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버레인과 칸투칸의 대성공…품질 확보하고 ‘고객 취향’ 정확히 파악해야 (사진) = 에버레인 홈페이지
[한경비즈니스 칼럼=허지성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에버레인이라는 미국의 신생 의류 업체가 있다. 설립 5년 차에 불과한 이 회사의 기업 가치는 약 3000억원에 달한다. 또한 매년 최소 2배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2016년 매출은 1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수년간 자라·유니클로 등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서 특히 중저가 의류 브랜드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업 영역에서 온라인에 의존한 신생 의류 업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빠른 성장의 비결은 무엇일까.
제품의 디자인이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심플함이 강조된 에버레인 제품들의 디자인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유사한 콘셉트나 디자인의 의류를 판매하는 업체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지도 높은 셀러브리티가 직접 운영한다거나 짧은 시간에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광고 등에 큰돈을 쓴 적도 없다.
게다가 에버레인은 오프라인 유통을 하지 않고 오직 온라인으로만 옷을 팔기에 유통 채널에 기댄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에버레인은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고 경쟁이 심한 의류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사진)= 에버레인 홈페이지의 가격표
◆ 에버레인, 설립 5년 만에 매출 1000억
이 업체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원가 공개’였다. 에버레인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모든 의류 제품 소개 화면에는 각 제품에 대한 설명 밑에 ‘투명 가격(Transparent Pricing)’이라는 제목의 큼지막한 회색 사각표가 게재돼 있다.
표 안에는 해당 상품의 재료비·공임·운임비 등이 나눠 게재돼 있고 그 아래는 ‘트루 코스트(True Cost)’, 즉 ‘원가’가 표시돼 있다. 그리고 그 밑에 해당 제품이 다른 업체에서 팔릴 때의 예상 가격과 에버레인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비교 표시돼 있다.
결국 소비자들은 이 회사가 해당 상품의 생산 과정에 든 비용은 물론 마진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심지어 표에 표시된 원가와 판매가는 실제 재료 원가의 하락 등 비용 하락 요인이 발생하면 연동돼 내려간다.
에버레인은 소비자들로부터 과도한 이윤을 취하지 않겠다는 브랜드의 약속을 모든 제품의 원가와 마진을 공개하는 과감한 방식으로 실천했고 소비자들은 강력한 입소문을 통해 에버레인에 보답한 것이다. (사진)= 마이클 프레이스먼 에버레인 CEO
에버레인의 공동 창업자인 마이클 프레이스먼은 의류를 쇼핑하다가 상품 원가에 때때로 수십 배까지의 마진율이 붙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현재의 패션 산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자신이 패션 산업에 문외한이기에 오히려 시장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그의 주장은 많은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는 스토리로 작용했다.
각 상품의 원가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마진 또한 업계의 일반적인 수준 대비 크게 낮춘 에버레인의 비즈니스 모델은 온라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유통 방식이 아니고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에버레인은 의류 사업 전개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는 오프라인 유통망의 부재를, ‘극단적인 투명성’이라는 브랜드 자산으로 변환시켜 성공을 거둔 것이다.
국내에도 칸투칸이라는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업체가 투명성의 가치를 사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칸투칸 또한 에버레인과 같이 각 제품의 원가, 판매당 손익, 심지어 해당 제품을 통해 자사가 벌어들인 누적 손익까지 제품 소개 페이지에 게재하고 있다.
칸투칸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소비자들이 자사의 업무 프로세스까지 실시간으로 견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칸투칸은 ‘슬랙’이라는 온라인 협업 도구를 통해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온라인 견학 상품권’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슬랙을 통해 온라인으로 접속, 이 과정을 다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투명성을 바탕으로 칸투칸은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고 2016년 기록한 매출이 2015년의 두 배를 웃도는 600억원에 이르는 등 소비자 신뢰 확보의 결과가 실적으로도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사진)=‘가성비’로 유명한 이마트의 ‘노브랜드’제품.
◆ 고객에 대한 ‘설득과 공감’ 필요
브랜드 활동의 지향점이 브랜드 노출을 통한 각인에서 브랜드 진정성을 통한 설득과 공감으로 옮겨 가고 있는 한편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전쟁 또한 뜨거워지고 있다.
온라인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제품 정보 습득이 용이해지고 댓글·리뷰 등 다양한 형태의 비교 평가를 고려한 구매가 일반화된 환경에서 더 높은 품질의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은 당연히 경쟁의 핵심 요소가 돼 가고 있다.
그런데 가성비 전쟁은 지속성의 이슈가 존재할 수 있다. 영리해진 소비자들에게 경쟁 업체들보다 가성비가 높은 제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에는 사업 환경이나 경쟁 변수 등이 유동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성비를 브랜드화하려는 시도가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마트의 ‘노브랜드’로, 2015년 4월 일부 이마트 매장을 통해 선보인 이후 꾸준히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초기에는 쿠키·초콜릿 등 10여 개에 불과한 제품 수는 최근 1000여 개를 넘어섰고 취급 매장도 이마트 대형 매장에서 편의점과 헬스&뷰티 매장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에버레인이나 칸투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관점에 따라서는 극단적일 수도 있는 투명성의 개념은 기존의 진정성 개념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브랜드에서의 진정성은 브랜드의 기원, 상품 재료의 출처, 또는 창업자의 창업 스토리나 장인 정신 등을 강조해 광고 등의 각인 효과 없이도 브랜드 구매의 심리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활동에 가깝다.
에버레인이 제시하는 투명성은 제품의 가격, 원료의 품질, 직원에 대한 보상 등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 서비스의 가격,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의 정보들을 투명하게 공개해 고객이 구매하는 제품 가격에 거품이 하나도 없다는 자사의 사업 모델 자체를 설득하고 있고 이에 따라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어찌 보면 브랜드의 존재 가치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려는 시도로도 읽힐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브랜드의 핵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다.
이타마르 시몬슨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그의 저서 ‘절대 가치’에서 브랜드의 ‘소통 지위’에 대해 밝혔다. 소비자가 제품이나 기업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브랜드의 가치가 품질의 신호보다 소비자들의 취향을 표현하는 상징의 역할이 더 커지게 될 것인데, 이것이 특정 브랜드의 소통 지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성비만 추구한다면 해당 브랜드의 소통 지위가 높아지기 힘들고 소비자들의 감정이입을 기대하는 것도 따라서 힘들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생필품이 아니라 패션 등 소비자의 취향이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서는 가성비 추구 자체가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되도록 하는 것이 가성비로 승부하는 업체들의 사업 지속성을 위해 중요하다.
여러 환경적 요인들을 감안해 보면 소비자들의 가성비에 기반 한 소비 추구 트렌드는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지속적인 가성비 추구가 기업들에 쉬운 일은 아닐 것이지만 가성비를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업은 가성비와 진정성을 소비자들에게 동시에 어필할 수 있다.
특히 가성비가 중요한 산업이나 제품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면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고 지속하기 위한 ‘가성비 브랜드화’ 노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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