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서강학파 본산’ 지암남덕우경제연구원, 24일 한국 경제상황 진단 세미나 열어
“임금 올려 성장 견인, 객관적 자료 없다”
(사진)지암남덕우경제연구원은 지난 11월 24일 '서강학파가 본 한국 경제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김기남 기자)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한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으로 문재인 정부가 밀고 있는 ‘소득 주도 성장론’은 노동자의 노동 소득을 늘리고 분배의 형평성을 제고함으로써 경제의 활력을 찾자는 이론이다.

이른바 ‘분수효과’로,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난다면 전체적인 소비가 활발해지고 그 결과 또 다른 고용 창출을 기대할 수 있게 돼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국에는 한계기업과 자영업이 많아 임금 상승이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작용을 안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해 수출에만 의존하는 성장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 소득의 증대가 소비를 진작시킬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서강대 경제학과 출신들로 구성된 한국의 대표적 시장 중심 경제학파인 ‘서강학파’는 최근 한국 경제의 방향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지속 성장, 규제 개혁 있어야 가능하다”

지암남덕우경제연구원(원장 이인실)은 서강대 남덕우경제관에서 11월 24일 ‘서강학파가 본 한국 경제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의 화두는 단연 소득 주도 성장론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소득 주도의 성장, 이른바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제안했다. 이와 같은 문 정부의 경제론은 최저임금 인상, 공공 일자리 창출, 저소득·취약계층 소득 기반 확충 등 세부 정책으로 현실화되는 중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이 한국 경제에 주는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박정수 서강대 교수는 소득 주도 성장론의 실증 근거가 미약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박 교수의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임금 상승은 개방경제에서 실업 발생과 영세 및 중소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둘째, 노동생산성 대비 실질임금과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사이에 음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지속 성장과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규제 개혁과 노동생산성의 제고를 위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소득 주도 성장론에 근거한 최저임금 인상이나 인위적 임금 인상은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부정적 영향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통계청 광업 제조업 조사 자료에 근거한 한국생산성본부 분석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지난 20년간 노동생산성 증가율과 임금 증가율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인위적 임금 인상은 도리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임금이 인위적으로 인상되면 총수요가 확대될 수 있지만 임금 인상을 수용한 국내 기업의 비용 경쟁력은 하락한다. 그 결과 기업은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돼 폐업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내 생산은 해외 수입으로 대체될 수 있어 실업까지 발생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임금 인상을 통한 경기 부양과 소득 주도 형성 장의 관련성을 뒷받침할 실증적 근거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에 대한 2000~2015년 유로스타트 자료를 통한 연구 결과다.

이 연구 분석을 통해 노동생산성에 비해 실질임금이 높을수록 경제성장과 노동생산성 증가율에 부정적 영향이 미친다는 게 밝혀졌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소득 주도형 성장론을 검토해 본 결과 이론적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정 및 누락된 중요 요소 때문에 여기에서 도출된 결론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ICT·조선 ‘UP’, 철강·자동차 ‘DOWN’

박 교수는 “지속 성장과 고용 창출은 투자와 경제 활성화를 유도하는 규제 개혁, 혁신 역량 및 노동생산성 제고를 위한 구조 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해결책으로는 우선적으로 생산성 향상, 효율성 제고, 자원의 효율적 재분배가 중요하고 기업 환경의 정상화가 선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듯이 소득 주도 성장론에 대한 기대 효과가 불확실한 가운데 다가올 2018년 한국 경제는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우선 세계 경기가 심상치 않다. 2009년 6월을 저점으로 확장 국면을 지속하고 있는 미국 경제성장이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또한 누적된 기업과 은행의 부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장률이 한 단계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한식 서강대 교수는 2018년 한국의 GDP 성장률을 2.9%로 예측했다. 이는 2017년의 3.2%(예상치)에 비하면 다소 낮은 수준이다. 이 교수는 “2018년 상반기에는 3.0% 내외의 성장률을 보이다가 하반기 들어 2.7%로 낮아지는 ‘상고하저’의 성장 패턴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력 산업의 경기 전망도 밝지 않다. 김창배 서강대 교수는 “반도체가 주도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실적 부진 탈출이 기대되는 조선업을 제외하면 철강·자동차·석유화학·건설업은 전망이 불투명하거나 부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ICT 산업은 공급 증가 요인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기 개선, 4차 산업혁명 진행에 따른 수요 증가로 당분간 호황 국면을 이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은 유가 상승, 수주 및 발주 증가, 선박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수년간 침체 국면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나머지 산업군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철강 산업은 건설투자 위축으로 내수가 부진하고 완만한 회복세에 그칠 전망이다. 자동차 산업은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의 금리 인상, 양적 긴축, 통상 압박 강화로 대미 수출이 불투명해지면서 증가세가 다소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암남덕우경제연구원은…

한국형 성장론 대표하는 ‘서강학파’ 집결지

한국형 성장론을 대표해 왔던 ‘서강학파’ 경제학자들이 2006년 고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함께 시작한 ‘시장경제연구소’가 올해부터 ‘지암남덕우경제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국내 교육기관 최초로 통계청의 마이크로 데이터센터를 유치한 지암남덕우경제연구원은 한국 경제의 마이크로 메커니즘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증진시킴으로써 한국 경제가 직면한 저성장, 일자리 문제, 구조 개혁 등 정책 이슈에 대한 실증적 근거를 제시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지암남덕우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올해는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를 겪은 지 20년이 되는 해인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