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 해법을 찾아서 - 태국

보증금·권리금 없는 구조…"장사 안되면 상인 스스로 나갈 수밖에 없죠"

태국의 대표적 여행자거리인 카오산로드./ 연합뉴스
태국의 대표적 여행자거리인 카오산로드./ 연합뉴스
“인근에 임대료가 올라 쫓겨난 상인이 있나요.”

방콕 라따나코신 지역 방람푸·카오산로드·마하랏 선착장 등을 돌며 만나는 수많은 상인들에게 물었다. 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서다.

많은 상인들이 귀찮은 듯 대답을 피했지만, 몇몇 상인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들 말을 종합해 보면 “장사가 안돼 스스로 그만두는 이가 있긴 하지만 건물주가 임대료를 너무 많이 올려 쫓겨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라하기엔 부족해 보이고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기엔 개운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해 보기로 했다. 7월 25~26일 이틀 동안 방콕의 대표 상권 카오산로드의 상인들 생활 속으로 들어가 봤다.

◆ 오르는 임대료에 힘들어진 업무 강도

카오산로드에 점포를 낸 대부분의 상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바쁜 시간을 보낸다. 섭씨 영상 30도가 훌쩍 넘는 뜨거운 낮에도 많은 여행객이 몰려들어 대부분의 음식점이 영업을 이어 갔다. 틈틈이 저녁 장사를 준비하느라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이곳에선 한국과 다른 상가임대차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보증금이나 권리금 제도가 없는 것이다.

신분이 확실하거나 건물주의 가까운 지인이 가게를 얻으면 시설비만 투자해 장사를 하고 한 달 뒤 임차료만 주면 된다. 보증금 형식으로 3개월이나 6개월 치 임차료를 미리 지급하는 상가도 있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이다.

이러니 한국처럼 갑자기 건물주가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면서 발생하는 갈등도, 임차인이 억울하게 쫓겨나는 일도 거의 없다.

여기에 더해 라따나코신 지역은 방콕시 행정부의 강력한 재개발·재건축 규제로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상가도 드물다.

이 때문에 건물주가 재개발이나 리모델링을 이유로 상인을 쫓아내지 않는다. “쫓겨나는 사람보다 장사가 안돼 상인 스스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상인의 말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곳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은 존재했다. 몇 년 새 임차료가 10배 가까이 올라 장사를 그만두는 상인들이 많았고 임차료에 맞추기 위해 영업시간을 늘리는가 하면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이 많아졌다.

한국처럼 건물주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쫓아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일부분이다.

한 펍(pub) 레스토랑에서 40대 후반의 주인을 쫓아다니며 이것저것을 물었다. 66㎡(20평) 남짓한 이 가게에서 10년 넘게 장사하고 있다는 그 역시 많이 오른 임차료를 감당하기 위해 시간과 돈(홍보비·아르바이트 인건비)을 투자해야만 했다고 한다.

건물주와의 오랜 인연으로 그나마 다른 가게에 비해 적게 올랐다고는 하지만 한 달 임차료만 약 6만 바트(약 180만원)에 달했다.

그에게 한국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들려줬다. 그는 “충격적”이라며 “상인이 장사를 잘해야 상권도 살고 상가 주인도 돈을 벌 수 있는데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여기도 임대료가 많이 올랐지만 건물 주인들은 상인들의 매출을 보고 어느 정도 감당할 수준의 금액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카오산로드 상권의 번성은 거리 문화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여행자가 늘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유입됐지만 지금의 상권 형성에 일조한 뮤지션들이 자리 잡을 장소는 사라졌다. 카오산로드마저도 길거리에서 공연하던 음악인들이 노점상에게 자리를 빼앗기며 종적을 감췄다.

태국에 여행을 왔다가 이곳의 문화가 좋아 정착한 유럽인 기타리스트 개리 씨는 현재 라이브 바 몇 곳을 돌면서 공연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카오산로드는 옛 모습을 잃었다고 말했다. 예전의 자유분방함과 흥겨움이 상인들의 장삿속에 자취를 감췄다는 것. 개리 씨는 “이제 점점 카오산로드에 흥미를 잃어 간다”며 “돈을 모으는 대로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날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카오산로드와 방람푸 시장에 펼쳐진 노점상들./ 방콕(태국)=차완용 기자
카오산로드와 방람푸 시장에 펼쳐진 노점상들./ 방콕(태국)=차완용 기자
◆ 불법과 폭력으로 얼룩지는 노점상

거리 문화를 움켜쥔 노점상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우후죽순 노점상들이 생겨나면서 운영비가 치솟았다.

이곳에서 노점상을 하면 자판을 깐 인근 가게 주인과 협의해 별도의 사용료를 낸다. 하지만 노점상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용료가 계속 뛰고 매출은 떨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6년째 과일을 팔고 있는 메이 씨는 “여행객이 많아진 만큼 노점상도 늘었다”며 “몇 년 전부터 불량스러운 사람들이 노점상을 운영하면서 기존에 장사를 하던 노점상과 가게 주인에게 횡포를 부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가 심각해지자 최근에는 방콕시에서 불법 노점상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워낙 많은 신고가 들어오기도 하고 노점상끼리 폭력 사태도 일어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메이 씨는 “사람이 모이면서 카오산로드가 변했다”며 “나도 노점상을 하지만 여행객이나 기존 상인에게 폐를 끼치는 노점상들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콕시에서 카오산로드 일대 노점상을 정비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빨리 조치가 취해져야 카오산로드도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방콕(태국)=한경비즈니스 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