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차용 넘어 제품에 예술 요소 활용하는 적극적 마케팅으로 ‘진화’ (사진)구찌는 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폭발적 매출 신장을 이뤄냈다.(/구찌)
[한경비즈니스=허지성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이탈리아의 전통 럭셔리 브랜드 중 하나인 구찌는 2017년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49%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7년 1분기에 발표한 전년 동기 43.8%, 상반기에 발표한 전년 반기 대비 43% 매출 증가와 함께 구찌의 폭발적인 매출 성장 곡선의 기울기가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1~9월간 매출의 55%가 35세 이하의 소비자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구찌가 매출 확대는 물론 영 브랜드로의 변신에도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5년까지만 해도 구찌는 트레이딩 업, 트레이딩 다운으로 대표되는 패션 시장 트렌드 변화의 대표적인 희생자 중 하나였다. 에르메스·샤넬 등의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 개성과 가성비를 동시에 보유한 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 브랜드의 사이에서 고전하고 있었다.
매출과 수익 등의 경영지표들도 2012년부터 분기별로 정체·감소를 반복하는 추세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이러한 추세는 한국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구찌코리아의 2013년 매출은 전년 대비 5.2%, 영업이익은 8.6% 줄어드는 등 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6년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8%나 증가하며 변화의 조짐이 보이더니 이제는 분기마다 폭발적인 매출 신장을 기록 중이다.
◆구찌를 부활시킨 예술
구찌는 3년도 안 되는 기간에 어떻게 갑자기 젊은이들에게 각광받는 ‘핫’한 럭셔리 브랜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됐을까. 가장 큰 이유는 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영진 발탁에 있었다.
구찌는 2015년 무명에 가까웠던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내부 발탁해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했다,
미켈레 디렉터는 구찌의 디자인 콘셉트를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르네상스 미술 및 컨템퍼러리 미술(현대미술)을 다양한 패턴이나 콜라주의 형식으로 구찌의 의상과 핸드백 등에 적용했다.
이것이 주효했다. 예를 들어 구찌의 2017년 봄 컬렉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피터 파울 루벤스, 빈센트 반 고흐, 베첼리오 티치아노 등 르네상스와 모던 아트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이름과 대표 작품 이미지를 백 디자인에 과감히 적용해 호평을 받았다.
또 다양한 컨템퍼러리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패턴, 프린트 이미지 등을 의상에 차용, 남녀 구분이 모호한 ‘앤드로지너스 룩’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마케팅에서도 컨템퍼러리 행위 예술과 같은 형식의 비디오 콘텐츠를 제작,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각종 소셜 미디어에 소개하며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예술은 제품이나 브랜드에 ‘유구한 역사’, ‘장인정신’, 또는 ‘취향의 선도자’라는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기업들에 유용한 마케팅 소재다.
또한 소비자들도 자신이 보유한 특정 예술 분야에 대한 조예를 자연스럽게 노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취향의 리더십을 과시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적극적으로 예술을 소비하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기점으로 와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재즈 장르가 대중적으로 각광 받게 되며 관광 중심의 해외여행이 휴양 중심으로 바뀐다는 속설이 있다.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숙하게 되면 문화와 예술을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소비할 여력이 생기게 되고 소비자들
이 스스로를 차별화하기 위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찾는 성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소셜 미디어 등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거나 과시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자리 잡으면서 소비자들의 이러한 욕망을 강화한다. 글·사진·동영상 등 다양한 일상 콘텐츠의 공유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이를 통해 ‘취향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취향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필요한 사회적인 속성을 지닌다. 이에 소비자들은 라이프스타일에서 ‘우수한 취향’을 지닌 검증된 지인들이나 다른 오피니언 리더들의 주장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그들의 취향을 선택적으로 모방하기를 원한다.
또한 이미지나 메시지의 파격을 통해 글로벌 차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컨템퍼러리 예술의 속성이 마케팅의 요소와 여러 측면에서 닮아 있다는 점도 예술과 상업용 제품 간 협업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제품 디자인이나 마케팅 등에 직간접적으로 미술·음악 등 문화·예술적 요소를 차용하는 추세는 구찌의 사례에서 보듯 최근에는 의류·식품·전자제품 등 보다 다양한 영역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그 방식에서도 전시 행사 후원 위주의 전통적인 마케팅에서 광고에 예술작품 등을 차용하거나 제품 자체에 예술적 요소를 가미하는 적극적인 활용으로 확대되고 있다.
예술을 활용한 가장 전통적인 경영 활동은 미술 전시나 공연의 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공연 전시 정보에 후원 업체의 브랜드를 노출하는 예술 관련 행사의 후원이나 스폰서십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활동에서도 변화가 눈에 띄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수동적인 후원 활동에서 벗어나 아예 전시를 적극적으로 주관하는 기업들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상반기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바 있는 ‘까르띠에 [하이라이트] 전’은 럭셔리 브랜드 까르띠에가 1984년 설립한 미술재단의 현대 미술 컬렉션을 전 세계 주요 미술관 순회 전시에 활용하는 일환으로 기획됐다.
까르띠에 브랜드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만큼 단순한 후원 전시보다 더 큰 브랜드 인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럭셔리 브랜드인 로에베 또한 2016년부터 현대 공예품에 대한 컬렉션과 전시 목적의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를 진행하고 있다.
국적에 관계없이 매년 18세 이상의 공예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지원받아 최종 후보를 선정하고 선정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마드리드·파리·도쿄·런던 등 럭셔리 비즈니스의 중심 도시에서 순회 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루이비통재단은 2014년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을 개관해 다양한 기획 전시를 진행 중이다.(/루이비통)
◆안목 높은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춰라
브랜드의 이름을 내걸고 미술관 등의 문화·예술 공간을 운영하는 메세나 활동도 단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일환에서 건물의 차별화·고급화 등을 통해 브랜드와의 연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고도화되는 추세다.
루이비통재단은 2014년 프랑스 파리에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을 개관했다. 여기에선 루이비통재단이 보유 중인 컬렉션의 상설 전시 및 루이비통의 럭셔리 이미지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획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적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에게 의뢰해 지어진 건물 외관 자체의 독특함이 루이비통의 럭셔리 이미지 강화에 기여한다. 또한 실제 소장 중인 현대 미술 컬렉션을 통해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방문자들에게 루이비통에 대한 이미지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겠다는 의도를 볼 수 있다.
단순한 메세나 활동을 넘어서는 브랜드 강화 활동의 의지를 미술관 운영을 통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루이비통 미술관이 큰 호응을 얻자 구찌의 모회사인 케어링그룹도 파리 옛 상업거래소를 개조해 미술관을 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안도 다다오 건축가가 설계를 맡은 미술관에는 케어링그룹이 보유한 미술 컬렉션은 물론 케어링그룹이 보유한 세계적인 경매 회사 크리스티의 미술품 관련 자원과 노하우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이미 완성돼 있는 작품을 마케팅의 목적으로 광고나 제품 패키징 등에 활용하는 ‘아트 인퓨전’, 제품의 실제 디자인이나 제작 과정에 예술가가 참여해 제품의 외관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컬래버레이션은 이미 주요한 마케팅, 브랜딩 활동 중 하나로 부상한 지 오래다.
패션 분야에서는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업체인 유니클로와 H&M 등이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등 유명한 현대미술 화가들의 작품이나 뉴욕현대미술관(MOMA) 소장 작품 컬렉션을 티셔츠에 프린트하는 형태의 협업을 수년 동안 지속해 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LG생활건강이나 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 회사들은 육심원 화가 등 인지도가 높은 미술 작가를 패키지에 활용하거나 전통 인물화를 한방 화장품 브랜딩에 활용하는 등 미술 영역과의 활발한 연계를 지속하고 있다. 또 우유를 비롯한 식음료 패키징 등에도 미술 작품을 차용하는 사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미술 작품이 직간접적으로 기업의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활용되는 추세는 미술이 가진 희소성, 취향으로서의 선호 대상, 그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이나 상징성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이해와 선호가 없는 브랜드가 단순히 미술 작품의 이미지를 일회적으로 차용하는 방식으로의 브랜딩, 마케팅 활동은 진화해 가는 소비자들의 취향 수준을 감안할 때 효과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소비자들의 반발을 가져올 가능성도 예전보다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예술 트렌드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 꾸준한 투자를 통해 취향을 선도하는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즉 문화·예술 마케팅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는 기업들에 한해 구찌의 사례에서 보듯이 ‘문화·예술을 활용한 비즈니스의 성공’이라는 과실을 얻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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