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인하·투자세액공제·해외수익 환입 특례…‘기업 氣살리기’ 나선 미국 [한경비즈니스=박수진 특파원(워싱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법인세 인하 경쟁에 불을 붙였다. 미국 상원이 12월 2일 새벽(현지 시간) 법인세율을 35%에서 20%로 낮추는 감세안을 통과시켰다.
하원 감세안과 조정을 거쳐 대통령 자신의 서명만 받으면 미 법인세율은 내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2%) 밑으로 ‘뚝’ 떨어지게 된다.
세계경제 1위 대국 미국의 법인세 인하로 프랑스·영국·벨기에·중국·싱가포르 등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게 됐다.
◆31년 만에 이뤄진 최대 감세
미 상원은 11시간에 가까운 협상을 거쳐 이날 새벽 1시 47분에 찬성 51 대 반대 49 표차로 세제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하원과의 조정 절차와 대통령 서명을 남겨두고 있지만 관건이었던 상원을 통과한 만큼 입법을 위한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이번 세제 개편안은 미국이 수십 년간 보지 못했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크리스마스 이전 법안에 서명하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상원과 하원은 12월 4일부터 곧바로 법안 병합 심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의 감세안 처리는 다른 경쟁국들의 법인세 인하 경쟁을 불러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랑스와 영국은 현재 33.3%, 20%인 법인세율을 2020년까지 각각 25%와 17%로 끌어 내릴 계획이다. 벨기에도 33.99%인 법인세율을 내년 29%로 내릴 예정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은 법인세율 인상(22→25%)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미 상원을 통과한 감세안은 10년간 1조5000억 달러(약 1680조원)의 세금을 깎아 주는 내용을 담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여덟째 규모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감세안 이후 31년 만에 가장 크다.
법인세율 인하(35→20%)뿐만 아니라 투자 세액공제 도입(5년간), 상속세 면제 한도 확대(1인당 550만→1100만 달러), 해외 유보금 환입 특례(10% 저율 과세) 등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오바마 케어(전 국민 의료보험제도)에 포함돼 있는 의무 가입 조항을 폐지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감세뿐만 아니라 오바마 케어 폐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승부수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는 11월 2일 하원을 통해 세제 개편안을 첫 공개한 후 ‘속도전’에 들어갔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위해서는 뭐라도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감이 이들을 단합시켰다. 하원은 1주일 만에 법안을 처리했다. 상원도 별도안을 내놓은 지 보름여 만에 통과시켰다.
◆해외 기업 독소조항 논란될 듯
12월 2일 상원을 통과한 감세 법안은 하원안과 미세한 차이가 있다. 법인세율을 20%로 인하하는 것은 같지만 시행 시기를 1년 늦췄다. 소득세 최고 세율은 하원(39.6% 유지)과 달리 38.5%로 낮추지만 과표 구간은 현행대로 7구간을 유지했다.
하원안은 4단계 축소안이다. 하원은 상속세를 2025년부터 폐지하자는 안을 통과시켰지만 상원은 면제 한도를 1인당 1100만 달러로 조정하는 선에서 손질을 멈췄다.
하원안에 없는 오바마 케어 의무 가입 조항 폐지가 포함돼 있는 것도 큰 차이다. 의무 가입 조항은 오바마 케어를 유지해 온 근간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의무 가입 조항이 폐지되면 보험료가 올라가면서 2027년까지 1300만 명이 건강보험 가입 기회를 잃게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오바마 케어 폐지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던 콜린스 의원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독대한 후 “저소득층을 위한 충분한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물러섰다.
상원과 하원은 12월 4일부터 법안 병합 심의를 시작한다. 월스트리트저널과 CNBC 등은 “공화당 내부에서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며 “이를 해소하는 게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화당에서 12월 2일 유일하게 반 대표를 던진 밥 코커(테네시) 상원의원은 세수가 예상대로 걷히지 않으면 세금을 자동 인상하는 ‘트리거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버텼다.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마크 리(유타) 의원은 대안으로 법인세율 22%를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법인세율과 관련해 “양쪽(상·하원)을 섞어 아름다운 안이 나올 것”이라며 “22%가 될 수도 있고 20%가 될 수도 있다.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보자”고 상향 조정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해외 기업들을 차별하는 독소조항(poison pill)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2월 1일 상·하원 감세안의 포함돼 있는 독소조항 때문에 해외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1월 16일 하원을 통과한 세제 개편안은 ‘미니 국경세’로 불리는 해외 기업에 대한 소비세(excise tax) 조항이 들어있다. 해외 기업의 미국 내 지사 또는 현지법인이 상품 또는 서비스를 수입해 미국 내에서 판매할 때는 20%의 소비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이번에 하원안에 들어간 소비세는 미국 기업이 아니라 미국 내에서 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해외 기업들만 겨냥해 만들었다. 특히 자동차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세제를 통해 기업을 차별하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에 위반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상원 세제 개편안에는 미국 내 활동 기업이 해외 본사나 관계 회사로 거래의 대가를 지불할 때 최소 10%를 과세하는 안이 포함됐다. 이런 송금 행위를 세금이 싼 지역으로 수익원을 돌리려는 과세 회피 행위로 보고 원천과세하겠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상·하원 안에 모두 포함된 해외 유보금 환입 특례 제도도 미국에서 활동하는 해외 기업들에 불리한 세제라고 지적했다. 하원은 미국 기업이 해외에 쌓아 둔 유보금을 미국으로 들여올 때 1회에 한해 14%로 과세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지금은 35%를 내야 한다. 상원은 10% 안을 처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기업이 해외에 값싼 자금을 들여와 투자하면 경쟁하는 해외 기업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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