형식주의를 비판했고 성직자와 수도자 계층의 부도덕성을 공격했으며 교회의 전반적 반성을 촉구했다. 에라스무스 같은 이들이 없었다면 루터의 교회 개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대정신도 읽지 못하고 미래 의제도 고민하지 않는 종교가 과연 존재 가치가 있을까. 현실에 대한 엄밀하고 냉철한 비판과 성찰을 통해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이 500주년을 맞은 개혁 정신의 실천이다.



기념주화를 찍어내고 순례 여행을 다녀오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것은 거죽일 뿐이다. 진정 개혁 정신을 계승하려면 책을 읽고 깊이 사고하며 시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어떤 에라스무스가, 어떤 토머스 모어가 사자후를 외치는지 바라봐야 한다. 그게 세례자 요한의 재현이다. 르네상스가 없었다면 교회의 개혁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