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홀몸·무직의 ‘3대 장애물’ 넘어야…현실적 해법 ‘정년 연장’뿐 (사진)일본에서는 이미 고령 인구가 소비자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스가모거리.(/전영수 교수)
[한경비즈니스=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2017년 9월 한국 사회의 주민등록 인구는 100명 중 14명이 고령으로 진입했다. 가볍게 여기기에는 속사정이 심각하다. 이는 소득이 없어 부양 받아야 할 잠재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마저 멈춰서면 전 연령대의 생활의 질이 악화될 수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기는 고령사회의 본격 진입이 위기 경고로 해석되는 배경이다. 늙어가던(ageing) 것에서 늙은(aged) 사회로 탈바꿈된 2017년은 그래서 제대로 된 미래를 준비하는 해로 삼아야만 한다.
이대로라면 2026년 100명 중 20명이 노인 그룹에 속하는(20%), 이른바 초고령사회가 예상된다.
인구 변화의 전망은 잿빛이다. 돈을 버는 현역이 줄어들고 소득이 끊긴 노인이 늘어나니 가처분소득(지출 여력)이 감퇴될 것이라는 우려다. 이론적으로는 맞다. 다만 현실은 좀 달라질 모양새다.
◆ ‘내수 불씨’ 되살리기 위한 日의 처방전
일본의 분석은 ‘고령 인구=유력 고객’의 등식에 힘을 싣는다. 2017년 5월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보면 시니어는 소비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크게 보면 전망은 암울하다. 세대별로 볼 때 고령화·홀몸화·무직화의 3대 조류가 가계 단위를 분해된다는 이유에서다. 고임금의 중·고령 베이비부머가 퇴직하면 절약된 인건비가 청년 세대로 돌아갈 것이란 기대도 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비정규직이 많고 소득까지 정체·감소되는 게 요새 청년층이다. 이들이 자연스레 늙으면 소비 시장의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요즘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확연하지는 않지만 호황의 기미가 군데군데 목격된다. 적어도 디플레이션을 탈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성장률과 취업률이 과거보다 확연하게 개선된 덕분이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져 예전의 고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만큼 가까스로 되살린 내수 불씨를 꺼뜨리지 않을 무엇인가가 절실하다. 내수(85%)가 수출(15%)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영향력이 절대적이니 방점은 내수 카드다.
한국은 대외 의존성을 낮춰 내수를 양적으로 키우는 게 과제이지만 일본은 내수 시장의 질적인 신규 창출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찾아낸 포인트가 가계 행동을 둘러싼 면밀한 수요 조사다. 즉, 단순한 인구 변화보다 이를 아우르는 최종적인 수요 지점으로서 세대의 개별 욕구에 주목한다. 세대의 구성 변화가 소비 행동에 직결된다는 게 전제다.
예를 들어보자. 과거 세대의 가계 관리는 전업 가사의 여성 배우자 몫이었다. 남편의 소비도 부인의 의향이 깊게 반영됐다. 자녀 교육비가 부담되면 부부의 소비는 제약된다. 맞벌이도 여성 경제권은 비슷하다.
가구주의 연령 변화도 소비 패턴을 바꾸는 주요 변수다. 가구 분포를 보면 전체의 46.4%가 가구주 60대 이하 가구다. 나머지 53.6%는 환갑 이상이란 얘기다.
2016년 가계 조사에 따르면 가구주의 연령이 60대 이상은 22.1%, 70대 이상은 31.5%다. ‘소비자=가구주’라면 소비자의 절반 이상이 고령자다. 환갑 이하 현역 세대 소비자는 전체의 절반에 못 미친다. 소비자의 고령화다.
주목할 것은 추세다. 환갑 이상 가구주의 비율은 2001년 37.7%에 불과했다. 15년에 걸쳐 1.4배 늘었다. 동일 기간 고령 인구도 17.3%에서 2017년 27.4%로 증가했다. 고령화로 환갑 이상 가구주 비율이 높아진 결과다.
이는 소비 정체로 연결된다. 환갑 이상 가구주의 1세대 소비지출은 22만1080엔으로 50대(26만7072엔)보다 적다. 연금 수입에 의존하기에 소비지출이 일상적이다.
고령화로 소비는 감소된다. 대단위당 소비 여력이 적은 고령화와 홀몸 및 무직 추세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별도 늘어난다. 일본은 전체 세대의 32.3%가 홀몸인데, 이 중 54.7%가 고령 가구다. 2030세대는 20%에 못 미친다. 역시 2016년 홀몸 세대의 소비지출은 15만8911엔이다. 홀몸 인구는 증가 추세다.
무직화도 소비 증가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무직 세대라고 수입이 없지는 않지만 가처분소득은 2016년 기준 공적연금을 중심으로 월 14만8776엔뿐이다. 반면 소비지출은 20만1713만엔으로 5만3000엔 정도가 적자다. 무직 세대는 38.2%에 달한다.
저축 인출이 아니면 생활이 힘들어 미래 불안과 연금 불안이 높아진다. 역대 정권이 공적연금 개혁 과제를 근본적으로 손대지 않은 것은 다수파인 고령 가구의 불안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꼼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년 삭감 조치만으로 고령 세대의 소비는 위축된다.
◆고령사회가 디플레이션을 반기는 이유
물론 현역 세대의 소득 증가가 확인되면 소비 총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아베 정권 이후 2016년까지 3년 연속 미약하지만 임금은 상승했었다. 다만 임금 인상의 효과는 희박하다. 세대 전체의 소비 감소는 장기간 지속된 소득 정체의 혐의가 짙다.
2012년과 2016년을 비교하면 소득이 늘어도 가처분소득은 줄어드는 때가 많다. 길게 봐도 마찬가지다. 2001~2016년 하위 10%와 상위 40%는 소득 감소세가 멈췄지만 중간 계층은 더 줄었다.
연소득 200만~500만 엔 계층의 소득 감소가 많은데, 이는 2000년대 50대였던 중년 세대가 2010년대 60대로 접어들며 소득이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50대 때는 정규직이었지만 60대때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경기 회복으로 임금이 올랐어도 정규직 숫자가 줄어 소득 감소는 당연한 결과다. 인구 분포로 보면 2007~2012년은 60세 이상의 급증기다.
연금 생활자를 중심으로 무직 세대의 소득을 늘리자면 물가연동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남는다. 물가 상승 후 1년이 지나서야 연금 급여가 오르기 때문이다. 되레 이 기간 동안 무직 세대는 실질소득 감소를 체감한다.
이 때문에 고령사회는 디플레이션을 더 반긴다. 디플레 경제는 무직 세대에 유리하다. 반대로 현역·기업·정부는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길게는 고령 인구도 사회보장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이 훼손돼 불안하다.
이대로라면 향후의 소비 시장은 부정적이다. 급증한 고령·무직 세대가 저축 인출이 아닌 방법으로 생활 적자를 벌충할 방안이 절실하다. 근로소득과 자산 소득을 늘리거나 가족 지원을 받는 것뿐이다.
현실적인 카드는 근로소득이 유일하다. 정년 연장과 임금 피크의 정밀한 운영으로 50대부터의 소득 감소를 방어하자는 논리다. 지금처럼 고령 직원의 임금체계를 제도적으로 떨어뜨려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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