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새로운 시도·독창적 차별화 필요
[한경비즈니스= 한호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과학 속에 예술이 있고 예술 속에 과학이 있다.’ 엘렌 랭어 하버드대 교수의 주장이다. 과학은 명료하고 예술은 모호하다는 고정관념과 과학은 유용하고 예술은 오락거리라는 사람들의 이분법적 사고를 뒤집는 발언이다.
그동안 경영과 비즈니스는 과학을 우선시했다. 숫자를 따른 것이다. 경영의 숫자 숭배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벨연구소에 근무하던 통계학자 에드워드 데밍은 과학적 연구 방법론을 경영에 접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종전 후 일본으로 건너가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품질관리를 정착시켰다.
데밍의 방법론을 받아들인 일본 기업들은 승승장구했고 ‘데밍상’을 제정해 지금도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경영학의 구루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 역시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로 6시그마 등 숫자 중심의 경영 혁신에 불을 지폈다.
과학을 표현하는 수단이 숫자라면 예술을 표현하는 수단은 이미지다. 음악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악성 베토벤도 “내 아이디어의 원천은 이미지”라는 말을 남겼다.
위대한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내 취미는 이미지를 가지고 장난치며 노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대한 음악가와 과학자 모두 이미지를 기반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기업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려면 이미지를 도입해야 한다. 숫자를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이미지의 기반 위에 숫자를 얹어야 한다.
왜 숫자만으로는 부족할까.
첫째 이유는 오차 범위를 앞세우는 통계가 그렇듯이 숫자 자체가 부족하거나 훼손된 정보이기 때문이다. 1과 2 사이에는 1.1, 1.2 등등이 있고 1.1과 1.2 사이에도 무수한 숫자가 있다. 즉, 우리가 보려는 부분의 숫자만 볼 뿐 전체를 보지 못한다.
둘째 이유는 많은 경우 숫자가 과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결과를 알려줄 수 있지만 문제 해결 방법을 보여주지 못하고 미래의 방향 제시도 못 한다.
당연하다. 숫자는 그것을 도출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갖춰진 다음에 나오기 때문이다. 숫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에게 상상력이 필요하고 상상은 이미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사진)=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 미켈란젤로는 ‘플라톤 철학’을 공부한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다. 그는 미술 경쟁력의 원천이 공부라는 사실을 증명했다./한국경제신문DB
◆ ‘인포그래픽’ 같은 이미지 추구해야
스티브 잡스의 좌우명은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다. 원래 이 말은 피카소가 한 말이다. 피카소는 대부분의 미술 유파를 섭렵한 후 각 유파의 장점을 따 그의 작품 세계를 완성했다.
여기서 ‘훔친다’는 말은 여러 가지를 융합해 새롭게 만든다는 뜻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를 비즈니스에 적용했다. 여러 제품의 장점을 종합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냄으로써 차별화했다.
이미지로 사고하라면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원래 사람은 숫자보다 이미지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밤하늘에는 쏟아질 듯 별이 많았다. 우리는 그 별들의 개수를 세거나 거리를 측정하지 않았다. 은하수나 오리온자리, 카시오페이아자리를 찾아다녔고 견우와 직녀의 이별 이야기를 듣고 아쉬워했다.
이러한 사실은 최첨단 과학으로도 입증됐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저의 사고방식이 됩니다. 이러한 사고 과정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액정표시장치(LCD) 업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마리 루 젭슨은 뇌 스캔과 뇌파 촬영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 숫자보다 이미지가 우선이라는 것은 상식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나열된 숫자보다 그래프를 더 잘 이해하고 그래프보다 인포그래픽을 더 좋아한다. 표현 방식이 숫자에서 인포그래픽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경영과 비즈니스도 이미지를 추구해야 경쟁력이 생긴다.
이미 많은 기업이 이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창조학교로 불리는 스탠퍼드대의 D(디자인)스쿨과 세계 최고 혁신 기업으로 꼽히는 아이디오(IDEO)에서 활용하는 혁신 방법론 역시 이미지를 우선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브레인스토밍’보다 ‘보디스토밍’을 중시한다.
책상 뒤에서 머리만 굴리지 않고 현장에 나가 직접 체험하며 문제점을 관찰한다. 해결책도 통계 숫자나 이론보다 대강이라도 프로토타입 모형을 만들어 뗐다 붙였다 들여다보면서 도출한다. 머리와 오감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이미지 활용법이 그동안 ‘디자인 싱킹’ 등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앞세워 많이 나왔다. 3D 프린터까지 나왔으니 앞으로도 이미지·디자인의 중요성은 더 강조될 것이다.
미술은 이미지와 디자인의 핵심이다. 그리고 미술이야말로 다른 어떤 비즈니스보다 경쟁이 가장 치열하므로 차별화를 통해 경쟁력을 얻고자 하는 경영자들은 미술에서 다양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라고 모두 같은 등급이 아니다. 기술 중 몇 가지는 예술(fine art)의 반열에 오른다.
일반 기술과 예술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정해 놓은 기준에 따르면 육체적 노력만 들어가면 ‘기술’이고 정신적 노력이 들어가야 ‘예술’이 된다.
르네상스 이전까지만 해도 미술은 예술이 아니었다. 당연히 미술가도 예술가가 아니라 그냥 페인트장이였다. 페인트장이가 예술가가 되려면 페인트에 정신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래서 미술가들은 성경과 신화와 철학을 공부했다. (사진)=야수파 화가 폴 고갱의 ‘아레아아레아’. 야수파는 인상파에 반기를 들며 원색을 사용한 작품을 내놓았다./한국경제신문DB
◆ 뉴턴 ‘광학 이론’ 접목한 모네의 ‘수련’
르네상스의 3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로는 미술가이자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플라톤 철학’을 공부한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다.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이데아론이다. 그는 지식과 진리의 핵심인 불변하는 이데아가 있다고 주장했다.
플라톤 철학을 공부한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을 조각하면서 “나는 대리석 안에 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깎아냈다”는 말을 남겼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구현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평생 가난과 노동에 시달렸지만 공부와 연구를 쉬지 않았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공부는 미술에서 지금까지 경쟁력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미술아카데미는 고전파가 지배하고 있었다. 고전파는 고대 그리스의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엄격한 형식미를 추구했다. 심지어 각 대상을 표현하는 색도 정해 놓았다.
이런 심사위원들이 지배하는 ‘살롱전’에서 찰나의 순간을 스치듯 그린 인상파 그림이 당선되기는 어려웠다.
인상파는 빛에 따라 색이 변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를 증명하려고 모네는 이젤을 여러 개 펼쳐 놓고 아침·점심·저녁 빛에 따라 달리 보이는 ‘수련’, ‘루앙 대성당’을 빠르게 그렸다. 인상파는 아이작 뉴턴의 ‘광학 이론’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공부를 통해 진리를 깨닫고 이를 회화에 반영하는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 예로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려는 시도였다.
기업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공부는 물론이고 특히 인문학을 공부해야만 한다. 아이폰을 만들어 낸 힘은 스티브 잡스가 꾸준히 쌓아 온 인문학적 지식과 미적 감각에 있었다.
예술은 적자를 통해 계승되지 않고 서자를 통해 이어진다는 말이 있다. 미술의 또 다른 전통은 반항과 일탈이다.
살롱전에서 대거 탈락한 인상파는 이에 굴하지 않고 낙선한 화가들을 모아 ‘낙선전’을 열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는 여성 누드를 그렸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과 욕설을 듣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이후 그림의 주류는 고전파에서 인상파로 넘어간다.
‘야수파’는 인상파에 반기를 들며 시작했다. 이들은 인상파와 또 다른 새로운 시각과 기법을 나타내기 위해 빨강·노랑·초록·파랑 등의 원색을 사용했다. 고흐와 고갱의 영향을 일정 부분 받아들이면서 강렬한 색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반대로 ‘추상파’는 순수 조형을 부각해 점·선·면을 더 강조했다. (사진)=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집단적 발명’. 상식과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작품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인 화가가 됐다. /한국경제신문DB
◆ 예술의 전통은 ‘반항과 일탈’
지금도 이러한 반항은 계속되고 있다.
마르셀 뒤샹은 소변기를 예술품으로 전시해 기성품도 예술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한술 더 떠 앤디 워홀은 통조림이나 연예인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천명하고 이를 비싼 값에 팔았다.
미술가들은 왜 적자가 아니라 서자가 되려고 했을까. 앞 세대와 차별화를 기해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미술가들은 온갖 차별화된 시도를 한다. 백남준처럼 새로운 기술인 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동물의 사체를 전시하거나 오물로 캔버스를 색칠하는 사람도 있다.
피카소는 평면에 입체를 그리려고 시도했고 그래서 전면과 옆면이 동시에 보이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피카소만큼 유명한 화가가 또 있다. 그의 작품은 영화 ‘매트릭스’와 ‘하울의 성’의 모티프가 됐다. 비틀스와 애플의 사과 로고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유명해 김영하 소설가는 그의 작품을 책 표지에 인쇄했다.
그는 ‘사람들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시적 이미지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회화의 변방인 벨기에에서 세계적인 화가가 됐다. 바로 르네 마그리트다. 그는 독창적인 차별화 전략을 시도했는데 비즈니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단순화와 과장이다. 인물의 특징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캐리커처를 떠올리면 된다.
‘삶의 예술’이란 작품은 산을 배경으로 화면의 반 정도를 차지할 만큼 얼굴을 크게 그려 았다. ‘듣는 방’이란 작품에서는 방 전체를 차지하는 사과를 그려 넣었다. 관련성 없는 배경과 과장된 크기가 ‘낯선 느낌’을 자아낸다.
비즈니스에서도 이런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 블루오션을 찾기 위해 ‘전략 캔버스’를 그리는 이유는 우리만의 가치를 찾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태양의 서커스’는 동물 등 잡다한 볼거리를 없애고 스토리에 집중해 성공했다.
단순히 크기를 늘리거나 줄이기만 해도 새로운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컵라면을 반으로 줄이면 다이어트 면이 되고 늘리면 왕뚜껑 면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둘째, 역발상이다. 어렸을 때 물고기 머리에 사람 다리를 한 그림을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집단적 발명’이란 작품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 머리에 물고기 꼬리가 달린 인어공주를 상상한다. 거꾸로 그린 인어공주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역발상은 비즈니스에서 늘 강조되는 개념이다. 흡연 금지 구역이 되면서 PC방 손님이 줄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한 PC방 주인은 ‘흡연방’을 만들어 PC를 무료로 사용하게 했다.
셋째, 이질적인 것의 융합이다. ‘자연의 은총’이란 작품은 큰 나뭇잎과 새의 머리를 융합한 그림이다. 나뭇잎과 새 머리의 이질적인 융합이면서도 잘 어울려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현대 기술의 총아인 스마트폰은 융합의 산물이다. 전화기·인터넷·사진기·녹음기 등 붙일 수 있는 것은 다 붙였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니 잘 붙지 않는 것을 붙여야 쉽게 성공할 수 있다.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시대의 최신 지식을 습득해 자신의 제품에 응용해야 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추가해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미술은 기업보다 훨씬 더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발전해 왔다. 대가들의 차별화 방법을 들여다보면 기업이 승리할 수 있는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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