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자
‘눈치 보지 않는 것’ 직장인이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길 (일러스트 전희성)
[한경비즈니스 칼럼=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우리는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을까?”
가끔씩 인터넷에서 30대 직장인들이 푸념과 하소연 삼아 올린 글들을 보게 된다. 20대를 지나 30대에 들어서면 안정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답답함과 불안감을 토로한다. 직장 생활 초기에 업무에 익숙하지 않아 그런 것일 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 불안한 이유, '내 길'이 아니기 때문
30대 직장인들이 불안하고 우울해하는 것은 자기 길을 걷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길을 걸을 때 행복하다. 자신에게 익숙한 생활 조건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때 행복감을 느낀다.
가끔씩 여행에서 돌아와 자기 집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온 뒤 외출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편한가.
글을 쓸 때도 다른 사람의 논리를 억지로 갖다 붙이면 글이 엉키고 말이 꼬인다. 하지만 자신이 잘 아는 주제를 자기 방식대로 풀어 쓰면 막힘이 없다.
글이 쉽게 읽히는 것은 물론이고 진정성이 묻어나 설득력도 강해진다. 많은 강사들이 “내 경험을 이야기할 때 청중이 몰입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연봉이 많고 복리후생이 잘돼 있어도 일이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직장 생활이 퍽퍽하다. 그 직장이 비록 선망의 대상이 되는 곳이라고 해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반대로 오랫동안 같이 근무해 호흡이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자신이 즐겨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참 행복하다.
30대 직장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자기 길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 자기 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직장인들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길을 걷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아직도 부모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 채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선망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직장인은 30대 중반이 지나서야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10년 넘게 ‘고시 인생’을 살았다. 대학 내내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군대에 다녀온 뒤에도 몇 년간 사법시험을 봤다.
그는 사법고시에 연거푸 실패하자 시험 종류를 바꿨다. 그런데 행정고시는 물론이고 6급 공무원 시험에도 떨어졌다.
사법고시 1차에 두 번씩이나 붙었던 그가 6급 시험에도 떨어진 것은 의욕이 꺾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의욕을 잃은 지 한참 지났지만 부모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억지로 시험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그제야 고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 ‘나의 길’ 가려면 리스크를 감수할 용기 필요
직장인들이 불안하고 우울한 또 다른 이유는 자기가 좋아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잘하는지 대략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일이나 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다.
우선 현재의 일과 직장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어떻게 얻은 직장이고 어떻게 습득한 업무 지식인데 간단히 포기한단 말인가.
게다가 새로운 일과 직장을 얻으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의 일과 직장을 포기한다고 해도 원하는 일과 직장을 얻는다는 보장도 없다. 가능성만 있을 뿐 확신이 없으니 도전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망설이고 또 망설이게 된다. 그렇게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면 불만과 자조와 불안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도전하자니 불안하고 중단하자니 미래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 자신감이 사라지고 만다.
얼마 전 만난 중견기업의 대리도 이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대기업의 재무회계 담당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장 생활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에서 재무회계 담당자로 근무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에게 직장은 도통 매력이 없었다.
그는 대학에서도 재무회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취업에 유리하다고 생각해 재무회계를 열심히 공부했고 그 덕분에 대기업 입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다른 데 있었다.
대학 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경험했던 큐레이터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당시만 해도 큐레이터는 안정된 직업이 아니었고 그가 들어갈 수 있는 직장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큐레이터가 조금씩 조망을 받기 시작했다. 작지만 제법 체계를 갖춘 회사도 등장했다.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그 분야를 공부했다. 하지만 직업과 직장을 바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니고 있는 직장은 연봉이나 복리후생이 만족스러웠다. 이런 직장을 그만두고 큐레이터로 변신한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진로 변경에 확신을 갖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직장인들의 불안정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다. 남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대로 자기 삶을 꾸려 가는 것이다.
만약 30대 중반에 들어서도 “아직 내 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거나 “길을 알긴 알겠는데 확신이 부족하다”고 말한다면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고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불행과 불안을 즐기는 새디스트이거나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인지 돌아봐야 한다. 30대 중반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 ‘모방의 삶’ 대신 하루빨리 ‘나만의 삶’으로
물론 30대 중반에도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50대 들어서야 내 길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공자도 ‘논어’에서 50세에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됐다(知天命)고 말했다. 하지만 공자가 말하는 천명은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뜻이다.
즉 그전까지 주관적 시각에 빠져 있었지만 50세가 되면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고민하는 자신의 길은 공자가 30세에 뜻이 확고하게 섰다고 회고한 ‘이립(而立)’과 관련돼 있다.
직장인들이 “내 길을 모르겠다”거나 “확신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도전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경험을 더 많이 하고 그래서 확신이 강해지면 도전에 더 용기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경험하고 좀 더 확인한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까. 바다가 아무리 잔잔해도 호수 같을 수는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날이 밝기를 기다리다가 잘못하면 새벽을 놓치게 된다.
미국 마이애미 특성화고등학교 교사였던 다비드 메나셰 씨는 뇌종양이 악화돼 수업이 불가능해지자 치료를 중단하고 제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는 34세에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았지만 교사 생활을 계속해 왔다.
그는 두 눈이 한가운데 사물만 볼 수 있고 왼팔과 다리가 마비돼 지팡이를 짚어야만 걸을 수 있게 되자 혼자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병실에서 약과 의료 장치에 의존하다가 생을 마감하느니 생명이 단축되더라도 자신의 방식대로 살겠다고 결정했다.
그는 여행 중 객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부인마저 “자살 여행”이라고 비웃었다. 그는 살 수 있을 때 제대로 사는 길을 선택하겠다며 배낭만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그는 미국 남동쪽 마이애미에서 출발해 서쪽 끝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101일 동안 31개 도시를 다니며 자신이 15년간 가르쳤던 75명의 제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교육이 제자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제자들에게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자신의 가르침이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의 제자들은 학교를 떠난 뒤에도 “다른 사람의 요구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짜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원하는 삶의 방향을 설정해 나가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여행기를 책으로 엮은 ‘삶의 끝에서 어느 교사의 마지막 인생 수업(The Priority List)’은 죽음을 앞두고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여행은 그의 삶을 단축하는 대신 더 행복한 삶으로 이끌었다. 최악의 밑바닥에서 인생의 정점으로 그를 끌어올렸다.
◆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자신의 길’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 것으로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다른 브랜드를 따라 하거나 모방하는 것으로 독자 브랜드를 구축할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대로 살다 보면 평생 그렇게 살게 된다.
이 때문에 완전히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어느 순간 용감하게 길을 벗어나 자기의 길을 가야 한다. 자신의 방식대로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어떤 사람보다 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자신만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단지 그렇게 못하는 것은 선택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삶을 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길을 걷는데 따른 주변의 우려스러운 시선을 감수했다.
나는 직장인들에게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자기 길을 가라고 권하고 싶다.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 수는 없다. 만약 10년 뒤에도 여전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면 안전 제일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자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남과 견줘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어떤 사람보다 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자신만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단지 그렇게 못하는 것은 선택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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