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비트코인은 ‘전통 경제학’의 영역 넘어서…신기술로서의 창의적 해석 필요
‘블랙홀’ 원리를 경제학에 묻는다고?
(사진)스위스 디나르(위)와 사담 디나르.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매커니즘캠퍼스 출강] 미국 최대 선물거래소인 시카고선물거래소(CME)가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시작한다는 뉴스로 비트코인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제 주류화가 대세라는 분위기다.

CME를 이끄는 레오 멜라메드 회장 자신도 처음에는 비트코인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85세의 고령인 그는 자신의 전 생애가 신기술과 함께했으며 신기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곧 죽을 운명이라는 말로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옹호했다.

미국 국회에서 비트코인 청문회가 열렸을 때도 비트코인을 당장 금지해야 한다는 일부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상임위 위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언제나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전통을 갖고 있으니 이 신물질을 좀 더 지켜보자”고 말이다. 당시 국회의원들도 모두 멜라메드 회장처럼 고령이었다. 당시 청문회는 비트코인을 ‘마약 거래’에 활용했기 때문에 열렸다.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은 비트코인을 앞다퉈 비판해 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대표적 케인스언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비트코인을 일찌감치 비판했다. 시카고학파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유진 파마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도 비트코인 가격은 결국 0으로 수렴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역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도 비트코인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거품 현상이라며 줄기차게 경고하고 있다. 최근에는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전 의장마저 비트코인은 국가에 의해 제어될 것이라며 폄하했다.

경제학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비트코인 회의론자다. 비트코인은 ‘신물질’과 다름없으므로 회의론이야말로 상식적이며 건강한 태도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단정론자에 가깝다. 그들은 기술적 혁신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이 화폐와 비슷한 속성을 갖는다는 사실만 놓고 부정적으로 단정해 버린다. 이는 경제학이나 경제학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은 현생인류를 대표하는 두뇌들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블랙홀이나 양자역학에 대한 노벨상급 ‘경제학자’의 의견을 비중 있게 보도하는 것은 상식적인 행동이 전혀 아니다. 비트코인을 반사회적이며 비현실적이라고 일축했던 크루그먼 교수는 1998년에는 인터넷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팩시밀리가 미치는 영향보다 작을 것이라고 용기 있게 단언한 사람이다.

컴퓨터나 인터넷은 경제학의 발명품이 아니다. 경제학은 이런 혁신적 발명이 인간 행동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사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문이다. 최근의 숨 가쁜 기술혁신들에 대해서는 비록 후행적이더라도 이렇다 할 설명 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반성에 직면한 지도 꽤 됐다.

사담 후세인이 만든 ‘스위스 디나르’ 역설

비트코이너들은 암호화폐(crypto-currency)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가상화폐(virtual currency)라는 어휘를 고집한다. 단지 용어의 문제가 아니다. 암호화폐라는 표현에는 이 신물질이 30년도 넘은 컴퓨터 암호학의 산물이며 2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구상된 이론의 결과물이라는 역사성이 녹아 있다. 경제학자들도 비트코인의 기술적 명칭인 블록체인은 혁신이라고 인정한다. 이는 TCP-IP는 인정하면서도 인터넷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단언하는 것과 비슷하다.

비트코인을 비판하는 경제학자들은 지불을 보증하는 중앙은행이나 법적 장치의 부재를 강조한다. 경제학자들은 바로 그 논리를 가지고 ‘스위스 디나르’ 역설부터 설득력 있게 분석해야 한다.

스위스 디나르는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 연합군과 전쟁을 벌이고 패배한 1차 걸프전쟁 직전까지 공식적으로 사용되던 이라크의 화폐다. 이름과 달리 스위스와 전혀 상관이 없다. 전쟁 이후 중국의 인쇄기로 찍어낸 화폐를 사담 디나르라고 한다. 걸프전 전후 구화폐인 스위스 디나르와 신화폐인 사담 디나르 모두에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스위스라고 부르지만 이 돈은 영국에서 찍어 이라크로 들여왔다. 스위스 은행처럼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안전하다는 뜻으로 그렇게 불렸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론한다.

경제학자들은 종이 화폐가 가치가 있는 이유는 종이 화폐 뒤에 중앙은행이 있고 중앙은행 뒤에 정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스위스 디나르는 이라크 정부나 중앙은행이 사용을 금지한 이후 10년 동안(1993~2004년)이나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 화폐로 사용됐고 국경무역에까지도 활용돼 이웃 국가의 국민들도 일부 보유했다.

스위스 디나르는 공식 화폐였던 사담 디나르보다 더 강력한 화폐로 자리매김했다. 걸프전 이후 후세인 정부는 돈을 찍어내 국민들의 저축을 빨아들이는 손쉬운 증세를 선택했기 때문에 사담 디나르는 날로 가치를 잃어 갔다. 반면 스위스 디나르는 어떤 정부 기관도, 어떤 상업은행도 지불 수단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2차 걸프전 이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임시정부가 완전히 새로운 디나르를 발행해 교환해 줄 때까지 잘 쓰였다. 공식 화폐인 사담 디나르보다 무려 300배까지 가치가 올라가기도 했다.

비트코인이 물리적 실체가 없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경제학자들의 화폐론과 별 인연도 없다. 경제학자들도 화폐 자체가 가치가 있거나 실체가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류 경제학자들은 금본위주의자들이 감각적인 사물의 덫에 갇혀 있다고 비난해 왔다. 주류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추상 능력을 가진 존재이고 화폐는 집합적 추상 능력의 총화다. 화폐는 사회적 약속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강조한다.

스위스 디나르가 이런 경제학자들에게 충격인 이유는 정부나 은행 같이 신뢰할 만한 기구가 보증하지 않는데도 한낱 종이에 불과한 사물이 자생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사회적 약속을 담아 낼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추상성이라는 기준에서는 스위스 디나르는 전자적 코드로만 존재하는 비트코인과 맞먹는다. 스위스 디나르는 상품 화폐가 아닌 추상적 화폐라고 하더라도 정부나 은행의 보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다.


[돋보기] 밀턴 프리드먼이 말하는 옙섬의 돌화폐
바다에 빠져 아무도 못 보는 돌화폐가 갖는 가치

주류 경제학의 본류랄 수 있는 통화주의자들의 스승, 밀턴 프리드먼은 화폐야말로 한 발만 떨어져 보면 우스꽝스러운 인간적인 허상이라고 가르친다. 그의 책 ‘화폐 장난(Money Mischief)’은 남태평양 옙섬의 돌화폐 이야기로 시작된다.

몇 세대 전에 한 부자 가문이 다른 섬에서 깎아 만든 돌화폐를 운반하다가 폭풍을 만나 바다에 빠뜨려 버렸다. 그런데도 그 돌은 이 가문의 재산으로서 마을 사람 모두가 인정했다. 사건의 목격자들이 증언한 이후 바다에 가라앉아 보이지도 않는 돌은 섬에 있는 여느 돌화폐와 마찬가지로 거래됐다.

또 독일 식민지 관료들이 일하러 나오지 않은 원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집집마다 돌에 검은 십자가 표시를 했더니 원주민들이 슬픈 표정으로 일하러 나왔다고 한다. 일을 시키고 나서 표시를 지우자 다시 빚이 없어졌다며 기뻐했다.

프리드먼은 이들의 행위가 우스꽝스럽다면 뉴욕의 중앙은행(Fed) 지하 금고에 보관 중인 금괴에 다른 나라 소유권 표지가 붙었다는 이유로 ‘금의 유출’을 크게 보도하며 걱정하는 현대인들의 화폐관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라고 꼬집는다. 경제학의 큰 스승은 화폐의 본질이 상식을 배반하는 거대한 환상일 뿐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