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초불확실성 시대 진입…애플 제쳤지만 ‘승자의 저주’ 우려해야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흔히 요즘을 ‘규범의 혼돈(chaos of norm)’ 시대라고 부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그렇다.

각국의 이기주의와 보호주의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을 목표로 지향해 왔던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GATT·WTO 체제를 주도했던 미국이 이탈한다면 다른 국가가 지키기는 더 어렵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파리기후협약 등이 미국을 배제한 차선책이 논의되고 있지만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제적 실리에 의해 좌우되는 국제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그레샴의 법칙(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일등’에 도취해선 안 돼
달러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심화됨에 따라 일본에 이어 ‘트리핀 딜레마’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던 중국이 미국 국채를 매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리핀 딜레마는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국제 유동성과 달러 신뢰성 간 상충 관계를 말한다.

탈(脫)달러화 조짐도 빨라지고 있다. 세계경제 중심권이 빠르게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 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이 갈수록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큰 변화에 성공해야 기업도 살아남아

국제통화기금(IMF)이 중심이 돼 글로벌 불균형과 환율 전쟁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규범과 체제가 흔들리면 관행과 경륜에 의존해야 혼돈을 바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 ‘아웃사이더 전성시대’다. 세계경제 최고 단위인 주요 20개국(G20) 독일 정상회담만 하더라도 트럼트 미국 대통령,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데뷔 무대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경륜이 높은 최고경영자(CEO)일수록 수난을 겪고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 넬슨 펠츠가 이끄는 트라이언펀드가 주가 정체 등을 이유로 제왕적 CEO의 상징인 제너럴일렉트릭(CE)의 제프리 이멜트를 쫓아냈다. 비슷한 이유로 마리오 롱기 US스틸 CEO, 마크 필즈 포드자동차 CEO도 해임됐다.

규범과 관행에 의존하지 못함에 따라 세계경제는 더 혼돈에 빠지고 있다. 올해로 ‘불확실성 시대(케네스 갤브레이스)’가 나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초불확실성 시대(배리 아이켄그린)’에 접어들었다.

초불확실성 시대가 무서운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큰 변화’가 온다는 점이다. 규범과 관행에 의존하다 보면 과감한 개혁과 혁신을 줄 수 없어 ‘작은 변화’만 생긴다.

하지만 의존하고 참고할 만한 규범과 관행이 없으면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개혁과 혁신을 생존 차원에서 추진할 수밖에 없어 어느 순간에 큰 변화가 닥친다. ‘빅 체인지’, 즉 큰 변화에 성공한다면 그에 따르는 보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세계가 하나’로 시장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세계 10대 부호에 들어가려면 과거에는 최소한 30년이 걸렸지만 현재는 10년 이내도 가능하다. 구글과 페이스북 창업자 등이 대표적인 예다.

각국의 정책도 크게 변하고 있다. 8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위기 극복’과 ‘경기 부양’이라는 미명하에 돈을 무제한으로 풀었고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렸던 ‘중앙은행의 만능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글로벌 자금 흐름도 주목해야

경제정책의 주안점은 ‘큰 정부론’이 국민으로부터 힘을 얻으면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재건’을 위해 도로·철도·항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케인즈 이론이 태동됐던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과 유사해 ‘트럼프-케인즈언 정책’이라고도 부른다. ‘제2의 레이거노믹스’라고 부르는 감세 정책도 병행된다.

유럽도 4월부터 양적 완화 규모를 줄이면서(월 800억 유로→600억 유로) 경기 대책을 재정정책과 분담하고 있다. 일본은 ‘금융 완화(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 주도)’ 중심의 1단계 아베노믹스를 마무리하고 2단계 ‘재정정책(혼다 에쓰로 스위스 대사 주도)’을 올 하반기부터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중국은 올해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지난해 12월 개최)에서 재정정책을 적극 활용해 목표 성장률(6.5~7%)을 달성해 나간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한국도 대내외 통화정책 여건을 감안하면 추가 금리 인하는 어렵다고 보고 여유가 많은 재정정책을 활용해 올해 성장률을 끌어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자금 흐름도 앞으로 더 주목해야 할 변수다. 올해 하반기 들어서자마자 국채 금리가 급등(국채 가격 하락)함에 따라 국채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각국의 주택 담보대출 금리도 일제히 올라가면서 ‘하우소포리아(housophoria=house+ euphoria)’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호황을 구가했던 세계 주택 시장도 주춤하는 분위기다.

국채와 주택 시장에서 이탈된 자금이 이동되는 새로운 투자처는 크게 두 곳이다. 하나는 지금까지 나타난 변화가 ‘추세적인지’ 시간을 갖고 판단하자는 취지에서 나타나는 ‘금융 노마드’ 현상이다.

다른 하나는 위험 선호 자금이 선도하는 증시로의 ‘그레이트 로테이션(대이동)’ 현상이다. 이런 시대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리스크 관리’다. 일등 기업이 됐다고 승리에 도취돼 있으면 곧바로 ‘승자의 저주’에 걸리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보복을 앞두고 면세 사업권을 따내 성공을 자축했던 국내 백화점업계가 지금은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경쟁사 애플을 제치고 세계 일등 기업으로 거듭난 삼성전자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두가 궁금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