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오후, 조신한 처녀 마리아는 정원이 딸린 테라스에 독서대를 내놓았다. 평소처럼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다. 건물 밖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 나무들 뒤로 등대가 보이는 잔잔한 항구가 펼쳐진다. 평화로운 날, 마리아의 정원에도 작은 풀꽃들이 활짝 얼굴을 내밀었다. 야외에서 책을 읽기 참 좋은 날씨다. 마리아가 독서에 몰입한 순간, 어디선가 향긋한 바람이 일며 천사가 날아와 폭신한 잔풀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천사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란 마리아는 읽던 책의 페이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책갈피에 손가락을 끼우고 있다. 천사는 채 날개를 접기도 전에 벌써 손짓으로 마리아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가 다급하게 전한 말은 마리아가 아기를 수태하게 된다는 하느님의 전갈이다. 무척 당황스런 소식이지만 마리아는 의연하게 손을 들어 화답한다. 하느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한다는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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