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수출입국’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2009년 종합무역상사 지정제 폐지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무한도전’의 무한상사와 ‘미생’의 원인터내셔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종합상사가 아닐까. 국민적 예능과 드라마에서 직장인들의 애환을 표현하기 위한 장소로 하필이면 ‘종합상사’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금이야 ‘왕년의 화려한 명성’만큼은 아닐지라도 종합상사는 꽤 오랫동안 직장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글로벌 대한민국’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대한민국 수출의 첨병이었던 종합상사의 역사를 짚어봤다. (사진) 종합상사 직원들이 환율과 관련해 회의를 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70년대 ‘사막에 난로 파는’ 글로벌 부보상의 탄생
1900만 달러. 광복 직후인 1948년 대한민국의 연간 수출액은 딱 이 정도 규모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연간 수출액이 1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1964년, 그 이후 7년 만인 1971년 10억 달러를 달성했고 또 6년이 지난 1977년에 10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1995년 1000억 달러 시대로 접어들어 현재는 5000억 달러가 넘는 수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 온 것은 ‘수출의 성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합상사는 불모지였던 한국의 수출 시장을 이끌어 온 주역이나 마찬가지다.
시쳇말로 종합상사는 ‘사막에 난로를 팔고 북극에 에어컨을 판다’고 한다. 한마디로 해외 영업의 달인이자 만물상이다. 그만큼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취급하고 ‘물건을 팔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드라마 ‘미생’에 등장하는 상사맨들의 모습만 떠올려 봐도 그렇다. 일본어·중국어 등 외국어는 기본이다. 중동 지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네트워크가 닿아 있고 그들의 비즈니스 성향이나 관습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 상사맨들에게는 일상이 ‘무한도전’이다.
바로 그 ‘무한도전’의 근성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 온 종합상사의 기원은 17세기 초 영국의 동인도회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프랑스·네덜란드와 같은 서구 열강은 동인도회사를 설립, 아시아 지역의 교역 독점권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당시의 동인도회사는 가발·식기류 등 주요 품목이 정해져 있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종합상사와는 차이가 있다.
보다 현대적인 의미의 종합상사가 처음 설립된 곳은 일본이다. 영어 사전에도 ‘종합상사’가 일본어 그대로인 ‘소고쇼샤(Sogo shosha)’로 등재됐을 정도다.
1800년대 일본 개항 이후 초기 무역을 독차지한 서구 상인에 대항하기 위해 미쓰이물산·미쓰비시상사를 탄생시켰다. 태평양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일본의 절박함이 ‘뭐든 사고파는’ 독특한 사업 모델의 탄생 배경이 됐다는 해석이다.
‘절박함’이라는 씨앗을 품은 종합상사의 진화는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내에서 종합상사는 1970년대 초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계기가 된 것은 1973년 1차 오일쇼크였다. 당시 한국은 오일쇼크 이후 세계시장의 보호주의 장벽에 막혔다.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는 일본식 수출 종합상사를 도입해 ‘한국형 종합무역상사’ 제도를 만들었다. 당시 종합상사의 기준은 해외 지사 10개, 수출 국가 10개, 자본금 10억원, 연간 수출 실적 5000만 달러 이상이었다.
정부는 원자재·시설재에 대한 세제 감면, 외자 도입 허용, 수출금융 등 막대한 지원금을 쏟아부으며 적극적으로 대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종합상사의 역할은 당시 가파른 경제성장 속에서 수출이 날로 늘어나는 대기업들의 수요와도 맞아떨어졌다. 1975년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쌍용산업·대우실업 등이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됐다.
효성물산· 반도상사(현 LG상사)·선경(현 SK네트웍스)·현대종합상사 등도 잇따라 가세했다. 바로 그해(1975년) 한국이 최초로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80~2000년대 “상사맨의 가방에는 국가 기밀이 있다”
연필·한약재·바늘·통신기기까지 다루지 않는 게 없던 종합상사는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무역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담당했다. 1975년 당시 국내 수출에서 종합상사의 비율은 10%였는데 1980년대에 30%를 넘겼고 1999년에 50%를 넘어섰다.
단적인 예로, 1995년 한국 수출 기업의 10위 중 7개가 종합상사였다. 1위부터 4위는 삼성물산·현대종합상사·대우인터내셔널·LG상사가 차지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당시 ‘상사맨’들은 대학생들에게 의사나 변호사 못지않은 선망의 직업 1위로 꼽혔다. 특히 해외여행이 흔하지 않던 시절 상사맨들은 세계를 누빌 수 있다는 장점에다 대한민국의 수출 역군으로서의 자부심까지 보장되는 대표적인 ‘엘리트 직업’이었다.
당시 이들의 정보력은 종합상사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강력한 무기였다. 해외 거점 약 300개 및 해외 인력 3000여 명 등 막강한 해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고급 시장 정보를 상시적으로 확보하고 현지 유력 바이어와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다.
상사맨들은 이를 바탕으로 수출 전략을 세우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며 ‘수출 한국’을 이끌어 왔다. ‘상사맨의 가방에는 국가 기밀이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1980년대 이후 30여 년간 쌓아 온 해외시장 개척의 노하우를 국가적 자산으로 평가 받는 이유다.
삼성물산·효성물산 등 대기업 계열의 종합상사들은 소속 그룹의 수출 창구로, 연간 10%씩 성장을 이어 나갔다. 각 계열사의 영업·판매를 비롯한 모든 숫자를 ‘손안’에 쥔 그들은 꽤 오랫동안 각 그룹의 수석 계열사이자 사실상의 지주회사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당시 이들은 단지 수출대행의 역할을 넘어 금융 및 위험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해외 자원 개발, 신시장 개척, 플랜트 수출 등의 고위험·고수익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기업 간 업무 제휴가 필요한 복합 거래를 처리하기도 했다. 개별 제조업체가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을 처리하는 ‘해결사’ 역할을 자처했다.
잘나가던 종합상사는 1990년대부터 서서히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1975년 종합상사 지정 조건을 내건 지 3년 만인 1978년 종합상사 지정 조건 중 연간 수출액 부분을 ‘국내 수출의 2% 이상’으로 변경했다. 이 조건에 맞추기 위해 종합상사들은 무리한 수출 밀어내기를 동원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와 같은 과도한 실적 요구가 누적되면서 내부적으로 서서히 곪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종합상사의 핵심 자원이나 마찬가지인 ‘상사맨’들 또한 지쳐 가긴 마찬가지였다.
24시간 돌아가는 글로벌 시장에 맞춰 야근과 주말 출근은 일상, 바이어들과의 잦은 술자리에 업무 강도가 높고 경쟁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업무 특성으로 인해 종합상사의 인력 이탈이 가속화됐다. 다름 아닌 종합상사가 ‘직장인의 애환’을 나타내는 대명사로 여겨지게 된 배경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1997년 외환위기는 종합상사들의 실적에 직격탄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기업의 주요 계열사들이 독자적인 해외 영업망을 갖추기 시작했다.
각각의 대기업 계열사가 직접 수출입을 관장하기 시작하면서 ‘계열사 수출 창구’ 역할을 하던 종합상사의 입지도 급격히 좁아졌다. 더욱이 2000년 이후 정부의 지원 제도가 줄줄이 폐지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 2000년대 이후 ‘탈(脫)상사’로 활로 모색
한때 50%를 넘겼던 종합상사의 국내 수출 비율은 1999년을 정점으로 해마다 하락하더니 2007년 무렵 5.17%로 쪼그라들었다. 2008년 국내 수출 기업 10위 중 종합상사는 단 한 곳(SK네트워크, 5위), 수출 1~4위는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이 차지했다.
결국 정부는 2009년 대외무역법에서 규정했던 기존 종합상사 지정제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현재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전문무역상사’제도다. 중소기업·전문무역상사·수출지원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중소기업 수출을 일괄 지원하는 수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계획이었다.
기존의 종합상사가 대규모 무역전문회사라면 현재의 전문무역상사 제도는 정보기술(IT) 등 첨단 분야 또는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수출 전문 업체의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연간 수출액 100만 달러 이상, 타사의 제품 수출 대행 비율 10% 이상으로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아졌고 그 숫자 또한 200여 개 이상으로 많아졌다. 대기업 중심의 ‘7대 종합상사(효성·대우인터내셔널·삼성물산·SK네트웍스·GS글로벌·LG상사·현대종합상사)’가 호령하던 때와는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영광의 시절’은 끝났지만 당시 종합상사는 인수·합병(M&A) 시장에선 여전히 인기 매물이었다. 자원 개발 사업과 역량, 해외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매력적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2010년 포스코는 “수출 비율이 높아지는 만큼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며 공격적으로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했다. 인수 이후에도 ‘대우인터내셔널’이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2016년 3월 사명을 ‘포스코대우’로 바꿨다. 이는 그만큼 해외시장에서 종합상사로서 ‘대우인터내셔널’이란 브랜드의 영향력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중공업은 2009년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했고 같은 해 GS그룹도 쌍용을 인수해 GS글로벌로 이름을 바꿨다. 삼성물산·선경·효성물산도 그룹 내 다른 업종의 계열사와 합쳐지며 탈바꿈했다.
달라진 것은 이름이나 겉모습뿐만이 아니었다. 사업 부문에서도 변신을 시도했다. 대표적으로 대우인터내셔널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며 자원 개발과 선박 및 발전 투자 등을 대표적인 사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SK네트웍스는 SK텔레콤에 납품하는 휴대전화를 유통하고 SK 주유소와 충전소 그리고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종합상사는 자원 개발 부문에 역점을 두고 성장하며 국내 에너지 개발 역사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뭐든지 다 파는’ 종합상사지만 각자의 전문 분야를 찾아 신성장 동력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합상사의 위상이나 규모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축됐지만 여전히 국내 종합상사들은 자원 개발, 발전 투자, 인프라 사업 등을 전개하는 ‘종합사업회사’로 대한민국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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