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참여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미래 한국으로 가는 문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나 시민 참여는 말은 쉬우나 현실은 어렵다. 참여 비용이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투표의 비용이 엄청남은 말할 것도 없고, 도민투표와 여론조사도 그다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대신 대리인인 대통령과 국회의원 혹은 도지사와 도의원을 뽑아 그들에게 의사 결정을 위임하게 됐고, 이를 대리인을 통한 ‘대의민주제’라고 한다.
문제는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 대리인들에 대한 신뢰도 조사 결과가 최하라는 것이다. 이를 ‘대리인의 문제(agency problem)’라고 하고, 그 원인은 소통의 부족과 부패 그리고 기득권 결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대리인 문제의 본질은 신뢰 문제다.
국민 소득 3만 불을 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근본적 차이는 바로 사회적 자산이라는 신뢰의 형성에 있다. 바로 남유럽과 북유럽의 근본적 차이다. 그런데 신뢰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두고 반복되는 과정을 거쳐야 신뢰가 형성된다.
◆ 한국 신뢰 극복 대안으로 ‘블록체인’ 주목 (사진) 블록체인 개념도
그런데 한국이 빠른 시간에 신뢰의 문제를 극복해 정치의 대리인 패러독스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으로 ‘신뢰의 기술’인 블록체인(Block-Chain)이 등장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암호화’, ‘분산화’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다. 암호화를 통해 보안을 보장하고 분산화를 통해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신뢰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화폐다. 돈은 ‘교환 가능한 신뢰’로 정의할 수 있다. 돈의 신뢰를 위해 한국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화폐를 발행해왔다. 그런데 완전히 반대 개념의 새로운 화폐인 비트코인이 등장했다.
그 이론적 기반인 블록체인은 일정 기간의 거래 정보가 모여 암호화된 블록을 형성하고, 이 블록은 특정인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유되어 신뢰를 제공한다는 개념이다. 가장 안전한 것은 겹겹이 둘러싼 단일 서버가 아니라, 암호화된 분산 공개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뢰는 화폐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모든 거래와 장부는 신뢰를 위해 기록된다. 증권 시장의 거래 기록 해킹을 방지하기 위해 이중, 삼중의 보안 투자를 해왔으나 안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나스닥은 10% 미만의 비용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안전한 장외거래 시장을 만들었고, 한국도 동일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 은행 간의 결제 시장, 외환거래 시장 등 신뢰가 필요한 거래 시장이 블록체인화 한다.
IBM은 ADEPT(어뎁트)라는 블록체인 기반의 IoT 보안 플랫폼 제공을 추진하고 있다. 등기부등본, 주민등록, 법원 기록, 학교 성적, 각종 수상 기록, 개인 이력서 등 수많은 신뢰의 기록들이 블록체인화 되고 있어, 획기적인 인력 절감이 이뤄질 것이다.
국세 업무와 공공복지 업무는 물론 비영리단체의 기부금 사용 등도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투명한 공개 제도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블록체인 기반의 정부 개혁은 이미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2015년 블록체인 전자시민증을 도입하고 결혼, 출생과 각종 계약을 공증하는 신원서비스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스웨덴은 토지 등기부의 블록체인 계약을 시범 운영 중이다.
온두라스는 부동산 등기를 블록체인으로 변경해 조작 가능성을 배제했다. 두바이는 2020년까지 모든 공문서를 블록체인으로 관리해 25억 시간에 달하는 문서 관리 시간을 절약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세금과 복지기금 지불 시 블록체인을 활용하기로 했다.
◆ 4차 산업혁명은 기술보다 의사결정의 혁명 (사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2017 따복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 심사’ 방식
4차 산업혁명은 기술보다 의사결정 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융합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 개혁은 현재의 대의민주제로는 어렵다.
국민들의 의사가 실시간으로, 또 적은 비용으로 반영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구조가 필요하다. 그 대안이 바로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민주주의다.
직접"비밀 투표가 보장되는 블록체인 투표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시민을 대표하지 못하는 대리인을 주민이 소환할 수 있다. 통과돼야 할 법안과 조례를 주민 청원으로 직접 투표로 통과시킬 수 있으면 대리인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경기도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블록체인을 활용한 행정혁신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아파트 주민자치의 투명화, 지방세의 징수와 복지비용 배분의 투명화, 각종 등기와 공공계약의 혁신, 지방의회에 직접민주제 도입, 시민 참여 실시간 여론조사, 학교 급식의 개선, 학생 생활기록부, 공공기관 구매 관리, 농축산물 이력 관리 등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경기도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따복 프로젝트에 대한 적용은 너무나도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블록체인 도입에 있어 유의할 점은 보안과 공유의 목적에 맞는 시스템 설계 능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공개 시범사업을 통한 확산이 바람직한 이유다.
다보스 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양대 승자가 인공지능"빅데이터와 블록체인이라고 선언했다. 인공지능 알파고에 비해 인지도가 매우 낮은 블록체인의 한국 내 활용을 경기도가 선도해주길 바란다.
경기도는 2월 23일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2017 따복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 심사’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할 예정이다. 도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따복공동체사업’을 2015년부터 추진하면서, 예산 지원여부를 결정할 때 주민이 직접 심사에 참여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왔다.
현장에서 공동체 사업을 하는 주민들이 여느 전문가보다 더 전문성이 있다는 인식에서다. 지난해에는 703개 공동체에서 1만20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했는데, 이 많은 주민이 한곳에 모여 심의와 결정을 하기에는 비용과 시간 등의 문제가 있어 부득이 간접민주주의 방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블록체인 방식을 사용하면 선거관리위원회의 도움을 받거나 인증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도 저렴한 비용으로 안전하게 모든 주민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공동체별로 주민대표 1명이 직접 현장에 참여해 심사하고 결정하는 것은 지금과 같지만, 동시에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 온라인으로 생중계해 나머지 공동체 구성원들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심사에 참여하고 투표할 수 있는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은 1인당 1개의 QR코드를 지급받게 되며, 지급받은 QR코드를 통해 온라인으로 시청할 수 있다. 본인이 속한 공동체에는 투표할 수 없고 같은 그룹에 속한 6개의 다른 공동체에 투표할 수 있다.
QR코드에는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돼 심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불법 조작을 할 수 없으며 심사결과는 당일 현장에서 발표된다.
주민이 직접 참여해 결정하면 투명성, 객관성, 신뢰성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정책에 대한 수용성이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다. 직접민주주의 방식의 또 다른 장점으로는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정보 격차와 갈등의 문제 해결을 들 수 있다.
특별기고|이민화 KCERN(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KAIST 교수"유라시안 네트워크 이사장"KOHEA 명예이사장"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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