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일자리 전쟁
청년 고용시장 여전히 '빙하기'…10명 중 1명은 백수

"노력해도 안 되더라" 청년 구직자들의 자화상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의 고사성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현재 청년들의 일자리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3월 취업자 수가 1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나는 등 고용 시장에 봄바람이 불고 있지만 청년 고용 시장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 실업률은 전년 동월 대비 0.5%포인트 하락한 11.3%를 기록했다.

수치가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청년 10명 중 1명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취업”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진로와 무관한 알바에 ‘자괴감’

청년들의 구직난은 올해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청년이 입사하길 원하는 대기업 채용 시장의 동향을 엿보면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상반기 중 신입 사원을 채용하는 기업 321개 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45.8%) 정도가 신입 채용을 줄이는 대신 경력 채용을 늘릴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의 ‘경력 선호’ 현상에 떠밀려 대학 졸업자들은 졸업 후에도 취업 재수 또는 삼수라는 상황에 직면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마냥 공백기를 가질 수만은 없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화장품 회사 마케팅 직무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던 백 모(여·24) 씨는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해 현재 외국계 화장품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대학교 4학년 내내 여기저기 입사 원서를 넣었지만 합격한 곳이 없었다. 졸업 후 공백이 길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본인의 취업 희망 업종인 화장품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주된 일과는 연예인에게 보내는 협찬 물품을 포장하고 창고를 정리하는 일이다. 그는 “회사에서 연예인 한 명에게 보내주는 선물이 내 월급보다 많다”며 “포장하면서 어떻게 해야 리본을 예쁘게 묶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백 씨는 본인이 대학 시절 내내 쏟은 노력이 취업 시장에서는 ‘기본’으로 취급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큰 좌절감을 맛봤다고 했다.

그는 “(면접관들이) 요즘은 스펙보다 ‘스토리’라며 청년 구직자들에게 남들과 다른 경험을 요구한다”며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버티며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겐 ‘자전거로 세계 일주’라든지 ‘히말라야 등반’ 같은 이색적인 스펙은 다른 세상 얘기에 가깝다”고 막막함을 호소했다.

백 씨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취업대신 하는 아르바이트라도 본인이 가고자 하는 진로와 관련된 곳에서 일하면 스펙에 플러스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부분의 취업 준비생은 학자금 대출을 갚거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본인 진로와 무관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뛴다.

졸업 후 취업 준비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는 이 모(여·25) 씨는 인턴도 해보지 못하고 졸업했다. 학비를 버느라 1학년 때부터 공장·백화점·병원 등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이 때문에 학점과 어학 점수 외에 이렇다 할 스펙도 쌓지 못했다.

이 씨는 오전 중에는 학교에서 개설한 취업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물건을 정리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진상 손님’을 응대하는 일이다.

반말하는 손님은 기본이고 종이컵이나 라이터처럼 구매 물품을 공짜로 달라며 화내는 이도 많기 때문이다. 알바를 하다 보면 자존감이 낮아질 때가 많다.

이 씨는 “한번은 손님이 계산하면서 자기 아이에게 ‘너도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 얘길 들으면서도 억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면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뒤따른다고 말했다. 이 씨는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자격증 시험을 위한 학원 한 곳이라도 더 다니고 싶다”며 “아르바이트할 때마다 ‘남들은 지금 공부하느라 정신없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우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드라마 ‘미생’에 ‘저 많은 불빛 중 내가 속해 있는 불빛은 하나도 없구나’라는 대사가 나와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높은 건물 속을 걷다 보면 정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저 불빛 중 하나가 될 날만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죠.”

◆‘공시 대란’도 취업난이 원인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학원에서 수험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학원에서 수험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무원은 청년들이 희망하는 직업 1위가 됐다. 이런 현상도 취업난이 주된 요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월 8일 치러진 2017년도 9급 공무원 필기시험에는 원서를 접수한 22만8368명 가운데 17만2747명이 응시했다. 이날 시험은 결시 인원이 많아 실질 경쟁률은 35.2 대 1을 기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공시생)은 2011년 18만5000명에서 지난해 25만7000명으로 5년 새 38.9%나 늘어났다. 극심한 취업난과 일자리 부족으로 공무원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공무원 양성소’라고 할 수 있는 노량진 학원가에는 하루에도 수천 명의 공시생이 모여든다. 노량진에서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 모(남·30) 씨는 하루빨리 노량진을 떠나는 것이 꿈이다.

그는 서울 소재 대학에서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취득한 중등학교 정교사 2급 자격증으로 임용고시에 한 차례 도전했다. 하지만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지금은 방향을 틀어 교육행정직 9급 공무원에 도전 중이다.

그의 하루는 학원이 문을 여는 새벽 6시부터 시작된다.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세수만 간단하게 한 후 곧장 학원으로 향한다. 500명이 듣는 대형 강의이기 때문에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시작은 9시지만 시험 준비생들은 학원 문을 여는 6시부터 줄을 선 채 공부하며 강의 시작을 기다린다. 오전 강의가 끝난 후 점심은 편의점 음식이나 컵밥으로 때운다. 식사할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은 바로 ‘가격’이다.

그는 “한 달에 식비로만 30만원이 나가기 때문에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점심 후에는 다른 강의를 듣거나 학원에서 자습한다. 몇 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왔지만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더 막막하다고 했다.

고시를 비롯한 모든 공무원 시험은 한 번에 합격이 어려워 2~3년 동안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그 준비 기간은 합격했을 때만 의미가 있다.

김 씨는 “공시생은 시험에 떨어졌을 때 다른 대안이 없다”며 “합격하면 이후의 삶이 보장되지만 불합격하면 그동안의 시간을 낭비한 게 된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로 한 해 한 해를 보내다 서른을 넘겨버린 고령의 청년 구직자들 가운데도 일반 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례가 많다. 대부분의 기업은 채용 과정에서 나이에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나이가 많으면 면접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청년 구직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취업 장수생이던 박 모(남·36) 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대학 졸업 후 28세부터 자격증 등을 따며 대기업 취업 준비를 했지만 낙방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4년이 흘렀고 32세가 되자 일반 기업엔 들어가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서른 살이 넘어 본 일반 기업 면접은 대학 졸업 후 그동안 뭐했냐는 면접관들의 질문이 반드시 나왔다”며 “이전에는 내가 모자라 탈락했거니 생각했지만 이후에는 떨어질 때마다 나이 때문인 것만 같아 자괴감이 컸다”고 했다.

결국 그는 2년 전부터 나이 제한보다 시험 성적에 따라 결과가 갈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원하는 공무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지난해 비슷한 채용 절차를 가진 공기업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현재 그는 서울을 떠나 춘천에서 생활 중이다. 박봉에 타지 생활이 외롭긴 하지만 일반 기업을 목표로 계속 취업 준비를 했더라면 아직도 백수 신세였을 것이라며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전했다.

◆금수저, 창업으로 백수 탈출

청년 고용 시장에서도 소위 말하는 ‘수저론’은 존재한다. 금수저에 속하는 취업 준비생은 취업이 안 되더라도 느끼는 부담이 덜하다.

정 모(남·35) 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현지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중퇴해 한국에 돌아왔다. 고졸 출신이 된 그가 한국에서 취업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기업 사무직은 학력 미달로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유학 생활을 했던 만큼 유창한 영어 실력을 토대로 중소기업에 취업할 기회도 여러 번 있었지만 월급이 적어 가지 않기로 했다.

그는 현재 창업으로 백수 탈출을 꿈꾸고 있다. 창업자금은 30년 넘게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아버지가 지원해 주기로 했다. 상권 좋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어떤 업종으로 창업할지 고민 중이다. 생계형 알바를 병행 중인 청년 구직자가 보기엔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청년 구직자들은 청년 실업률이 고공 행진을 하는 주된 이유가 바로 공무원이나 대기업 쏠림 현상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해결책으로는 무엇보다 중소기업의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에서 영업직으로 약 반년 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전 모(남·34) 씨는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반년 전 직장을 그만뒀다.

밤낮으로 영업을 뛰어도 그가 받았던 월급은 주변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의 절반에 불과했다. 대놓고 나가라는 회사도 종종 있어 고용 안전성도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결국 노량진 학원가를 찾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그는 “직원들의 복지를 뒷전으로 생각하는 회사에 남아 있기 싫었다”며 “안정적이고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으로 진로를 변경했다”고 했다.

일본에서 3년간 생활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취업을 준비 중인 기 모(남·28) 씨도 한국의 중소기업 처우가 일본보다 훨씬 열악하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 중소기업은 초봉 월급이 200만원 수준으로 한국보다 훨씬 낮지만 혼자 사는 직원들에게 월세 등 거주비의 일정 부분을 지원하고 근속 연수가 길어질수록 큰 폭으로 급여를 올려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 중소기업은 ‘인재 모시기’에 한국보다 더욱 적극적이다. 여러 중소기업이 모여 대학가 앞에 카페를 차려 놓고 수시로 회사 설명을 하는 사례도 있다.

대형 채용 박람회 때만 부스를 설치해 반짝 회사 홍보를 하는 한국 중소기업들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일부 청년 구직자들은 대기업 역시 학력이나 학점에 제한을 두지 않고 공채했으면 하는 바람을 보이기도 했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김영은 인턴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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