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스마트 워크 : 확산되는 유연근무제]
30대 기업 절반이 ‘유연근무제’ 실시… 기업 ‘생산성 향상’, 직원 ‘일·가정 양립’ 만족
‘칼퇴’ 권장하는 기업들 “회사, 잘 굴러갑니다~”
(사진) 자유 근무 공간에서 업무 중인 유한킴벌리 본사 직원들. /유한킴벌리 제공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직장 생활에서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스마트 워크가 확산되면서 보다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근무하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이 ‘잘나갈수록’ 일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기존의 관습대로라면 일하는 시간을 더 늘려도 모자랄 판국에 오히려 기업들이 나서 직원들의 ‘일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앞장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1시 출근 “월요병 사라지니 일도 술술~”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으로 잘 알려진 우아한형제들에 근무하는 장창원 선임의 월요일 아침은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다. 오전 9시, 그는 네 살 난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선다.

부인의 직장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서다. 부인이 바삐 출근길에 오르면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장 선임이 아들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혀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것이다.

그 이후 장 선임은 서점으로 발길을 돌린다. 때로는 산책을 즐기기도 한다. 장 선임은 “회사 근처 올림픽공원을 한 바퀴 걷고 나면 업무에서 막혔던 일과 관련해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있다”며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업무와 관련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 편하게 즐기는 이런 시간들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장 선임은 오후 1시 회사에 출근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다. 우아한형제들은 2015년부터 주 4.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월요병을 없애기 위해’ 월요일 출근을 오후로 미룬 것이다.

이 밖에 ‘지만가(지금 만나러 갑니다)’제도를 통해 직원 본인이나 가족들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등에는 퇴근 시간을 2시간 앞당겨 오후 4시에 퇴근하도록 했다. 오히려 회사에서 직원들이 이런 날을 챙길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고 당일에는 얼른 퇴근하라고 등을 떠밀기도 한다.

또한 여성 직원이 임신하면 하루 2시간 단축 근무를 하도록 하고 부인이 임신한 남자 직원들에게도 산전 검사에 동행할 수 있도록 한 달에 한 번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일은 언제 하는 것일까. 장 선임은 “전체적인 문화가 ‘일할 때는 박력 있게’ 하고 ‘쉴 때는 화끈하게’ 쉬는 것”이라며 “오히려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17일 우아한형제들이 또 한 번 화제에 올랐다. 김봉진 대표가 3월부터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김 대표는 “지금은 이미 산업화 시대처럼 노동시간과 생산성의 관계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며 “일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서비스와 회사에 대한 애정을 갖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와 함께 그동안 우아한형제들에서 실시해 온 ‘스마트 워크 단축 근무’ 제도들이 회사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전혀 떨어뜨리지 않았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지난 3년간 연평균 약 70% 성장을 달성하며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소폭이지만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이 그 증거라는 얘기다.
‘칼퇴’ 권장하는 기업들 “회사, 잘 굴러갑니다~”
(사진) 우아한형제들 내부 모습. /우아한형제들 제공

◆ 30대 기업 중 절반이 ‘유연근무제’ 도입

우아한형제들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2015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자산 순위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실시한 ‘30대 그룹 유연근무제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15개 그룹이 ‘유연근무제’를 도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시간단축제·시차출퇴근제·탄력적근로시간제·재량근로시간제·재택근무제·원격근무제·이동근무제 등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핵심은 하나다. 보다 유연한 조직 문화를 통해 ‘스마트 워크’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은 2012년부터 자율출퇴근제를 실시 중인 삼성전자다. 출퇴근 시간에 상관없이 하루 기본 노동시간 4시간, 1주일간 총 40시간 내에서 직원들이 노동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2015년 이 제도를 전사적으로 확대했다. 실제 직원들의 만족도 또한 높다. 금요일 오후에 일찍 퇴근한 뒤 여행을 간다거나 평일 노동시간을 쪼개 외국어 학습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이 밖에 LG그룹은 LG생활건강과 LG이노텍 등 일부 계열사에서 유연근무제를 실시 중이다. 특히 LG생활건강은 국내에 유연근무제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2005년부터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높은 성과를 얻고 있다.

5개(오전 7시~오후 4시, 오전 7시 30분~오후 4시 30분, 오전 8시~오후 5시, 오전 8시 30분~오후 5시 30분, 오전 9시~오후 6시) 시간대 중 하나를 직원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육아 문제로 고민하는 여직원의 비율이 높아서인지 여성 임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자율출퇴근제 실시 이후 해마다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 조사를 하고 있는데, LG그룹 전체 평균보다 LG생활건강이 20~30% 정도 높게 나온다”고 말했다.

SK그룹은 2013년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사람·문화 혁신 차원의 권고 지침을 내놓고 2014년부터 자율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화그룹도 ‘육아기 출근 시간 조정 제도’를 운영 중이다. 남직원이든 여직원이든 구분하지 않는다.

네이버는 2015년부터 ‘책임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과 할당 노동시간이 아예 없기 때문에 각자 맡은 업무의 성격에 따라 노동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주일에 2~3일을 밤샘 근무로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머지 2~3일을 연이어 쉬는 식이다.

유한킴벌리도 유연근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이다. 유한킴벌리는 2011년부터 스마트 워크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는데, 리더의 승인만 있다면 고정된 노동시간 없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업무를 볼 수 있다.

각 부문별 협업을 위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코어타임만 지키면 된다. 2015년 설부터 명절에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직원들이 고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본격적인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고향에 도착한 직원들은 전국 각지의 유한킴벌리 스마트워크센터로 출근한 뒤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 기업 92%, “유연근무로 생산성 향상”

최근에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등에서도 유연근무제를 실시하는 곳이 빠르게 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 전문 업체인 솔트룩스는 1일 8시간 근무 규칙을 없애고 ‘주 40시간’ 근무를 적용하고 있다.

전자 문서 솔루션 전문 업체 이파피루스는 출퇴근을 스스로 하는 것을 넘어 재택근무도 가능하도록 자율출근제의 폭을 확대했고 스니커즈 등의 국내 유통을 맡고 있는 한국마즈는 오전 8시에서 10시 사이에 직원들이 자유롭게 출근할 수 있도록 했다. 몸이 좋지 않거나 업무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재택근무도 가능하다.

화장품 제조업체인 지엠홀딩스는 원격근무 시스템을 도입했다. 1주일에 1~2일 자택 등 외부 컴퓨터에서 사내 메신저에 접속해 업무 협의를 진행한다. 또 한샘개발 콜센터의 여성 상담사들은 초등학생 자녀들의 방학 기간 3개월 동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공기업 중에서는 한전KDN이 2015년부터 ‘근무시간선택제’를 도입했다. 주 5일 40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하되 직원들의 필요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다만 오전 8시에서 오후 8시 사이, 최소 하루 4시간은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이 밖에 한국농어촌공사·행정자치부 등도 자율출퇴근을 실시 중인 대표적인 공공기관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5년 말 5인 이상 사업체 1000곳을 표본조사한 결과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포함한 국내 전체 기업 중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비율은 22%다. 80% 이상의 기업이 시차출퇴근제를 적용하고 있는 미국 등에 비해 아직은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것은 유연근무제 도입을 고려하는 곳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2016년 6월 발표한 ‘유연근무제 도입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시간선택제 도입을 고려 중인 기업은 1만3338곳으로 나타났다. 2014년에 비해 무려 123.9% 증가한 수치다.

기업들이 이렇듯이 유연근무제를 비롯한 스마트 워크에 적극적인 가장 큰 이유는 ‘생산성 향상’에 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유연근무제 도입 기업 15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92.8%가 만족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가장 큰 효과로 기업은 생산성 향상(92%, 복수 응답)과 이직률 감소(92%)를 꼽았고 직원들은 일·가정 양립(96.7%), 직무 만족도 향상(96%) 등을 꼽았다.

하지만 유연근무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모두 이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스마트 워크 문화가 단지 ‘보여주기’나 ‘생색내기’가 아니라 ‘실제로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는 문화’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류진 우아한형제들 홍보실장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며 “구성원들의 인식이 변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유로운 업무 공간이나 인테리어, 자율출퇴근제도가 스마트 워크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업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업무 외에 ‘불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제거하도록 돕는 문화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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