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관계없이 ‘아무 곳’ 취업해도 ‘실적 인정?’…혈세 낭비의 단적인 사례
[한경비즈니스=김서윤 기자]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수많은 정책을 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고용노동부 소속 고용센터다. 고용센터는 구직자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고용센터는 민간 위탁 기관과 연계해 여러 일자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하지만 일부 현장에서는 정부 정책을 악용해 진정한 ‘일자리 창출’과 거리가 먼 일들을 벌이기도 한다.
연년생 자녀 출산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김 모(35) 씨는 재취업을 위해 고용노동부 산하 안양시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재취업에 성공하기는커녕 취업 의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고용노동부에서 시행 중인 ‘취업 성공 패키지’ 프로그램을 위탁받아 진행하는 한 민간 업체 때문이었다. 고용부로부터 위탁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 업체는 구직자에게 경력과 상관없는 곳에 취업을 알선하고 자사와 관계 있는 업체에 김 씨를 위장 취업시키려고 했다.
김 씨는 아이들을 조금 키워 놓은 뒤 근무하던 직종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출산을 계기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되면 다시 본래 했던 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는 대안을 찾았다. 만약 2~3년 뒤 재취업이 되지 않으면 차선책을 마련하기 위해 평소 관심 있었던 분야의 교육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따겠다고 계획했다. (사진)=서울시의 한 고용센터다./ 한국경제신문DB
◆ 경력과 상관 없는 취업 알선
김 씨는 초기 상담을 통해 ‘취업 성공 패키지’ 프로그램 중 유형2 과정을 소개받았다.
1단계 직업 선호도 검사와 세 차례 상담을 통해 지원자의 적성과 진로 방향을 결정하고 2단계 관련 분야의 교육을 이수한 뒤 3단계 취업 알선 과정을 통해 취업 성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니 참여자들의 후기 반응도 좋고 꽤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여겨져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안양시 고용복지플러스센터는 프로그램 위탁 업체 K사에 김 씨를 연결해 줬다. 김 씨는 1단계 세 차례 상담 과정을 마치며 참여 수당 15만원을 지급받았고 2단계에서는 내일배움카드를 통해 교육비를 200만원 한도로 지원받았다.
김 씨는 취업이 안 되면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하기 위해 쇼핑몰 창업 교육을 신청했다. 남은 지원금으로 웹 디자인 과목도 수강했다.
문제는 고용센터의 위탁 업체 K사의 취업 알선 과정에서 발생했다.
“모 기업의 구내식당 주방 보조에 지원하라는 문자를 받고 황당했어요. 상담 초기에 이력서를 제출했고 적성과 원하는 분야에 대해 취업 희망 순위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성이나 기존 경력과 상관없는 전혀 엉뚱한 분야로 취업을 알선하는 게 이상했죠.”
김 씨는 K사에서 자신의 상담을 맡았던 담당자를 찾아가 왜 이런 문자를 보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담당자의 답변을 듣고 더욱 경악했다. (사진)= 고용노동부에서 진행 중인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 씨는 경력과 상관없는 취업 소개 문자를 받고 황당했다고 전했다.
◆ 실적 위해 ‘위장취업’ 권유까지
“OO씨, 아무리 전문직 종사자라고 하더라도 아이 낳고 키우면서 경력 단절 기간이 있는 여성들은 기존과 동등한 레벨의 회사로 재취업하기 힘든 게 현실이에요. 출산하고 직장을 그만둔 여성들은 같은 직종에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이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업무의 질이 낮은 곳으로 가더라고요.”
김 씨는 담당자와의 상담을 통해 취업에 대한 희망을 갖기보다 좌절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은 요리에 소질이 없으니 경력과 상관있거나 ‘취업 성공 패키지’를 통해 교육받은 분야의 기업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담당자의 상담은 갈수록 가관이었다.
“위탁 기관 담당자가 아는 기업이 있으면 일단 취업하고 한 달만 다니다가 그만둬도 된다고 제안하더라고요. 4대 보험을 적용받고 법정 노동시간인 주당 40시간 넘게 근무하는 조건으로 입사하면 회사 측으로 고용촉진지원금이 지원되고 패키지 이수자에게도 참여수당이 지급된다고요. 위탁 업체는 프로그램 참여자가 취업까지 성공하면 실적으로 인정된다며 아는 회사가 없으면 자신이 소개해 주겠다고 제안했어요. ‘경단녀’가 된 것도 마음이 상했지만 애써 만든 정책이 ‘세금 낭비’로 이어지는 게 더 화가 나더군요.”
이런 사태에 대해 안양시 고용복지플러스센터는 “지난해에만 관내 8000명이 넘는 참여자가 프로그램을 이수했다”며 “지침대로 정기 점검과 전수조사를 하지만 수천 명 참가자들의 상담 일지를 일일이 다 확인하기는 힘들다”고 해명했다.
센터 관계자는 “민간 위탁 지원금과 참여자의 수당 등을 수시로 검토하고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위탁 기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면 사실 확인을 거친 뒤 적절한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s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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