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법정관리 후 1년이 지났지만 ‘한진해운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파산 절차는 진행 중이고 이 사태로 제기된 법적·제도적 문제 또한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가장 큰 피해자로 거론됐던 화주들은 아직까지도 피부에 와 닿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8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수송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수출 운임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중소 화주들의 피해 가장 커
올해 2월 한국무역협회가 2016년 기준 100만 달러 이상 수출 화주 기업 332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4.5%가 ‘수출 지역 해상 운임이 올랐다’고 답변했다.
무역협회 측은 “해상 운임 상승이 수출 가격 인상, 납기 지연 등으로 연결되면서 중소 수출입 업체들의 가격 및 서비스 경쟁력 저하 문제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운임이 상승한 이유는 선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국적 선사의 선적 스페이스가 부족하다고 응답한 업체는 38.0%에 달했다. 이에 따라 외국적 선사의 운임 및 스케줄 횡포가 또 다른 문제점으로 떠오르게 됐다. ◆현대상선 규모, 머스크의 ‘10분의 1’
더 큰 문제는 한국 선사들과 외국 선사 간 규모의 차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덴마크 머스크라인의 보유 선복량은 404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한 대)로 전체의 19.2%를 차지한다. 이는 향후 이뤄질 선사 간 인수·합병(M&A)을 감안한 수치다.
한국 1위인 현대상선의 점유율은 35만TEU(대선 7척 제외)로 전체 1.8%를 차지해 유럽 선사들과 엄청난 격차를 보인다. 현대상선의 총선복량은 머스크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현대상선도 신규 선박 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8월 11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은 “현대상선이 100만TEU 이상의 선복을 확보하려면 현재 46만TEU(대선 7척 포함)에서 초대형 선박 40척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총선복량뿐만 아니라 단일 선박의 규모 차도 커지고 있다. 세계 선사들은 이미 1만8000TEU를 넘어 2만TEU급 선박을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 선사들의 선박 규모는 한참 뒤처져 있는 상태다.
8월 31일 기준 현대상선이 보유한 최대선은 1만3500TEU급이고 SM상선은 그보다 한참 뒤진 6500TEU급이 최대선이다.
아시아~유럽, 아시아~미주 항로에서는 선사들이 얼라이언스를 결성해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운영되고 있는 얼라이언스는 3곳(2M·오션얼라이언스·디 얼라이언스)이다. 하지만 국내 선사들은 그 어느 얼라이언스에도 완전히 올라타지 못했다.
현대상선은 머스크 및 MSC와 ‘2M+H’로 묶여 있지만 계약 기간은 2020년까지다. 한진해운의 일부 자산을 승계한 SM상선은 그 어느 얼라이언스에도 속해 있지 않은 상태다. SM상선의 총선복량은 12만TEU로 세계 30위 수준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외 선사들이 한국 선사들을 얼라이언스에 끼워 주려면 그들도 한국 선사를 통해 선복 공유나 공동 항로 운항 등 이득을 얻어야 하지만 현재 우리 선사들의 규모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센터장은 “현대상선이 거대 선사로서의 성장 목표를 제시하고 정부와 KDB산업은행의 지원을 촉구하는 이유는 2020년 2M과의 협력 관계가 종료될 때 현재 규모로 다른 얼라이언스 가입이나 또 다른 협력 관계를 체결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흩어진 한진해운의 자산은 어디에
한진해운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동안 쌓아 온 인프라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원양 선사 SM상선은 한진해운의 미주·아주 노선과 영업망을 인수해 탄생했다. 노선뿐만 아니라 예전 한진해운 소유였던 광양·경인 컨테이너터미널 지분도 확보했다.
올해 2월 한진해운은 롱비치터미널 보유 지분 1억4823만 주와 주주 대여금(7249만 달러)을 처분했다. 이에 따라 롱비치터미널의 최대 주주는 지분 80%를 소유한 스위스 선사 MSC의 자회사 터미널인베스트먼트리미티드(TIL)가 됐다. 현대상선은 지분 20%를 가진 2대 주주다.
롱비치터미널은 한진해운의 자산 매각 때 국내 선사가 꼭 가져가야 할 자산으로 여겨졌지만 결국 외국 선사에 최대 주주 자리를 넘겨주게 됐다.
하루아침에 회사를 떠나야 했던 한진해운의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SM상선은 약 670명의 육상 직원 중 300여 명의 채용을 약속했었다. 이 중 210여 명이 현재 SM상선에 근무하고 있고 나머지 90여 명은 다른 회사로 가거나 해운업계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한진해운에서 근무한 직원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해운업 자체에 환멸을 느끼고 업계를 떠난 동료들이 많다”고 전했다. 나머지 직원들 중 20여 명은 한진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갔고 50여 명은 한진해운 파산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jlee@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