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경력 못 살리고 경비원·단순 생산직·환경미화원 등 ‘생계형 취업’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앞으로 더 남았다.” 성큼 다가온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이른바 ‘신중년’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정부는 직장에서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는 50세부터 69세까지를 신중년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규정했다. 여전히 활발한 사회 진출이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만 해도 50대는 서서히 은퇴를 준비하는 나이였다. 60대가 되면 일을 하기보다 집에서 쉬며 노후를 보내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이처럼 노년이 생애 절반으로 길어진 만큼 이제 50대는 재취업을 위한 전략을 세우고 준비해야만 하는 시기가 됐다. 이때 세운 전략을 토대로 재취업에 성공해야만 안정적이고 활기찬 노후가 가능해진 셈이다. 하지만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신중년 고용 상황은 개선 추세
청년층뿐만 아니라 다시 취업 시장으로 내몰린 신중년 층의 일자리 문제 또한 심각하다.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가령 수치로만 놓고 봐도 신중년 층의 고용 상황은 나아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9월 고용 동향만 봐도 알 수 있다. 50~59세 고용률은 75.7%, 60세 이상 고용률은 41.7%로 전년 동월 대비 각각 0.7%포인트, 0.6%포인트 증가했다. 큰 폭의 개선세를 보였고 청년층(15~29세)의 고용률이 42.6%라는 점을 감안해도 결코 나쁘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문제는 신중년 층이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직접 구직하는 신중년 층의 입장이 돼서 일자리를 구해 보기로 했다.
유명 채용 포털 사이트를 들어가 봤지만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의 채용 공고는 한 건도 없었다. 몇몇 중소·중견기업들이 중·장년 퇴직자 우대를 내걸고 채용을 진행 중이었는데 단순 생산이나 배송 업무가 주를 이뤘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채용 정보 사이트도 비슷했다. 먼저 서울시가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취업 및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는 ‘서울시 50플러스 포털’에 들어가 봤다.
해당 사이트에 등록된 채용 건수는 약 2만8000건에 달했지만 대부분이 서울시일자리포털에서 제공하는 청년층 대상 채용 공고였다. 신중년 층을 대상으로 하는 채용은 180여 건에 불과했는데, 주로 경비원이나 환경미화원 등에 대한 채용 공고였다.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하는 워크넷도 수많은 ‘장년 우대 채용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사무직에 속하는 채용 공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원 자격도 경력과 관계없이 채용을 진행한다고 명시된 게 많았다.
직접 한 업체에 전화를 걸어 “청년층도 채용에 지원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신중년 층이 해당 공고에 지원하면 채용 과정에서 청년들과 경쟁을 펼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안정적 일자리 제공에 초점 맞춰야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각 기관의 통계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 직장인들의 평균 퇴직 연령은 대략 51세 정도다. 평균 기대수명은 이보다 훨씬 길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유엔인구기금(UNFPA)과 함께 발간한 ‘2017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 한국어판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성 79세(세계 20위), 여성 85세(세계 6위)다.
퇴직 후에도 약 30년은 더 살아가는 셈이다. 신중년 층의 상당수가 결국 경력과 무관한 경비원이나 단순 생산직, 환경미화원 등 소위 말하는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는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통계로도 입증됐다. 지난해 사단법인 대한노인회를 통해 취업에 성공한 60세 이상 구직자는 총 2만5264명이다. 이 중 가장 많이 취업한 곳은 청소 관련 업체(7208명)였다. 경비 관련 업체(7111명)가 뒤를 이었고 생산 작업(2819명), 농어촌 인력(1949명), 현장 관리직(1692명) 순이었다. 경력과 능력이 입증된 대기업 임원 출신이라고 해도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비슷하다. 예컨대 최근 한 국내 유명 제조업체의 부사장을 지냈던 A 씨가 회사를 퇴직한 이후 택시운전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련 업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의 경력을 살려 퇴직 후 재취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다. 내년부터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그나마 있던 신중년 층의 일자리마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6년 비정규직 노동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고령층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42.4%였고 최저임금 이하 수준을 받고 있는 노동자는 28.9%로 나타났다.
만약 기업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재정 부담으로 채용 규모를 줄이면 신중년 층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일하며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신중년 층을 단순 노무직이나 일용직으로 모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에서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신중년 층에게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지선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신중년 층이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임금 피크제 확대 등의 정책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등의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한다”며 “2020년부터 청년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는 독일이나 일본처럼 정년을 더욱 늘리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정우 한경비즈니스 기자 enyou@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