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비트코인의 다른 이름은 ‘돈의 인터넷’(internet of money)이다. ‘인터넷의 돈’(money of internet)이 아니다. 비트코인이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액결제 기반의 인터넷이 무료광고 기반 인터넷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리라고 예상한다. 현재의 인터넷은 대부분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무료가 주는 이익도 상당하다. 그러나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려면 자금력이 뒷받침 되어야하기 때문에 무료기반은 어쩔 수 없이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거대 공룡 기업과 독점을 낳았다. 인터넷 공룡 기업들의 독점력은 놀라워서 기존의 거대 미디어들마저도 구글이나 네이버 앞에서는 횡포의 피해자라고 하소연 할 정도다. 비트코인이 불러올 혁신, 즉 ‘소액 결제기반 인터넷’은 인터넷 권력을 공룡 포탈에게서 개미 유저들에게 돌려줄지도 모른다.
'소액 결제'가 네티즌에게 '자유' 줄 수 있어
스팀잇(steemit)은 페이스북 같은 SNS를 블록체인으로 옮겨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에 ‘좋아요’가 많이 달리면 기분이 좋다. 만약 스팀잇에 올린 글에 ‘좋아요’에 해당하는 업보트(upvote)가 많으면 기분만 좋은 것이 아니라 부자가 될 수도 있다.
업보트는 스팀잇에서 사용하는 스팀(Steem)이라는 토큰으로 교환되고 토큰은 공개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 팔리기 때문에 현찰과 다름없다. 실제로 제프버윅(jeff Berwick)이라는 캐나다 사업가는 스팀잇에 올린 자신의 글로 하루 밤 사이에 1만5000달러 정도를 벌었다. 꼭 버윅처럼 유명인사는 아니라고 해도 글을 꾸준히 올리면서 어느 정도의 독자를 확보한다면 여유있게 생활할 수 있다. 버윅이 사례로 소개한 릴리 다빈이라는 미국인은 암치료약 개발을 위해 허가받지 않고 마리화나를 재배하다가 수배를 받아 멕시코로 도망하여 살고 있다. 그녀는 스팀잇에 매일 글을 올리고 하루 2000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리며 수배자답지 않게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지지를 많이 받을수록 금액도 크지만 일단 글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는 글을 올리지 않고 다른 이들의 글에 투표하는 행위(업보트 혹은 다운보트)만으로도 보상을 받는다.
토큰을 활용해 보상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은 규칙을 정하기 나름이지만 스팀잇의 경우 보상은 투표하는 이들이 주는 것이 아니다. 보상은 시스템이 제공하도록 설계되었다. 토큰화는 블록체인과 화폐현상의 결합인데 기술적 부분인 블록체인 보다 화폐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직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스팀잇의 블록체인 시스템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글을 올린 사람과 글을 추천한 사람에게 토큰을 지급한다. 그리고 보상에 사용한 토큰은 암호화폐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을 형성한다. 스팀은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되는데 전체 시장가치는 2017년 8월 현재 3억 달러가 넘는다.
이들은 오프라인 회합도 거창하게 한다. 2016년 11월에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첫번째 스팀페스트(steemfest)에 참여한 35명의 연사들은 32개 국가에서 왔는데 모두 스팀잇에서 얻은 스팀달러로 여행경비를 마련했다고 한다.
스팀을 기업체가 제공하는 마일리지나 상품권 혹은 발행자가 환급을 보증하는 채권이나 청산자산에 대한 일정한 지분인 주식으로 간주하고 싶겠지만 이런 사고의 습관은 토큰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장애요소이다. 스팀은 비트코인과 같이 글로벌 시장에서 일정한 가치를 갖고 유통되는 일종의 화폐인 셈이다. 비트코인을 생산하기 위해서 누군가 컴퓨터 유지비와 전기료를 소모해야만 하듯이 스팀을 얻으려면 글을 쓰거나 추천을 하거나 이런 과정을 감독해야한다.
누군가가 비용을 투입하여 생산했다면 금이건 담배건 비트코인이건 쓸모와 상관없이 화폐로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 튤립 열풍의 교훈을 따르자면 비용을 투입한다 해도 생산량이 무한정 늘어나서는 안 된다. 비트코인은 생산량 증가율이 사전에 계획되어 있고 생산량이 줄어드는 해결책으로 화폐로서의 속성을 한층 높였다. 스팀도 마찬가지다. 생산자가 비용을 투입하며 규칙에 따라 생산되기 때문에 화폐로 쓰일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스팀잇이 활성화되고 스팀을 통용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화폐 가치가 증가한다. 화폐는 남들이 가치를 부여하는 대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신뢰 시스템이기 때문에 스팀은 스팀잇이라는 커뮤니티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도 가치를 갖는다.
시스템이 보상하기 때문에 사용자들에게는 눈치를 봐야할 ‘갑’이 존재하지 않는다. 스팀잇과 스팀의 가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수록 공룡 SNS 기업들의 수익구조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같은 SNS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식과 수고로 만든 가치를 회사의 주주들에게 헌납하는 구조이지만 스팀잇이 회사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팀잇의 CEO인 네드 스캇은 강조한다.
하루 밤 사이에 글 하나로 1만5000달러를 번 버윅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스팀잇의 지속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이 유발한 현상들은 직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에 눈과 귀를 닫는 것은 별로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비트코인은 곧 폭락하고 이를 추종했던 이들은 튤립열풍의 교훈을 무시한 죄로 파산해도 싼 머저리들이라는 ‘상식’만을 믿다가 어느새 투자기회를 놓쳐버린 이들의 현 상황이야말로 ‘상식의 배반’을 웅변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현실’의 관점에서 ‘상식’을 재검토할 차례이다.
블록체인으로 이루어지는 토큰화(tokenization)가 바로 ‘돈의 인터넷’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모든 권리가 미분화되고, 유동화되며, 즉시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된다. 제품도 사업도 아이디어도 놀이도 그리고 자신의 신분마저도 토큰화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는 벌칙마저도 토큰화할 수 있다.
쓸모없는 ‘스팸메일’ 열면 돋 받는다?
주기적으로 관리해주지 않으면 쌓이는 스펨 때문에 이메일은 부차적인 통신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그 피해를 비용으로 따지면 년 200억 달러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비트바운스(Bitbounce)라는 회사는 토큰을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벤처기업이다.
대량메일이나 광고를 보내려는 사람은 일정한 토큰을 메일에 첨부한다. 송신자에게는 일종의 벌칙이지만 수신자에게는 수입이다. 수신자가 클릭으로 메일을 열면 첨부된 토큰을 얻는다. 수신자의 주소록에 있거나 수신자가 면제해준 이들은 토큰을 첨부할 필요가 없다. 물론 수신자는 선별적으로 토큰을 받을 수도 있고 돌려보낼 수도 있다. 손편지를 보내기 위해서 붙여야 하는 우표와 비슷한데 수신자가 우표를 재활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우표를 독점적으로 판매해서 이익을 챙기는 체신부 없이 사용자들 간에 통용되는 우표라는 점에서 블록체인의 분산형 속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모델이다.
이 사업 아이디어는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어 매달 사용자가 300%씩 성장하는 중이다.
이 회사는 메일에 첨부하는 토큰인 크레도(Credo)를 공개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2017년 상반기의 글로벌 금융의 화두는 토큰을 공개해 자금을 모으는 ICO였다. 7월 26일 ICO를 시작할 예정이던 크레도는 테조스와 이오에스에 이어 가장 큰 ICO 이벤트로 예약되었다. 모금 목표액은 최대 2천만 달러뿐이지만 팔지 않고 회사가 보유할 코인의 가치를 고려하면 앞선 코인들보다 더 커질지 모른다는 기대를 모았다.
실리콘벨리의 존경받는 비트코인 투자자인 팀 드레이퍼는 공개적으로 판매되기도 전에 크레도를 10%를 구입했다. 암호화폐 세계에서라면 워런버펫에 버금가는 신뢰를 얻고 있는 드레이퍼의 적극적인 추천을 힘입었으니 크레도의 ICO는 성공이 보장된 셈이기도 했다. 크레도의 ICO 하루 전날 미 증권감독위원회(SEC)는 ICO가 SEC가 관할하는 미국 증권법의 규제대상이라고 밝혔다. 걷잡을 수 없이 날로 확장하는 ICO열풍을 잠재우기 위해서 크레도의 ICO 하루 전날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고 의심할 만하다.
SEC는 모든 토큰이 증권이라고 말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증권처럼 인식되지 않는 토큰을 만들어서라도 ICO를 지속하려고 한다. 결국 초기 모험 사업가들과 신산업의 고삐를 움켜쥐려는 규제 당국 간의 사안별 법정공방을 통해 토큰의 증권판별 기준도 명료해질 것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열어젖힌 토큰화라는 물결은 막을 수 없다. 심지어 SEC 스스로 2016년에 증권을 토큰화해서 거래하려는 오버스탁(OverStock)에게 민간 주식거래운영허가권을 내주기도 했다.
전세계 정부기구로는 최초로 ICO에 제동을 걸고 나서기는 했지만 SEC 마저도 혁신의 물결을 맨몸으로 막아서려다 휩쓸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 거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권리가 토큰으로 유통되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
[돋보기: 팀드레이퍼와 그의 두 아들]
실리콘밸리의 전설, 비트코인에 주목하다 (사진) 팀 드레이퍼(왼쪽 세번째)와 그의 가족들
드레이퍼는 벤처투자 가문의 이름이다. 현재 아버지 팀 드레이퍼가 이 가문을 대표한다. 가문은 비트코인을 초창기부터 지지해왔다. 2014년 FBI가 실크로드로부터 압류한 3만BTC를 경매에 붙였을 때 모두 팀 드레이퍼가 낙찰 받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대량의 비트코인이 시장에 쏟아진다는 우려로 7% 가까이 폭락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경매 낙찰자가 팀 드레이퍼라는 사실로 바로 회복되었다. 스탠포드 공대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나와 투자자로 활동하며 핫메일과 스카이프에 투자해 크게 성공했다.
드레이퍼 가문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그리고 ICO의 미래가치를 모두 낙관하고 있으며 투자의 선봉에 서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팀 드레이퍼의 아들 아담 드레이퍼는 2012년 Boost VC를 설립하고 100개 이상의 암호화폐 관련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를 목표로 뛰고 있다. 또 다른 아들, 빌리 드레이퍼는 아버지가 세운 드레이퍼 어쇼시에트(Draper Associates)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하며 ICO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벤처케피탈의 역사적 실패는 모두 행동의 실패”였다고 말하며 투자기회로서의 ICO의 진정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ICO가 증권법에 저촉된다는 SEC의 선언 직후 팀드레퍼는 페이스북에 SEC에 보내는 공개편지를 올리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사적인 이익을 위한 ICO는 증권으로 보는 게 맞지만 공익이나 혁신을 위한 ICO는 증권법 적용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규제적 태도가 암호화폐가 불러온 거대한 혁신에 대한 주도권을 외국에 넘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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