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부터 컨테이너까지…글로벌 조선·해운, ‘친환경’에 미래 걸다 (사진)부산항 감만부두에서 수출 화물이 컨테이너선에 선적되고 있다.(/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세계 각국이 협약을 통해 환경보호에 나서고 있다. 해운업계의 눈앞에도 친환경 화두가 던져졌다. 바다에 사는 생물들은 물론 후손들에게도 깨끗한 바다를 물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 항만도시 ‘뿌연 하늘’의 원인은
국제해사기구(IMO)는 전 세계 해양 환경을 지키기 위한 각종 규제를 지휘하고 있다. 먼저 IMO는 2020년부터 세계 각국을 오가는 외항선의 황 함유랑을 기존 3.5% 이하에서 0.5% 이하로 제한한다. 이 규제에 따라 선사들은 저유황 연료유를 사용하거나 배기가스 세정 장치를 선박에 설치해야만 한다.
선박평형수 관련 협약은 이보다 더 이른 2017년 9월부터 시행된다. 국제선박평형수관리협약은 선박의 균형과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싣는 평형수(ballast water)가 국가 간 해역을 넘나들 때 생기는 해양 생태계의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채택됐다.
이 협약에 따라 국제 해역을 오가는 선박들은 선박평형수 처리 설비 장치를 설치해야 하며 이 장치를 통해 평형수 내 모든 생물을 제거해야만 외국 항만 입항이 가능해진다.
사실 친환경은 해운에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다. 단순히 바닷속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선박이 뿜는 연료가 미치는 영향도 어마어마하다. 실제로 선박들이 많이 입항하는 항만 주변에는 환경오염으로 지역사회와 갈등이 생기고 있다.
올해 4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시 주민들은 오클랜드항만 당국이 대기오염 물질 배출 감축을 위한 정책 시행에 소홀했다며 반발에 나섰다. 중국 톈진항 또한 북부 지역 대기오염으로 건화물 하역 작업이 잠시 중단됐고 물류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해외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난해 부산항은 네이처지가 선정한 ‘10대 초미세먼지 오염 항만’으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부산시·부산항만공사·부산해양수산청·한국전력공사 등은 부산항의 초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6월 14일 업무 협약을 맺기도 했다.
선사들 또한 바다의 환경을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도입하고 있다.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은 냉장 화물 운송에 친환경 컨테이너를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올해 3월 해운 전문
외신에 따르면 머스크는 천연 냉매를 장착한 시스템을 냉장 컨테이너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 시스템은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이산화탄소 냉매가 장착된 것으로, 오존층에 안전한 성분으로 변환된 가스를 공기 중에 배출한다. 이와 같은 원리를 냉장 컨테이너에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월부터 미주 노선에 취항하며 외항 선사로 올라선 SM상선은 국내 선사 중에서는 최초로 친환경 소재 컨테이너를 도입했다. SM상선은 중국 상하이 CIMC에 신조 컨테이너 장비 약 2만TEU(1만430박스)를 발주한 후 4월 22일 출고했다.
새로 제작된 컨테이너는 친환경 소재로 내·외관을 수성 페인트 도료로 칠해 기존 유성 페인트 용제인 시너에서 배출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을 줄였다. 수성 페인트 도료는 대기오염 물질 배출과 해양 오염 등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 해운사, 친환경의 가장 큰 장애물 ‘비용’
선사들도 바다 환경 지키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처리 설비 장치를 설치하려면 고가의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저유황 연료를 사용하면 기존 연료 값보다 약 30~60% 추가 비용이 늘어난다.
또 연료에서 유황을 없애주는 ‘탈황 장치’를 선박에 설치하려면 약 500만 달러에서 700만 달러의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평형수 처리 장치 역시 선박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척당 3억~50억원이 든다.
한국선주협회는 선사들의 이 같은 고민을 덜어 주기 위해 여러 방안을 준비 중이다. 협회에 따르면 한국 선박들 중 처리 장치를 달아야 하는 선박은 국제 항해에 종사하는 연안 화물선을 포함해 약 1500척에 달한다.
그 첫째 방안으로 한국선주협회는 한국선박평형수협회와의 협약(MOU)을 통해 선사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지난 4월 양 협회는 국내 선사들이 국내 선박평형수 처리 설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독려함과 동시에 해운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선박평형수 처리 설비 설치 비용의 장기 분할 상환, 공동 구매, 친환경 설비에 대한 정부 지원을 이끌어 내는 것에 협력하기로 했다.
한편 새 정부는 해운 산업을 살릴 수 있는 근간으로 ‘친환경’을 주목하고 있다. 5월 31일 바다의 날 기념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해운·조선 산업을 살리기 위해 ‘친환경’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며 “친환경 선박을 포함한 한국 선사의 선박 발주를 돕고 과거처럼 글로벌 대형 선사와 당당히 경쟁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친환경 고효율 선박 확보를 통해 조선·해운의 상생 협력을 꾀한다는 밑그림이다.
하지만 해운업계는 친환경을 통한 산업군 부활에는 의구심을 표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선박 발주는 사실상 해운보다 조선업에 더 효과적인 지원책이다. 선사는 기존의 선대를 사용하는 게 비용 부담이 없다”고 설명했다.
[돋보기]
선사 지원 통해 조선·해운 동시에 살려야
전 세계의 선박 트렌드가 ‘친환경’으로 바뀌며 국내 조선사와 해운사 간 협력을 도모해 해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분석에 따르면 포스트파나막스급(1만5000TEU급 이상) 선박 중 한국 선사가 운항 중인 컨테이너선은 단 1척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4월 말 기준 준공된 포스트파나막스급 컨테이너선은 76척(138만TEU)이다. 이 중 덴마크 조선소가 6척, 중국 조선소가 3척, 한국 조선소가 무려 65척을 준공했다. 덴마크 조선소의 6척은 덴마크 선사인 머스크라인이 운항 중이다. 중국 선사들 또한 중국조선소가 준공한 선박들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선박이 건조한 65척의 선박 중 한국 선사가 운항 중인 포스트파나막스급 컨테이너선은 단 1척도 없다. 이는 다른 크기의 선박도 마찬가지다. 네오파나막스급(1만2000~1만4999TEU급) 컨테이너선 203척 중 180척이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됐지만 한국 선사가 보유한 선박은 현대상선의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 5척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일본 선사 MOL이 2015년 삼성중공업에 발주한 컨테이너선 ‘MOL 트라이엄프(2만150TEU급)’는 첨단 에너지 절감 기술이 장착됐다. 이 선박은 1만4000TEU급 선박과 비교할 때 연료 소비 및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약 25~30% 절감할 수 있다.
또 2020년부터 발효 예정인 황 배출을 제한하는 IMO의 규정 이행을 고려해 주요 엔진을 액화천연가스(LNG) 연료로 변경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과정에서 한국 선사들이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국내 조선소의 선박 수주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한국 조선 산업의 선박 건조 기술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해운과 조선을 연계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양 산업을 동시에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선박 은행인 한국선박해양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활용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만약 해운 선사에 대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선사들이 자금을 통해 신규 선박을 국내 조선소에 발주해 해운과 조선을 살리는 ‘윈-윈 효과’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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