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 리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보여준 ‘인내’ (사진)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의 대명사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무려 200년 가까이 계속됐던 약육강식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에도 막부를 열었다. /위키백과사전
[한경비즈니스 칼럼=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일본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17세기 센고쿠 시대에 세 명의 영웅이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일본인들은 이 가운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가장 좋아한다. 그의 전기를 다룬 수많은 책들이 서점을 장식하고 있고 그를 연구하는 수많은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그의 유훈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새기는 일본인들도 적지 않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그를 일본 역사에서 최고의 리더로 존경하면서 그의 처세술이나 리더십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일본인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무려 200년 가까이 계속됐던 약육강식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에도 막부를 열었기 때문이다. 끊이지 않는 분열과 대립, 주도권 다툼, 이에 따른 잔혹한 전쟁을 끝내고 평화시대를 이끌어 냈으니 인기가 좋을 만도 하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기가 높은 것은 단순히 이런 요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요인은 ‘인내’와 ‘기다림’으로 대표되는 그의 삶의 방식이 일본인들의 정서에 잘 맞는다는 점이다.
그는 천재적 자질을 가진 것도 아니고 시대를 잘 타고난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참고 기다린 덕분에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살해당하면서 19세까지 인질로 잡혀 지냈다. 풀려난 뒤에도 50대 중반까지 당대의 권력자였던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밑에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이 반역을 꾀했다고 의심하자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부인과 아들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지시해야 했다.
그렇게 그는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묵묵히 넘기면서 인내와 기다림의 화신이 됐다. 17세에 첫 전투에 나가 74세까지 무려 58년을 전쟁터에서 보낸 당대의 대표적 무장이었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참고 기다렸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도 그는 참으면서 자신의 시대가 오길 기다렸다. 그가 남긴 유훈에는 인내를 강조한 것들이 참 많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 인생은 먼 길, 서두를 필요가 없다
직장인들이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불안과 회의, 무기력에 빠질 때가 많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내가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정도 했는데도 성과가 없으니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아니면 되돌아가야 할까.’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면 업무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런 상태가 길어지면 급기야 일에서 손을 떼게 된다.
최근 각종 조사를 보면 대졸 신입 사원의 절반이 3년 안에 회사를 그만둔다. 중소·중견기업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기업들도 신입 사원들의 장기근속 비율이 현저하게 낮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웬만하면 신입 사원을 뽑지 않으려고 한다. 뽑아봐야 교육만 받다 퇴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직원 채용에서 경력 사원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다.
직장인들이 이직과 전직을 반복하는 것은 결코 무능해서가 아니다. 적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직장에서 안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조급증 때문이다. 진득하게 참고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처음 들어오면 자신들이 예상했던 직장 생활과 다른 모습을 접하게 된다. ‘초기여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야’라고 생각하며 견뎌보지만 상황은 금방 달라지지 않는다.
이럴 때 상사와 갈등이 생기거나 다른 대안이 떠오르면 흔들리게 된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어서 다른 직무와 직장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오래하는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같은 일을 오래하는 사람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목적지까지 계속해 가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면 아무리 빨리 달릴 수 있어도 소용이 없다. 등산할 때 산의 정상에 오르는 유일한 방법은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이다. 세계적 피아니스트나 화가, 피겨스케이트 선수, 영화배우, 오페라 가수, 발레리나들도 모두 넘어지고 깨지는 아마추어 시절을 겪었다.
이들이 무대의 주인이 되고 해당 분야의 대가가 된 것은 비록 처음에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견디고 기다리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직무를 익혀 성과를 거두려면 일정한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필요한 만큼 투입해야 하고 그렇게 한 뒤에도 여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투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다리지도 않는다. 뜸도 들이기 전에 밥을 먹겠다고 솥뚜껑을 여는 식이다.
직장에서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되는 사람은 학력이 좋고 경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직장 생활을 오래 하는 사람이다.
한 해에 몇 십 명, 몇 백 명씩 회사에 들어오지만 보통 유능한 사람들부터 회사를 떠난다. 답답하고 지루하고 전망이 없다며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나선다.
그렇게 하나둘씩 떠나다 보면 어느새 조직의 수장 후보는 크게 줄어 있다. 그런데도 많은 직장인들이 이렇게 너무도 단순 명쾌한 원리를 간과하고 있다.
◆ ‘확실한 목표’를 정해야 인내가 가능하다
물론 직장인들이 이 원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고 기다리지 못하는 원인은 첫째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직과 전직이 잦은 직장인들은 대부분이 목적지가 불명확하다. 목적지가 있다고 해도 막연하기 그지없다. 그러다 보니 목적지를 보고 걷는 게 아니라 길의 상태를 보고 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연봉·직급·직책 같은 근무 조건을 보고 직장과 직무를 선택한다. 길의 상태는 늘 바뀌고 근무 조건은 계속 달라지게 돼 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보고 선택하면 직장과 직무를 계속 바꿀 수밖에 없다.
둘째 원인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하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자기 안에서 자리 잡고 있을 때 장거리 여행이 가능하다.
언젠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데 다른 길에 눈길을 돌릴 이유가 없다. 이대로 가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왜 포기하겠는가. 안개는 해가 뜨면 걷힐 것이고 비바람은 시간이 지나면 잦아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걱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도 견디고 기다리면 비범한 성과를 만들 수 있다. 반대로 비범한 사람도 기다리면서 견디지 못하면 자신의 천재성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없다.
세상이 주목할 만한 결과는 비범한 사람들이 만든 게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견디고 기다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역량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초기에 학력과 경력이 돋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근속 기간이 위력을 발휘한다.
이 때문에 경험이 많은 기업인들은 직장인들의 여러 자질 가운데 견디고 기다리는 자질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리더십 전문가 브라이언 트레이시 브라이언트레이시 최고경영자(CEO)는 “인생은 복리”라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한 근거는 명료하다.
우리가 직장에서 매일 0.1%씩 향상시키면 첫 한 주 동안 0.5% 개선된다. 매주 0.5%가 4주 동안 축적되면 한 달에 2%가 향상되고 1년이 되면 26%의 향상이 가능해진다. 매년 26%씩 10년 동안 복리로 계산하면 시작할 때에 비해 무려 1008%라는 엄청난 향상이 이뤄진다.
누구든지 멈추지 않으면 성장한다. 느린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멈추는 것이다. 일단 멈추면 죽는 것은 시간문제다. 조직 구성원이 한 사람이라도 멈춘다면 그 조직은 머지않아 추락한다. 이 때문에 경영자들은 직장에서 멈춘 직원이 생기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견디고 기다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애플의 창업자이자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성공한 기업가와 그렇지 못한 기업가를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인내”라고 말했다.
영국의 사회사상가 존 러스킨도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궁극적 차이는 인내”라고 단언했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가장 잘 인내하는 자가 무엇이든지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끝까지 지속하느냐’이지 ‘얼마나 능력이 있고 경력이 화려하느냐’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목적지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내하고 끝까지 가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나를 등용해도 3년이 지나야 성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성왕이라고 하더라도 인덕에 의한 감화가 이뤄지려면 한 세대는 걸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자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30~50년을 기다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목적지를 정했다면 적어도 10년, 아니 5년은 때를 기다리면서 묵묵히 가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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