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1월 메르세데스-벤츠의 모회사인 다임러가 비트코인 관련 디지털 결제 업체 페이캐시유럽(PayCash Europe)을 인수했다. 보도 우에버 다임러그룹 재무담당은 “메르세데스페이를 만들어 벤츠의 ‘디지털 모빌리티 서비스’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회사가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 화폐(crypto currency) 결제 업체를 구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가 달러나 원화 대신 비트코인으로 벤츠를 구입한다고 한들 특별한 이익을 얻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 궁금증은 몇 개월 지나 나온 다른 자동차 회사의 뉴스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올해 5월 도요타는 도요타리서치인스티튜트(TRI)를 통해 블록체인(Blockchain)을 활용한 자동차 미래 혁신 기술 관련 사업 비전을 밝혔다. 도요타는 이미 블록체인 기술을 자율주행차와 전기차에 응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도요타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산하 미디어랩과 블록체인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도요타는 최근 블록체인을 사업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여러 회사와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요타는 독일의 빅체인DB, 미국의 오큰 이노베이션스, 이스라엘의 커뮤터즈와 젬 등 블록체인 분야의 글로벌 전문 기업들과 협력하기로 했다. 자율주행·카셰어링에 활용 예상
블록체인은 디지털에 물리적 속성을 부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디지털인데도 원본성(originality)이 생긴다. 데이터를 누군가에게 보내고 나면 복사본이 자신에게 남지 않는다. 이런 속성 때문에 인터넷에서 화폐가 될 수 있었다. 온라인 뱅킹을 이용한 송금은 은행 서버에서 장부를 수정하는 것이지 실제로 갑의 컴퓨터에 있는 돈을 을의 컴퓨터로 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중앙 서버의 인증 없이 컴퓨터에서 컴퓨터로 이동한다.
자동차 회사들은 블록체인의 여러 속성 중에서도 바로 이 원본성에 집중하고 있다. 자율주행과 카셰어링(car sharing)의 핵심적인 난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과 카셰어링은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할 때면 빠지지 않는 테마다. 차를 소유하면 멈춰 서 있을 때도 주차 관리비와 보험료·감가상각비까지 지불해야 한다. 자율주행과 공유 시스템을 활용하면 저렴하게 고급 사양의 차를 몰 수 있다. 운행할 때만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율주행 자동차가 집 앞에 와서 대기한다고 해도 자동차 키를 택배로 받아야 한다면 의미가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종의 디지털 코드로 자동차 키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무한 복제되는 코드는 해커의 좋은 먹잇감이다. 전자키를 확보한 해커가 고속으로 주행 중인 차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자동차 공유 시장은 열리기 어렵다.
그래서 자동차 회사들은 전자키를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코인으로 생산할 것이다. 자동차를 빌리는 사용자는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동차의 위치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받으면서 그 차의 하나밖에 없는 전자키도 스마트폰으로 받는다. 운전을 끝내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전자키를 회사에 반납하면서 거래의 한 사이클이 완료된다.
이렇게 반납한 전자키에는 운행 기록과 함께 운전자의 운전 태도도 입력된다. 신호 위반 횟수나 브레이크 반응속도 같이 보험료 산정에 필요한 정보들이 포함된다. 이런 정보는 고객마다 사용 요금을 차별화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안전 운전이나 준법 운전에 대한 강한 인센티브를 부여받는다. 결국 혜택은 자동차 회사와 사용자를 넘어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블록체인은 분산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해커는 공격 목표를 찾기 어렵다. 블록체인은 중앙 서버가 없고 지구 곳곳에 있는 서버에 동시에 기록이 갱신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서버를 동시에 공격하지 않는 한 서버를 조작해 도로 위의 자율차를 통제하려는 해킹은 실현되기 어렵다.
비트코인이 수많은 해킹의 위협 속에서 8년을 버텼다. 블록체인의 해킹 불가능성은 이론적인 예측을 넘어 경험적으로도 입증된 것이다. 블록체인의 원본성과 분산성을 이용하면 자율주행 관련 비즈니스가 상용화되는 시기를 획기적으로 앞당길 수 있다. 블록체인은 거래(transaction)만이 아니라 도심의 거리나 공중을 움직이는 것들의 트래픽(traffic)을 안전하면서도 투명하게 관리하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로 부상하고 있다. 돋보기 - 블록체인의 의미
비트코인의 핵심 기술…세상에서 가장 큰 ‘거래 장부’
블록체인(blockchain)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든 비트코인의 기술적 명칭이다. 한국은행은 블록체인을 ‘분산 장부(distributed ledger)’라고 번역했다. 분산 장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비트코인처럼 누구나 장부 작성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개 분산 장부와 특별한 자격을 갖춘 이들만 장부 기록에 참여하는 비공개 분산 장부 시스템이다. 골드만삭스 등의 금융권에서 관심을 갖고 투자해 온 쪽은 후자로, 프라이빗 블록체인(Private Blockchain)이라고도 부른다. 비트코인은 인류 역사 최초의 디지털 분산 장부이며 가장 큰 ‘공개 분산 장부’다.
여러 참여자가 동일한 장부를 동시에 누적, 갱신해 나가기 때문에 누군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기록을 변경하는 것이 차단된다.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은 이런 기록을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묶고(block) 이 묶음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연결(chain)한다는 개념에서 따왔다. 흔히 수학 문제를 풀어 신규 코인을 얻는다는 비트코인에 대한 대중적 지식은 블록을 완성하는 방식에 대한 게임의 법칙과 관련이 있다.
동시에 여러 참여자가 하나의 ‘올바른 거래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정사(正史)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자들이 정사 기록권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데 비트코인은 10분마다 한 번씩 승자를 가린다. 정사를 먼저 기록한 승자는 다른 참여자들에게 인정받고 보상 받는다. 그리고 다음 게임에서 승자가 되기를 원하는 참여자들은 이전 승자의 기록을 군말 없이 복사해 자신의 기록으로 받아들인다.
블록체인은 정사라고 합의한 역사 기록들을 순차적으로 쌓아 가는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고치려고 하는 부분 이후의 모든 블록의 기록을 다 고쳐야 한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모순 없이 고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데 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시스템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이런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는 단일한 주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나 중국 정부도 할 수 없고 정부들이 모두 연합해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은 해킹이 불가능한 거래 기록이라고 할 수 있고 참여자가 많은 블록체인일수록 해킹이 더 어렵고 같은 블록체인에서도 오래된 기록일수록 변조하기가 어렵다.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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