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앙겔라 메르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의 '숨겨진 이야기'
[한경비즈니스=이근일 한경BP 편집위원] 2017년 9월 24일 독일 총선에서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전 여론조사 예측대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4연임에 성공했다. 이는 헬무트 콜 전 총리의 비스마르크 이후 최장수 재임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록이다.

◆성대모사 즐기는 4연임 총리

2010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는 메르켈 총리. 이 책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 정치인인 그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칼럼니스트인 매슈 크보트럽 영국 코벤트리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영어권에서 인용되지 않았던 독일어 자료와 기록보관소의 서류를 검토하며 메르켈 총리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엮어 냈다.

특히 메르켈 총리 특유의 성격과 비전을 참신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와 또 그의 여성 참모들이 어떻게 보수적인 남성 정치인들을 압도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2015년 메르켈 총리는 도전자가 없는 명실상부한 유럽의 여제였고 그때까지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었다.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유럽연합(EU)을 이끌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성공적인 협상을 이끌어 냈고 100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는 포용 정책을 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언론 ‘타임’은 그해 메르켈 총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난민 위기와 더불어 바뀌었다.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추긴 했지만 그의 후계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많은 난민을 수용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은지 여부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독일 경제를 튼튼하게 하고 연금을 지불할 원천을 확장함으로써 복지국가를 보존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어쨌든 난민 위기는 메르켈 총리가 실용주의를 버린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는 “궁극적 목적이라는 윤리와 책임감은 대비가 아닌 보완되는 개념”이라는 철학자 막스 베버의 말을 구현한 인물이다.

“어떤 이는 위대하게 태어나고 어떤 이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어떤 이에게는 위대함이 맡겨진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하며 “그는 위대함이 맡겨졌기 때문에 위대해졌다”고 평가한다. 특유의 신중함과 리더십으로 험난한 위기들을 극복해 온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많은 이들은 메르켈 총리가 동독에서 자라 자연과학을 전공했고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고 때로 성대모사를 즐긴다는 등의 이야기는 쉽게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간 ‘앙겔라 메르켈’은 현재도 한창 굵직한 역사를 쓰고 있는 메르켈이란 인물의 삶과 쉽지 않은 정치 인생의 결정적 에피소드를 정교하게 구성해 우리에게 흥미롭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