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김영란법 6개월 : 아직 혼란스러운 김영란법]
- '김영란법' 태생부터 '모호'…재정비 목소리 높아져
헷갈리는 ‘유권해석’보다 알기 쉬운 ‘가이드라인’ 필요
(사진) 국민권익위원회 청탁금지해석과 직원들이 위반 사례에 대해 유권해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김서윤 기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반 년, 각계각층에서는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지적이다.

법 조항 자체가 모호할 뿐만 아니라 법령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는 여전히 난제다. 더욱이 아직까지 이렇다 할 판례가 나오지 않아 곳곳에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김영란법 자체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곳곳에선 좀 더 신중하고 꼼꼼하게 법을 제정하고 시행했어야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해당 법 시행 당시 국민 여론이 긍정적으로 형성되자 정부와 정치권이 서둘러 법을 통과시킨 것이 문제라는 것.

예상대로 우려했던 부작용과 문제점들이 속속 나타났다.

# 국내 모 공기업 임원의 며느리가 하도급 업체 직원으로부터 110만원어치의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다. 김영란법에 따라 며느리가 금품을 수수하면 공기업 임원에게는 법이 적용되지 않아 그 임원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 대구시 공무원 2명은 국민권익위원회를 방문해 업무 담당자에게 시가 1만800원 상당의 음료수 1박스를 전달했다. 이들은 김영란법 위반으로 벌금 2만2000원의 처벌을 받았다. 두 직원은 시로부터 자체 징계도 받는다.

# 고위 공무원을 남편으로 둔 중학교 선생이 인사를 앞두고 남편이 관할하는 단체의 임원으로부터 5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다. 이 고위 공무원은 과태료 부과 대상이지만 부인이 상품권을 받았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부인 역시 이 건만으로는 처벌받지 않았다. 이들은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한 뒤 상품권을 반환했다.

# 공기업 간부의 처남이 직무와 관련해 101만원어치의 상품권을 받았고 며느리는 관련 단체 직원으로부터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가방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김영란법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김영란법은 가족의 적용 대상을 공직자 본인과 그 배우자로 한정한다. 처남과 며느리는 둘 다 가족의 범위에 들지 않아 금액에 상관없이 김영란법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 고위 공직자 A 씨의 아들도 산하단체 직원으로부터 150만원 상당의 골프채를 선물로 받았다. 공직자의 아들이 관련 업체로부터 골프채를 선물 받았지만 A 씨는 김영란법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김영란법의 금품 수수 처벌 대상은 본인과 배우자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은 법 시행 초기 바짝 경직됐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어져 올해부터 신제품 설명회를 열고 있다. 예전 제품 설명회 때는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에게 제공하던 식사가 거의 호텔식이었다. 참석자들이 이를 꺼리는 통에 몇 달간 거의 열리지 않았다.

국내 모 기업 관계자는 “최근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합법적인 선에서 제품 설명회를 열어도 괜찮다는 인식이 높아졌다”며 “하지만 문제는 식사 등 비용 기준”이라고 말했다.

권익위가 공식적인 행사에 한해 10만원 이하의 식음료를 제공해도 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식대가 3만원까지냐, 10만원까지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시시때때로 다른 유권해석이 아닌 통일된 기준으로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규정해 주기 바란다”며 “국민들 사이에서 불필요한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법 자체를 재정비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학부모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김영란법은 공공 기관의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한 청탁과 금품 수수 행위를 금지한다. 공공 기관에는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유아교육법 및 사립학교법에 해당하는 학교법인이 포함된다.

이에 따르면 유치원은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고 어린이집은 보호자의 위탁을 받아 영·유아를 보호하는 기관으로, 영유아보호법에 적용을 받아 청탁금지 대상이 아니다.

예외적으로 국공립어린이집이나 누리과정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대표자(원장)만 적용 대상이다. 대표자가 아닌 구성원 개인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 이에 따르면 어린이집 원장에게는 선물하면 안 되고 교사에게는 허용된다.
헷갈리는 ‘유권해석’보다 알기 쉬운 ‘가이드라인’ 필요
◆며느리는 받아도 되고 부인은 안 된다?

한편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청탁금지법의 올바른 정착을 위한 정책 포럼’에서 김영란법은 형법 제13조 ‘고의범 처벌 원칙’에 반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공직자 및 법 적용을 받는 이의 배우자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형사처분을 받는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형법은 무조건 고의범만 처벌하도록 돼 있다”며 “직무를 담당하고 있지 않은 배우자까지 처벌 대상으로 정한 것은 헌법 제37조 제2항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이 국민들의 사적 활동에 과하게 개입하면 자칫 국민의 자유가 침해당할 수 있다”며 “특히 이로 인해 소비가 위축돼 서민 경제에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권익위는 ‘의심될 짓은 하지 말라’는 지침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해 법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s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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