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중소기업 천국 만들겠다”…99% 우선 정책으로 경제민주화 (사진) 문재인 대통령.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김서윤 기자] “중소기업 천국을 만들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한 달 전인 4월 10일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문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는 경제의 체질 자체를 변화시킬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과 부유층이 잘살면 사회 전체가 성장한다는 ‘낙수효과’ 대신 중소기업·벤처,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가계별 실질소득을 늘려 경기를 부양한다는 ‘분수효과’를 택했다.
1% 대기업을 위한 정책보다 99%(중견·중소기업 11%, 소상공인 88%)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펼쳐 소득 주도의 성장과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기존의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가칭)로 확대·신설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장관 1인, 차관 1인, 4실(기획조정·기업성장정책·창업벤처혁신·포용성장지원), 3국, 53개 이상의 과로 구성된다. 기존의 청에서 장관급 조직으로 격상하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벤처·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을 위해 여러 부처에서 각각 추진하던 정책들을 일원화해 통합 정책을 펼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기존에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미래창조과학부·중소기업청에서 나눠 맡던 업무를 중소벤처기업부로 이관하고 독립된 부로서 위상을 강화해 더욱 효율적이고 추진력 있게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도 함께 맡는다. 이를 위해 자금 지원, 세제 및 법 규제 개혁도 강행할 계획이다.
◆ 장관급 조직 ‘중소벤처기업부’ 신설
중소벤처기업부는 창업 지원을 확대해 벤처·스타트업을 중소기업으로 키우고 중소기업을 중견기업과 대기업으로 육성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 과정에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자연스레 가계 소득이 늘어나는 선순환 생태계를 기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창업 육성을 위해 연대보증제도를 완전 폐기하고 ‘삼세번 재기 지원펀드’를 운영할 계획이다. 또 실패한 창업자들의 개인 채무 워크아웃 등을 지원한다. 창업지원펀드·모태펀드·엔젤매칭펀드 등 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정부 조달 참여도 확대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 규모를 새 정부 임기 내에 2배로 확대하고 약속어음 제도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4차 산업혁명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해선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국민의 안전 등을 위해 금지된 것을 빼고는 원칙적으로 신산업 분야에 대한 모든 규제를 풀어 발목을 잡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도로망, 공공 빅데이터센터 등 인프라도 구축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공동 사업을 공정거래법상 ‘담합’에서 제외해 육성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새 정부는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덜고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2+1’ 제도를 도입한다. 중소기업이 청년 2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추가로 셋째로 채용하는 직원의 임금 전액을 3년간 지원할 계획이다. 3년 동안 5만 명에 대해 연 2000만원 한도에서 지원할 방침이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성과공유제를 도입한 중소기업 노동자가 받는 성과급에 대해 세금 및 사회보험료 감면 혜택을 부여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와 함께 ‘을지로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설치해 관련 정책을 진두지휘할 방침이다. 을지로위원회는 검찰·경찰·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감사원·중소벤처부 등을 망라하는 범정부 조직으로, 갑을 관계의 고질적인 불공정 행위를 뿌리 뽑는 역할을 맡게 된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기존의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의 이익을 대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산업부의 눈치를 보는 등 서로 불편한 관계를 이어 왔다”며 “조직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산업부와 중소기업청이 분리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대한민국의 중소기업들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에는 자원과 역량에 한계가 있었다”며 “정부는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협력 업체로서 계열화와 분업에 의해 수익을 늘려 왔다”며 “이를 통해 수출이 확대되는 효과도 있었지만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종속되는 부작용도 낳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중소기업을 수평 계열화하고 연구·개발(R&D) 지원 등 종합적인 육성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며 “대기업 수준의 매니지먼트 전문 회사와 협력해 해외시장에 진출해 수익을 나누는 비즈니스 모델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에서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높인다면 세계시장에서 영향력이 충분히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문재인 정부가 신설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정책을 통합·관리할 수 있는 막강한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중소기업 육성 사업은 1347개다. 예산은 지난해보다 0.7% 늘어난 16조5800억원이다.
전체 19개 중앙 부처 가운데 18개 부처는 288개 사업에 14조2900억원을 지원하고 17개 지방자치단체는 1059개 사업에 2조29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문제는 각 사업에 대한 예산 지원이 중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 중소기업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5개 부처에서 진행하는 8개 사업을 통해 943억원을 중복해 지원받았다. 또 다른 B 기업은 5개 부처의 31개 사업에서 300억원을 중복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백훈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지원 사업은 지원 주체가 중앙 부처와 지자체 등으로 분산돼 있어 유사 중복 사업이 발생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재정적인 비효율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백 연구위원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체계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에서 총괄해 통합·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중소기업정책심의회’를 설치해 성과 중심형 지원 사업 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골목상권이 살아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소신으로 소상공인 관련 정책도 다양하게 내놓았다. 88%의 소상공인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한다. 우대 수수료 기준을 2억원에서 3억원으로, 3억원에서 5억원으로 확대한다. 연매출 5억원 이하의 중소 가맹점에 적용되는 우대 수수료율은 0.3%포인트 인하해 1%로 책정할 계획이다.
임차인 보호를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도 개정한다. 상가 건물 임대차보호법의 권리금 보호 대상을 확대하고 퇴거보상제도를 도입해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부담을 완화할 방침이다.
소규모 영세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공무원 복지 포인트의 30%는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한다. 또한 전통시장에 화재 방지 시설을 설치하고 주차장 설치를 지원한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협업화 사업 지원과 금융 지원, 사회보험료 지원 등 정책도 추진한다.
소상공인 성실사업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소상공인 시장 진흥기금도 확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복합 쇼핑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지역 상권 및 전통시장을 보호할 방침이다. ◆ 벤치마킹할 만한 해외 중소기업 정책
1970년대부터 조선·제철·자동차 등 산업을 육성하며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펼쳐 온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는 중소기업을 육성해 나라 경제를 탄탄하게 지킨 사례가 많다.
선봉은 독일이다. 독일은 산업의 대부분을 제조업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 근간에는 강소기업(히든 챔피언)이 있다.
히든 챔피언은 독일의 경제학자 헤르만 지몬이 그의 저서 ‘히든 챔피언’을 통해 알린 개념이다.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기업이지만 기술력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강소기업을 말한다.
독일의 히든 챔피언들은 독일 경제가 어려울 때 나라를 지탱하는 힘이 됐을 정도다. 히든 챔피언은 생산성과 효율성 면에서 스위스·오스트리아·미국 등 주요국 기업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의 중소기업이 강소기업으로서 성장한 데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R&D에 높은 비중을 둔 것이 주효했다. 대기업보다 더 높은 비중의 투자를 하기도 한다.
독일의 강소기업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핵심 부품 생산에 집중하며 대기업이 진입하지 않는 틈새시장에 특화해 진출해 왔다.
오랜 전통의 가족 기업이라는 특징도 가진다. 200년 이상 된 장수 기업의 15%는 독일 기업으로 안정적인 지배구조 속에 장기적인 투자가 가능하다.
긴 기업의 역사를 갖고 있어 장기간 거래한 은행으로부터 금융 지원도 쉽게 받는다. 이렇게 지원받은 튼튼한 기업 자금력을 R&D와 인력에 투자하면 선순환돼 높은 기술력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하는 그림이다.
독일 중소기업들의 체계적인 인력 양성 시스템도 눈에 띈다.
독일은 마이스터제도를 통해 고급 기술 인력을 양성한다. 청소년의 60%는 학업과 중소기업의 직업교육을 병행한다. 중소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85~90% 수준이며 전문 기술을 가진 마이스터는 박사급에 준하는 사회·경제적 대우를 받는다.
해외 국가들이 중소기업 정책을 운영하는 방식도 본받을 만하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해외 주요 국가의 중소기업 정책 정부 조직은 장관급 독립형, 장관급 통합형, 차관급 독립형으로 분류된다. 미국과 프랑스는 장관급 독립형이고 영국·독일·대만은 장관급 통합형으로 운영 중이다.
미국의 중소기업처는 다른 연방정부 기관의 간섭을 받지 않는 대통령 직속 독립 행정기관으로 독립성과 자율성이 높은 편이다.
프랑스는 과거에는 중소기업 관련 정책을 경제와 산업 관련 조직에서 담당했지만 2012년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활성화하기 위해 2개 조직으로 분리하고 독립된 조직으로 승격시켰다.
장관급 통합형 국가인 독일은 중소기업 업무를 경제 관련 조직 내에서 담당한다. 독일은 주정부가 중소기업 정책을 시행하고 연방 정부가 금융 지원 등 포괄적인 정책을 담당하는 형태다.
일본은 중소기업청을 차관급으로 독립해 운영 중이다. 일본의 중기청은 정책 기획 및 감독 업무를 독립적으로 도맡아 한다.
박주영 교수는 “중소기업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지원 정책에 적극적인 해외 여러 나라의 사례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바꾸고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미국 또는 프랑스처럼 독립된 형태의 막강한 조직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한승엽 경영컨설턴트 겸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신소재공학과)
“현실적인 정책, 선순환 위해 지속적인 보완·수정 필요해”
“중소기업은 인력 문제가 심각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업을 이끌 후계자가 없어 폐업하는 기업도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사업주에게 필요한 지원 정책이 아니라 취업자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청년들이 왜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지 고민할 때입니다.”
한승엽 컨설턴트(서울과학기술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겸 교수는 중소기업의 인력난에 대해 지적하며 청년들이 단순히 낮은 임금 때문에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연구·개발(R&D) 지원 체계에 대해서도 짚었다.
그는 “정부가 R&D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대학을 졸업했는지 여부를 묻는 등 학력 위주의 사회적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며 “지원책을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중소기업의 대출이 잘 안 되는 이유에 대해 금융회사에 기술과 사업 내용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현실 감각이 있으면서 사업 경험이 많은 기술 인력을 활용해 기업 진단 및 심사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한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중소기업 관련 정책을 환영하지만 단순한 자금 지원이나 일방적인 지원은 오히려 독약이 될 수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예를 들어 컨설팅 사업은 정부 지원 컨설팅 사업을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 무료 진단, 무료 컨설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면 ‘컨설팅은 무료’라는 인식이 기업 간에 확산돼 컨설팅 산업이 무너지고 컨설팅의 수준도 낮아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한 교수는 “좋은 취지의 제도를 선순환 구조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를 운영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보완하고 수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중소기업 육성이 잘되고 있는 모범 국가의 사례를 연구해 성공 요인을 분석하되 단편적인 분석을 지양하고 사회 분위기, 국민의 의식 수준, 제도적인 뒷받침 등 선순환 요인을 찾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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