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구성원의 명확한 합의·오해 없는 해석을 담은 명확한 업무 지침 필요
잡스가 ‘리더십’보다 우선했던 ‘핵심 가치’
(사진)=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독단적 리더십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직을 장악했지만 핵심 가치에 따라 일관된 의사결정을 내렸다.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 칼럼=김미진 휴먼솔루션그룹 연구원] 부부의 이혼 사유로, 흔히 ‘성격 차이’를 말한다. 그런데 ‘저 사람이 너무 소극적이어서’ 혹은 ‘저 사람이 너무 느긋해서’ 이혼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성격 차이는 구구절절 사연을 말하기가 번거로울 때 쓰는 웅변술(레토릭)일 수 있다. 그러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생각, 시댁이나 처가에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 자녀 교육에 대한 생각 등이 달라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더 이상 동반자가 될 수 없다는 부부를 흔히 본다.

그렇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데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부분은 바로 ‘가치관’이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생각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이들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 이른바 ‘핵심 가치’다.

어느 화학 회사의 핵심 가치가 안전이라고 하자. 핵심 가치는 모든 업무에서 우선순위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 회사는 노동환경부터 안전을 챙긴다.

직원들이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회사 모든 곳에 문턱을 없애고 복도 모퉁이에 서로 충돌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볼록 거울을 설치했다. 회의가 열리면 제일 처음 확인하는 것이 비상시 탈출구 위치일 정도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자.

직원 두 명이 해외 출장 중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회사의 핵심 가치인 안전에 따르면 업무 중 차량으로 이동할 때 안전벨트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됐다.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시간이 빠듯한데 어렵사리 잡은 택시의 안전벨트가 앞자리 조수석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 직원들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잠깐 생각해 보자.

클라이언트를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 그냥 같이 타고 가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면 여러분은 더 이상 이 회사의 직원이 될 수 없다. 핵심 가치인 안전에 위배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핵심 가치도 따르고 클라이언트 미팅도 망치지 않기 위한 현명한 판단은 이래야 한다. 한 사람이 먼저 타고 가서 미팅 시간을 지키고 나머지 한 사람은 다음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다.

가상의 사례처럼 들렸겠지만 이는 실제 사례다. 바로 미국의 듀폰이다. 듀폰은 설립 당시 큰 폭발 사고를 경험한 뒤 안전을 실적보다 우선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듀폰의 핵심 가치는 안전이다. 이에 따라 듀폰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일터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이처럼 조직의 핵심 가치는 구성원 누구라도 일관된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는 원칙과 기준이 된다.

◆ 핵심 가치의 의미를 명확히 짚어줘야

그렇다면 이쯤에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회사도 핵심 가치가 있고 이를 실천하도록 하는 장치들, 이를테면 신입 사원 교육에서 핵심 가치를 다루고 회사 곳곳에 핵심 가치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왜 여전히 우리의 의사결정은 중구난방일까.

만약 구성원들 사이에서 ‘핵심 가치를 어떻게 실천해야 될지 모르겠다’, ‘핵심 가치가 내 일과 맞지 않는다’ 등과 같은 반응이 나온다면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핵심 가치의 의미가 정확히 인식되고 있느냐다.

가치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의미에 대해 명확한 합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많은 기업들이 내세우고 있는 ‘도전’이라는 핵심 가치를 보자. 대부분은 그 의미가 사전적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려운 일에 두려움 없이 정면으로 맞선다는 의미 속에서 조금씩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정보기술(IT)업에서 도전이라고 하는 것과 기간산업에서 도전이라고 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업의 사이클이 스피디한 IT업에서는 빠른 아이디어 실행이 중요한 만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어떤 아이디어라도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을 원칙으로 삼을 것이다.

반면 다른 사업에 대한 영향력이 지대하고 큰 투자가 이뤄지는 기간산업에서는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체계적인 준비한 뒤 책임 있는 시도를 하는 것’이 원칙이 될 것이다.

이처럼 핵심 가치는 업과 직무의 특성을 반영한 ‘우리만의 의미’를 명확히 해야만 구성원들 간에 오해가 없고 비로소 업무의 원칙으로 실제 작동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핵심 가치에 대한 ‘우리만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인식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구성원들이 빠질 수 있는 오해의 함정을 찾아내 정확히 짚어주는 것이다.

가령 한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창의라는 핵심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구성원들 사이에서 업무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하자. 언뜻 보기에는 구성원들의 얘기가 맞는 것 같다.

자동차 완제품을 만드는 업체에서 요구한 스펙이 있을 테고 부품 업체는 그 스펙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납품해야 하는데 창의가 어떻게 말이 되느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흔히 저지르는 오해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창의라고 하면 천재나 괴짜들의 영역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식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업은 정해진 스펙에 제한을 받지만 그 제한된 조건에서 최대 효율을 달성하는 방법을 꾸준히 찾아나가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창의가 요구되는 것이 맞고 다만 그 의미에서 오해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즉, ‘우리의 창의는 괴짜다움이 아니라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업무의 효율을 최대로 높이는 것’이라고 짚어야 한다.
잡스가 ‘리더십’보다 우선했던 ‘핵심 가치’
◆ 내부 상황에 따라 해석을 달리해야

또 다른 예가 있다. 정수기와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한 소형 가전 업체에서는 자유라는 핵심 가치를 가지고 있다. 과포화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제품 개발과 판매 아이디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도록 하는 자유를 강조해 왔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조금만 새롭다 싶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일단 시장에 내놓고 보자는 식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디자인이 멋지고 기능도 좋다면 출시를 서둘렀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안전 문제를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이에 따라 회사는 자유라는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업의 특성을 다시 들여다봤다. 그리고 정수기와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일은 고객의 건강, 생명과 직결되는 일로서 무거운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따라서 자유라는 핵심 가치를 ‘캐주얼하게 생각, 행동하는 가벼움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 실행하되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오해의 여지를 말끔히 없앴다.

앞선 두 사례와 달리 조직이 처한 상황에 따라 ‘우리만의 의미’가 필요할 때도 있다. 신사업을 추진하는 본부를 떠올려 보자. 회사에는 신뢰라는 핵심 가치가 있고 이를 고객 관점으로 해석한다. 즉,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 모든 업무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신사업본부에서는 아직 고객도, 업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면 신뢰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때는 현재 본부의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신사업이란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데 반해 당장의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른 구성원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힘들게 벌어놓은 돈을 한쪽에서 확실하지도 않은 가능성에 기대 쓰고 있다면 어떨까. 진짜 성공적 결과를 보여줄 것인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사업본부에서의 신뢰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믿음을 다른 구성원들이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가 그 의미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른다면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선행조건들을 충실히 다져 나가야 할 것이다.

성과를 내기 위한 역량을 지식·기술·태도 측면에서 분석하고 이를 향상시키기 위해 다각도로 학습하는 동시에 업무 프로세스도 챙겨 나가야 한다.

◆ 일하는 방식 합의해 만들어 놓아야

이처럼 핵심 가치에 대한 오해의 함정을 없애고 그 의미를 명확히 했다면 구성원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다. 생각을 모았다면 그에 따른 행동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뤄야 한다.

가령 남녀 사이에 서로 배려하라고 하고 배려의 의미를 짝처럼 마음을 쓰는 것이라고 얘기를 나눴다고 하자.

그런데 실제 상황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배려하는 행동이 달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자는 맞장구를 치고 공감해 주는 행동을 원하고 남자는 공감보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원하기 때문이다.

조직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협업을 떠올려 보자. 한쪽에서는 완벽하게 서류를 작성해 넘겨주려고 하는 반면 받는 쪽에서는 다소 미흡하더라도, 그래서 본인이 수정 작업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넘겨받기를 원할 수 있다.

이때 서류를 주는 쪽은 배려하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받는 쪽은 배려가 없는 행동이라고 상대를 비난할 수 있다. 주요 업무 상황에서 핵심 가치에 따른 행동이 무엇인지, 소위 업무 지침이 필요한 이유다.

누가 맞느냐 틀리느냐 논쟁하지 않도록 어떤 행동이 우리 조직에서 올바른지 사전에 ‘일하는 방식’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구글의 ‘10가지 일하는 방법’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의사결정은 정량적 통계에 기반 해 한다’와 같은 항목은 의사결정을 내릴 때 논란과 갈등을 잠재우고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항목은 채용할 때 혹은 팀을 꾸릴 때 불필요한 논쟁이 없도록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카리스마 리더십 하면 떠오르는 사람, 스티브 잡스는 독단적 리더십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직을 장악했지만 핵심 가치에 따라 일관된 의사결정을 내렸다.

아이폰4 출시 때의 일이다.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이 있었던 잡스는 아이폰4 모델에 태양광을 활용한 무선 충전 기술을 탑재하자고 제안했다.

천하의 잡스가 제안한 아이디어니 구성원들은 무조건 따랐을까. 아니다. 당시 기술로 무선 충전 기능을 탑재한다면 아이폰의 두께가 두꺼워지며 무게도 늘어나 애플의 핵심 가치인 단순성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잡스는 본인의 제안을 포기했다.

조직은 목소리 큰 누군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공통으로 합의된 핵심 가치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일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