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인사이드]
스튜어드십 도입으로 각광받는 ESG 평가…
‘착한 경영’ 기업이 투자수익률 높아
SRI펀드, '착한 기업'에 투자하면 돈 된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기자] 운용 자산 규모만 9100억 달러(약 1030조원)에 이르는 국부 펀드인 노르웨이 정부연기금(GPF)은 3월 한국전력공사에 대한 투자 철회를 선언했다. 한전의 매출 중 석탄발전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30%가 넘어선다는 것이 그 이유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연기금(캘퍼스, CalPERS)도 석탄 화력 발전 회사에 대한 신규 투자나 연장을 내규로 금지하고 있으며, 캐나다와 스웨덴도 자국법을 통해 석탄 관련 회사에 공공자금을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단순히 많은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아니라 ‘환경적인 측면을 따져본 뒤’에 투자 대상을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책임(Social Responsible Investment) 투자’다.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사회책임투자(SRI) 펀드가 주목받고 있다.특히 새 정부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경영’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으면서, 올해를 기점으로 SRI펀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스튜어드십 활성화 ‘ESG’ 뜬다

‘돈 잘 버는 착한 기업에 중·장기적으로 투자하면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다.’

SRI 펀드를 요약하자면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투자의 기본 원칙은 ‘높은 수익률’이다. 그런데 아무리 수익을 많이 창출하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숨어있는 위험요소’가 불거질 수 있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책임 경영이 잘 이루어지는 기업이 장기적으로도 수익률이 높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최근 갑질 논란에 휩싸인 미스터피자의 운영사인 MP그룹의 주가는 논란이 불거지기 전인 6월 19일 종가 기준 1700원에서 7월 19일 종가 기준 1305원으로 한 달 새 23% 하락했다. 반면 올해 초부터 착한 기업의 미담이 알려지며 ‘갓뚜기’ 칭호를 얻은 오뚜기의 주가는 1월 65만3000원대에서 7월 현재 74만7000원대까지 올랐다.

그렇다면 포인트는 이와 같은 ‘착한 기업’을 선별하기 위한 기준이다. 이를 위해 등장한 것이 ‘ESG 평가’다.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와 같은 비재무적인 요소를 평가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사회책임투자전문가그룹인 서스틴베스트에서 한국 기업들의 ESG 평가를 발표하고 있다.

특히 SRI 투자에 대한 관심은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부쩍 늘어나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경영’의 중요성을 줄곧 강조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문 대통령이 경제공약으로 내걸었던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경영 활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사결정 행사 지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GPF, 캘퍼스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연기금과 뱅가드, 블랙록 등 자산운용사들이 투자 대상을 선별하는 데 ESG 평가를 도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기업들이 이와 같은 요소들을 경영활동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목소리를 높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 때문에 영국 등 다른 나라들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이후 ESG 지수가 상대적으로 각광을 받은 바 있다.

박종한 서스틴베스트 팀장은 “신정부 들어 국내 자산운용사나 투자 기관들 역시 ESG 평가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ESG 평가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일반 소비자나 투자자들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에 대한 민감도가 더욱 높아지는 분위기다. 펀드평가 전문업체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SRI펀드 중 운용자산 10억원이 넘어서는 11개 펀드(5월 첫 설정된 ‘하이 사회책임 투자 펀드’ 제외)들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17.97%에 달한다. 박 팀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발달에 힘입어 기업의 비재무적인 요소가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력이 예전과 비교해 현저히 높아지고 있다”며 “기업의 수익률과 사회적 책임경영의 상관관계는 향후 더더욱 커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SRI펀드, '착한 기업'에 투자하면 돈 된다.
◆SRI 펀드의 진화 “올해가 원년”

국내에 SRI 펀드가 처음 주목받은 것은 2009년 무렵 부터다. 국민연금이 유엔책임투자원칙(UNPRI)에 가입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SRI 펀드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현재 글로벌 펀드 시장에서 사회책임투자는 약 23조 달러 규모다. 전체 관리 운용 자산 대비 약 26%의 비율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에 비해 국내에 운영되는 SRI 펀드는 15여 개 남짓이다. 설정액 총액도 2000억원이 조금 넘어서는 수준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역시 2016년 말 기준 사회책임투자 운용 자산이 약 6조4000억원으로, 전체 국내 주식 운용 자산(102조원) 대비 6.3% 정도의 비율을 차지한다.

다만 분위기는 매우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첫 스타트를 끊은 곳은 하이자산운용이다. 하이자산운용은 5월 말 SRI 펀드인 ‘하이 사회책임투자 펀드’를 선보였다. 국내에서는 8년 만에 처음으로 등장한 SRI 펀드다. 출시 한 달 만에 65억원 정도의 자금을 그러모았을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삼성자산운용도 8월 중 SRI 펀드 출시를 준비 중이며 이 밖에 다수의 자산 운용사들이 SRI 펀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래에셋자산운용·KB자산운용 등 국내 대형 기관투자가 40여 곳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예정이어서 SRI 펀드를 속속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선호 하이자산운용 책임투자리서치팀장은 “‘착한 투자’라고 하면 재무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투자한다는 오해가 있다”면서 “투자 기업을 선별할 때 재무적인 요소를 따져 수익성이 좋은 기업들을 추려낸 뒤 이들 중에서도 환경·사회·지배구조 같은 비재무적인 요소를 고려해 ‘더 좋은 투자 대상’을 찾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에는 수익성이 좋은 기업들 중에서도 죄악주(전쟁·담배·도박 등)나 ESG 평가에서 최하 등급을 받은 기업들을 배제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ESG 평가 등급이 일정 정도 이상 상승하는 기업’, ‘섹터별 ESG 등급이 우수한 기업’과 같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ESG 평가를 종목 구성에 반영하는 펀드들이 등장하고 있다.

박 팀장은 “일본은 세계 최대 수준의 자금을 운용하는 일본연기금(GPIF)이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이후 SRI 투자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며 “국내에서도 국민연금을 필두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활성화된다면 SRI 투자시장이 크게 성장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