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5달러로 인상 vs 일자리 먼저” 논쟁
독일 ‘실업급여 감소’ 긍정 효과
영국 ‘생활임금’으로 고용 안정성 높아져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쿡 카운티 주의 최저임금 13달러 인상, 시카고 변두리 지역은 ‘노 쌩큐’”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지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도시인 시카고와 시가코가 속해 있는 쿡 카운티는 7월1일부터 8.5달러의 최저임금을 쿡 카운티는 10달러, 시카고는 11달러로 인상했다. 그런데 이와 맞물려 여름시즌 아르바이트를 찾는 젊은 구직자들은 오히려 일자리를 찾기가 더 어려워지게 됐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실험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진행 중이다. 미국은 각 도시와 주마다 독자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안을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생활임금’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독일에는 원래 최저임금제도가 없었으나 2015년 법제화했다.
이처럼 여러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고려하는 이유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을 통해 ‘소득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소득주도 성장’의 모델을 정착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나 유례없는 인상폭으로 인해 이와 같은 정책 방향에 대한 기대감만큼이나 우려감 또한 커져가는 중이다. (사진) 미국 시애틀의 '최저임금 15달러' 시민운동 / 제공=연합뉴스
◆ ‘최저임금 인상 VS 감소’, 뜨거운 갑론을박
현재 미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 임금은 부시 정부 당시(2009년) 결정된 시간당 7.25달러(약 8180원)이다. 강제사항은 아니며 권고사항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를 10.10달러로 올리기 위해 시도했지만,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미국의 시민단체들은 2012년 이후 ‘15달러를 위한 싸움(Fight for $15)’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다’를 앞세우는 이들의 목소리에 맥도날드, 월마트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임금 인상을 약속하는 분위기다.
‘최저임금 15달러’를 요구하는 사회전반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미국의 각 주와 주요 도시들도 독자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안에 가결하는 등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가 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는 안을 가결했으며, 애리조나, 콜로라도, 메인, 워싱턴주도 이와 같은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6월 말을 기준으로 미 연방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7.25달러)보다 많은 최저임금제를 운영하는 주는 50개주 중에서 29개에 달한다. 이 외에 조지아주와 와이오밍 등 2개 주는 최저 임금을 연방 정부보다 오히려 낮은 시간당 5.15달러로 책정하고 있다.
이처럼 최저임금 인상에 동참하는 지자체들이 늘어날수록, 그 결과에 대한 논쟁 또한 뜨겁게 달아오르는 중이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대해 각각의 연구기관마다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은 최저임금을 2015년 9.47달러에서 올해 15달러로 인상하며, 미 지역들 중에서도 처음으로 ‘최저임금 15달러’를 달성한 곳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 연구팀은 최근 시애틀의 외식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를 내놓았다. 최저임금이 10% 오를 때 외식업계 전체 근로자의 임금은 1% 올랐으며, 일자리수가 줄어드는 등의 고용감소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워싱턴주립대 연구팀은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시간당 임금은 3.1% 올랐지만, 전체 근로시간은 9.4% 줄었다. 그 결과 저임금 근로자의 한 달 평균 소득은 1897달러에서 1772달러로 125달러 감소했다는 결과다. 일자리수도 9만3382개에서 8만6842개로 7% 줄었다.
때문에 최근 미국에서는 ‘최저임금 감소’ 쪽으로 방향을 트는 지역도 나타나고 있다. 미주리주가 대표적이다. 미주리주의 최대 도시인 세인트루이스 시의회는 올해 5월 최저임금을 10달러로 인상하는 안에 찬성했다.
하지만 주 의회가 태클을 걸어왔다. 공화당 소속인 에릭 그라이텐스 미주리 주지사가 최저임금을 시급 10달러에서 7.70달러로 깎는 법안에 서명한 것이다. 그레이텐스 주지사는 “최저임금이 높으면 일자리를 죽이고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앗아 간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결정 이후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최저임금 10달러 유지를 요구하는 ‘세이브 더 레이즈(Save the Raise)’ 캠페인이 진행되는 등 앞으로도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로서 이와 같은 논란에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최저임금 효과의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 최저임금 성공 사례 독일·영국, 전제조건은?
독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국가 중에서도 비교적 뒤늦게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후발국가다. 2000년대 초반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저임금의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최저임금제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2015년 1월 8.5유로(약 1만1300원)의 최저임금 도입이 결정됐다.
당시 독일에서 역시 최저임금 도입을 앞두고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 이로 인한 고용감소 등 수많은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독일은 우려와는 달리 안정적으로 최저임금 제도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다. 최저임금 도입 이후 실업률이 감소했다는 통계결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의 실업률은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2015년 1월 4.8%에서 2016년 3월 기준 월 4.2%로 하락했다. 평균 실업률이 9~10%를 넘나드는 EU 내에서 가장 낮은 실업률이다. 독일 경제사회학연구소에 따르면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시간당 소득이 8.5유로(약 1만1090원) 미만인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2016년 6%에서 2017년 3%로 현격하게 줄었다.
1999년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영국은 2016년 4월부터 최저임금보다 8~9% 높은 ‘생활임금’을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생활임금’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 유지가 가능한 생활비용으로 영국에서 그 기준은 시간당 최저 7.2파운드(1만709원)다. 영국정부는 2020년까지 최소 9파운드(1만3090원)로 인상할 계획이다.
영국 역시 ‘생활임금’ 도입으로 인해 긍정적인 효과를 본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영국 최저임금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생활임금제 도입으로 주 26시간 근로자 기준 연간 400파운드(58만1500원)의 소득 인상 효과가 나타났다. 이와 함께 최저임금 도입이 노동착취적인 저임금 일자리를 없애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국노동경제학회장을 맡고 있는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영국과 독일의 사례만 들어 최저임금 도입의 내수진작 효과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최저임금은 노동시장의 열위자인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을 보호하는 기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만 하더라도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노사 산별교섭으로 정해진 임금 하한선이 최저임금 역할을 해왔다. 이와 함께 실업자와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복지제도가 탄탄했다는 것 또한 특징 중 하나다. 현재도 독일의 경우 최저임금제를 일부 산업에 차등적용하는 등 ‘직종$산업별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는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경우는 연령별 고용 효과를 고려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최저임금이 높아지는 구조다. 조 교수는 “영국과 독일의 사례처럼 최저임금 인상이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고용과 중소기업에 대한 고려가 전제돼야 한다”며 “최저임금만으로 소득주도 성장이 가능하다는 인식은 오히려 위험성을 키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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