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상황에서도 잘 나가는 기업의 CEO...장세욱, 김남구, 박동문, 장병우
공통점은 '과감한 구조조정, 수익 다각화' 성공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사람이든 기업이든 ‘진짜 실력’은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법이다. 한경비즈니스와 NICE평가정보는 2001년부터 매년 공동으로 ‘대한민국 100대 기업·CEO’를 선정해 왔다. 해마다 수많은 기업의 이름이 새롭게 오르내리지만 올해는 유독 순위 변동이 큰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100위권 내에 진입한 기업들 중에서도 순위가 큰 폭으로 상승한 곳들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몇 년간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를 극복하고 더 깊고 탄탄한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한 기업들이다. 2017년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끌어 낸 이들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경영 스타일을 집중 분석했다.
◆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과감한 체질 개선…‘효자 사업’ 정리, 고부가 제품 중심 포트폴리오 다각화”
동국제강은 2014년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당시 철강업계는 글로벌 철강 시장이 장기적인 침체에 빠져들며 수익성이 악화되는 등 심각한 몸살을 겪었다. 매출은 곤두박질쳤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악재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다음해인 2015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너 리스크’까지 불거졌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이 횡령·배임·도박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으며 ‘경영 공백’ 우려가 제기됐다. (사진)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이 위기의 순간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이가 장세욱 부회장이다. 장 부회장은 재계에서는 드물게 ‘육사 출신’이다. 고 장상태 전 회장의 2남 3녀 중 막내다. 23년간 경영 수업을 받은 맏형 장 회장과 달리 장 부회장은 졸업 후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다가 1996년 동국제강 기획조정실 경영관리팀 과장으로 입사하며 경영에 첫발을 들였다. 1년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지사로 옮겨 근무하며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2004년까지 포항제강소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현장 경험을 쌓고 2010년 동국제강의 주력 계열사였던 유니온스틸의 사장으로 승진했다. 2015년 유니온스틸과 동국제강의 합병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 회장이 개인 비리로 대표이사를 사임하며 동국제강은 장 부회장 ‘1인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점을 맞게 됐다.
‘장세욱 부회장 체제’ 아래 동국제강은 환골탈태에 성공했다. 가장 먼저 역점을 둔 것은 무엇보다 사업 부문의 공격적인 구조조정이었다. 당시만 해도 동국제강의 사업 비율은 후판(선박과 플랜트 건조에 사용되는 두께 6mm 이상 판재) 부문이 전체의 40%를 차지할 만큼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조선업이 흔들리면서 후판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당진 공장을 제외하고 후판 공장을 모두 정리한 것이다. 현재 동국제강의 후판 사업 비율은 13%까지 줄었다.
그 대신 건설 경기에 따라 수요가 달라지는 봉형강(철근·형강)과 냉연도금, 건축 내외장재 및 가전 컬러강판 등의 냉연 사업 위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유니온스틸의 주력 제품인 컬러 강판 공장을 증설하는 등 고부가 가치 제품 중심의 사업을 크게 확대했다.
이와 함께 동국제강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신사옥 페럼타워도 눈물을 머금고 매각했다. 이를 통해 약 4200억원을 마련한 데 이어 포스코강판·포스코 등 국내외 상장 주식도 대부분 처분해 현금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동국제강은 부채를 낮추고 이익을 높이는 등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 그 결과 동국제강은 2016년 이후 재무구조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2016년 연결 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2.5% 감소한 5조66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256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7%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707억원으로 5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2015년 2분기 이후 올해 1분기까지 8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이재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포스코·현대제철 등과 비교해도 동국제강은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조선 산업의 불황 등에 따른 타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 있었다”며 “특히 2016년은 건설 경기의 호조 등으로 봉형강 등 각 사업 분야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 부회장은 군인 출신 경영인답게 자기 관리가 철저하기로도 유명하다. 출근 시간보다 1시간 30분 먼저 출근해 어학 공부를 하는 등 자기 계발에 힘쓰는 노력파다. 자기 자신에게는 이렇듯 엄격하지만 직원들과는 편안하고 소탈하게 소통에 적극적인 모습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큰 동요 없이 직원들이 잘 따를 수 있었던 데는 장 부회장의 이와 같은 ‘소통 리더십’이 큰 힘이 됐다. 장 부회장은 1주일에 한 번씩 직원들과 ‘점심 번개’를 하고 최근에는 본사 5층에 ‘다트룸’을 설치해 직원들이 짬짬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지난해 6월부터는 지난 10년간 동국제강의 숙원 사업이었던 브라질 일관 제철소인 CSP(Companhia Siderurgica do Pecem)가 본격 가동을 시작하며 그룹의 신성장 동력 확보에도 성공했다. (사진) 브라질 CSP 제철소
이에 따라 동국제강은 공급 전량을 외부에 의존했던 슬래브(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바닥)를 설립 이후 63년 만에 자체 조달하게 된 것이다. 브라질 제철소는 장세주 회장이 옥중에서도 추진 현황을 수시로 보고받을 정도로 그의 숙원 사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장 부회장은 1년에 100여 차례 정도 장 회장을 면회하며 회사의 경영 문제를 논의하는 등 ‘형제 경영 체제’를 이어 나가고 있다.
◆ 박동문 코오롱인더스트리 사장
“듀퐁 소송 악재 딛고 본격 성장 가도…CPI 필름 신성장 동력 확보”
2009년 이후 무려 6년.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글로벌 화학 기업 듀퐁과의 1조원대 소송으로 발목이 잡힌 채 길고긴 경영 침체를 겪어야 했다. 듀퐁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자사의 첨단 섬유 소재 아라미드의 영업 비밀을 빼갔다며 영업 비밀 침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미국 법원은 1심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에 1조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박동문 사장은 한창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수장을 맡았다.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떠안는 비용 부담도 컸지만 무엇보다 소송으로 인해 회사의 역량이 성장에 집중되지 못해 ‘성장 정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던 때였다. (사진) 박동문 코오롱인더스트리 사장
박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여러 부담에도 불구하고 듀퐁과의 끈질긴 싸움을 이어 나갔다. 그 결과 2015년, 코오롱인더스트리가 듀퐁에 민사 합의금 2954억원을 주고 형사 벌금 913억원을 납부하기로 합의에 성공하며 오랫동안 골칫거리였던 악재를 털어냈다.
박 사장은 먼저 장기간 소송으로 지쳐 있던 회사와 직원들을 일으켜 세우는 데 주력했다. 듀퐁과의 소송으로 정체돼 있던 아라미드의 미국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고 아라미드·석유수지·에어백 등 핵심 제품 투자를 서서히 확대해 나갔다.
이를 통해 2016년 기준 에어백과 석유수지 품목의 국내시장점유율은 70~80%로 높아졌고 타이어코드 세계시장 점유율도 15%로 높아졌다. 이동욱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화학·필름·패션 등 전 분야에서 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특히 타이어코드·에어백·아라미드 등 산업 자재 부문의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16년 연결 기준 매출액 4조5622억원, 영업이익 2767억원을 달성했다. 당기순이익은 1760억원이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듀퐁과의 소송이 마무리된 2015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당기순이익이 눈에 띄게 늘었다. 소송 합의금 전액이 2015년 회계에 반영된 결과다.
박 사장은 코오롱그룹 내 전 계열사 중 가장 젊은 대표다. 그만큼 젊은 감각을 뽐내는 CEO다. 1983년 코오롱상사에 입사한 지 30년 만에 코오롱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사장 자리에까지 오른 ‘샐러리맨의 신화’다. 코오롱 기획담당 임원, 인도네시아법인 최고재무책임자 등을 거쳤고 1999년 41세에 코오롱글로텍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며 코오롱그룹 ‘최연소 대표’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박 사장은 취임 초부터 꾸준히 ‘품질 경영’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에는 임직원에게 ‘CEO 레터’를 통해 “품질은 기업 경쟁력의 시작이자 끝”이라며 “품질 경영이 최우선돼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그의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현재 ‘목표 지향적 혁신(GDI)’을 전사적으로 추진 중이다. GDI는 2013년 도입한 코오롱인더스트리의 독자적인 품질 혁신 프로그램이다.
연구·개발(R&D) 분야에도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코오롱인더스트리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투명 폴리이미드(CPI) 필름이다. R&D만 10년이 넘게 진행한 끝에 개발에 성공한 CPI 필름은 투명하고 강도가 세면서도 부드럽게 휘어진다. (사진) 내년 초 본격 양산에 들어가는 CPI 필름.
CPI 필름은 최근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준비하고 있는 폴더블(접히는) 형태의 스마트폰에 반드시 필요한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내년 초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갈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CPI 필름이 본격적으로 양산되면 2000억원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 들어 원료가 상승으로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실적이 지난해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CPI 필름이라는 확실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한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향후 성장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높다.
◆ 장병우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현대상선 리스크’ 털어내니 실적 고공 행진… ‘우물 안 1등’ 말고 세계시장 개척”
현대엘리베이터는 2012년 이후 줄곧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미래 가치를 반영하는 주가는 지난해까지 박스권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이른바 ‘현대상선 리스크’ 때문이었다.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였던 현대상선은 최근 역대 최악의 조선업 불황에 시달리며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이로 인해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까지 현대상선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왔다. 지난해에만 두 차례에 걸쳐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아산 지분 약 374억원과 현대엘앤알 지분 약 254억원을 인수했고 1500억원이 넘는 현금을 대여해 줬다. 그러니 아무리 영업이익과 매출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현대상선의 손실은 현대엘리베이터의 당기순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6월 현대엘리베이터의 발목을 붙잡았던 현대상선 리스크가 사라졌다. 현대상선이 KDB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되며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것이다. 덕분에 한결 가벼워진 현대엘리베이터는 본격적인 실적 고공 행진을 이어 가는 중이다.
2016년 현대엘리베이터의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7589억원, 1815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21.4%, 16.4%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1169억원으로 흑자 전환됐다. 조철희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지난해 4분기에 현대상선 관련 비용을 털어낸 뒤 첫 실적을 냈다”며 “현대상선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엘앤알·현대아산·현대종합연수원이 연결 자회사로 편입된 것도 4분기 실적이 늘어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사진) 세계 최초 LED 글라스가 적용된 현대엘리베이터.
기본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의 높은 실적은 탄탄한 국내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말 기준 41.3%를 기록했는데 올해 1분기 44.1%까지 늘어났다. 10년째 국내 시장점유율 1위다. 최첨단 승강기와 안전 기술로 국내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굳힌 현대엘리베이터는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포부다.
그 선봉장을 맡고 있는 이가 장병우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이다. 2016년 4월 취임 직후 ‘2030년 글로벌 톱7 진입’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적극적인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는 중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재 글로벌 시장점유율 기준 9위 수준이다. (사진) 장병우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재미있는 것은 2011년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측의 ‘끈질긴 구애’ 끝에 장 사장과의 인연이 닿았다는 점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이토록 장 사장을 원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장 사장은 1973년 럭키(현 LG화학) 수출부 사원으로 입사한 뒤 LG상사·LG산전(현 LS산전)·LG오티스엘리베이터(현 오티스엘리베이터)의 대표 등을 역임했다. 장 사장은 세계 1위 엘리베이터업체인 오티스엘리베이터 내에서도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을 만큼 엘리베이터업계에 능통한 인물이다.
그의 ‘해외 영업 능력’도 탐낼만 했다. 장 사장은 회사 생활 41년 가운데 39년을 해외 영업과 관련한 분야에서 일했을 만큼 ‘해외 영업통’이다. 평소에도 ‘밥 장’이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1981년 금성사(현 LG전자) 수출1과장 시절 미국의 대형 소매점인 JC페니 임원이 묵던 호텔 옆방을 잡고 10장짜리 편지를 보낸 끝에 컬러TV 5만 대를 판매한 일화는 지금도 입에 오르내린다.
장 사장은 현재 중국·인도·터키를 ‘제2의 내수 시장’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터키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터키 쿠데타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날아갔을 정도다. 올해는 인도 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등 해외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위기에도 ‘끝없는 혁신’ 강조…IB 강화, 은행업 진출 등 수익 구조 다변화 성공”
2016년에는 국내 주식시장의 호황으로 금융그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그중에서도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실적 증가 폭이 두드러진다. 주력 계열사인 한국투자증권·한국투자저축은행·한국투자신탁운용·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등이 두루두루 좋은 성적을 거두며 ‘다시 찾아온 증권업 전성시대’의 선두 주자로 눈도장을 찍었다.
국내 증권업계는 2011년 이후 ‘위기’라는 단어를 달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6년간 박스피(박스권에 갇힌 코스피)가 지속되며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 가는 데다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기술(IT)의 발달로 투자 문화 변화 또한 증권업계에는 또 다른 도전으로 다가왔다.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과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 등이 빠르게 대중화되며 리테일 부문의 수익 악화가 심화되며 국내 금융 투자업계 전반에 위기의식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국내 유일의 ‘금융 투자’ 중심 지주회사다. 김남구 부회장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2003년 동원금융지주 사장에 취임한 이후 국내 대표적인 ‘투자’ 금융그룹을 키워 낸 주역이다. 2005년 한국투자증권을 인수, 이후 회사명을 한국투자금융지주로 바꿔 6년간 사장을 지내다 2011년 2월 부회장에 올랐다. (사진)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자식 교육에 엄격하기로 유명한 아버지 김 회장의 뜻에 따라 김 부회장은 대학 졸업 후 러시아 베링해에서 조업하는 명태잡이 원양어선에서 6개월 선원으로 일하며 하루 16시간 동안 중노동했다. 그만큼 ‘밑바닥에서’부터 경영 수업을 받았다. 그 덕분에 김 부회장은 원양어선 선장처럼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평가다. 위기에도 끝없이 ‘도전’을 멈추지 않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승부사 기질이 강하다.
김지영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위기에 몸을 사리기보다 오히려 혁신을 강조하며 성공적인 수익 구조 다변화를 이끌어 냈다”며 “기존 위탁 수수료 수익에 의존해 오던 증권회사의 수익 구조를 투자은행(IB)과 자산 관리 모델로 바꿔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구축한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IB 부문에서의 강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최근 증권업계의 호황 속에서도 ‘수익성’과 ‘안정성’이 가장 높은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한국투자금융지주는 2011년 이후 6년째 업계 최고 실적을 이끌어 내고 있다. 2016년 연결 기준 361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데 이어 2017년에도 업계 1위 수준의 ‘깜짝 실적’을 이어 가고 있다. 올 1분기 영업이익이 196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9.06% 늘었고 매출은 같은 기간 2조93억원으로 4%, 당기순이익은 1442억원으로 80% 뛰었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밝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은 자기자본금 4조원이 넘는 초대형 투자은행으로 변모했고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인터넷 전문은행 한국카카오뱅크의 대주주가 되면서 동시에 우리은행 지분도 4%나 인수했다.
특히 이달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는 국내 제2호 인터넷 은행 카카오뱅크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지난 4월부터 영업을 시작한 ‘케이뱅크’가 출범과 동시에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카카오뱅크 역시 금융업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일으킬지 관심이 모아지고 이다. 무엇보다 금융과 디지털 IT의 결합을 통해 향후 ‘핀테크’를 통한 금융 혁신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도 기대를 모으는 요인이다. (사진) 카카오뱅크의 예비인가 신청서 제출.
한국투자증권은 카카오뱅크의 지분 5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카카오뱅크의 대주주로 참여하며 은행업 진출에 대한 오랜 숙원을 이룬 셈이다. 한국투자금융지주로서는 이를 통해 투자금융지주에서 은행계 지주사로 전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이다.
vivajh@hankyung.com I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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