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커스]
-김진숙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인터뷰...“사내 성범죄는 또 다른 ‘갑질’”
-“잘못된 음주 문화 개선도 이뤄져야”
“사내 성범죄, 은밀·신속한 조치 시스템 마련 필요해”
(사진) 김진숙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서범세 기자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직장 내 성범죄와 관련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부터 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 중 하나다.

한동안 잠잠한가 싶더니 또다시 최근에 일이 터졌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몇몇 대기업에서 잇단 성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공분을 샀다. 직장 내 성범죄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김진숙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를 만났다.

김 변호사는 1993년 서울지검을 시작으로 25년간 검찰에서 재직하며 ‘열혈 검사’로 이름을 떨쳤다. 여성 검사로는 최초로 광주지검 특수부에서 일했고 초대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올해 8월 검찰을 떠나 9월부터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가 됐다. 최근 종영된 KBS 드라마 ‘마녀의 법정’에 등장하는 민지숙 부장검사(김여진 분)의 모델이 바로 김 변호사이기도 하다.

Q.최근에 사내 성추행과 성폭력 등 성범죄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갑질 문화가 화두인데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갑질에서 비롯된 사건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간 발생한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요. 직급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성희롱하거나 신입 사원이 선배 경력 직원을 성폭행한 사례가 있었나요. 아마 거의 없었을 거예요.

대부분이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죠. 반드시 청산해야 하는 갑질 문화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Q.신고한 뒤 불이익을 당한 이도 많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를 보면 피해자의 40%가 2차 피해가 두려워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노출을 꺼리는 이유는 간단해요. 노출되면 불이익이 오기 때문이죠. 최근 기사를 봤는데 어떤 회사에서는 성폭행 피해자에게 품위 손상을 이유로 징계했다는 내용이었어요.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상사한테 성추행 같은 것을 당했을 때 누구한테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피해가 접수됐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지침이 없는 기업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피해자에 대한 사실이 와전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신고 접수했는데 얼마 뒤 사내에서 피해자가 ‘평소 행실이 안 좋았다’, ‘꽃뱀 아니야’라는 등의 와전된 소문이 흘러 다니면서 오히려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얘기죠.”

Q.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내에서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은밀하면서도 피해자의 시각에서 신속하게 조사해 조치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사건이 발생하면 최우선적으로 가해자를 소속된 부서에서 배제한 뒤 빠르게 조사를 마쳐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가해자를 엄정하게 조치해야겠죠.

이처럼 신속하고 엄정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되면 이런 과정들을 바라보는 구성원들 역시 더욱 조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사내 성범죄를 줄이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겠죠.”

Q.최근 국회에서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행 근절 방안을 담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습니다.

“내용 자체에 대한 이견은 없습니다. 다만 법망이 보다 촘촘하게 이를 규제할 수 있도록 개정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인식 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행이 큰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이른바 ‘의식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예요.

이런 맥락에서 구성원의 의식을 끌어올리기 위한 사내 교육 또한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큰 틀에서 보면 학교교육에서도 이런 부분들을 강조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한국의 교육이 대학 입시 위주로 가다보니 인성 교육이 잘 안 된다는 지적들이 많아요. 또한 사내 성폭력 사건에서 등장하는 단골손님은 바로 잘못된 음주 문화예요. 음주 후 사건이 많이 발생해요. 이런 음주 문화를 바로잡는다면 사내 성범죄가 크게 줄지 않을까요.”

Q.아동 성폭행범인 조두순의 출소가 얼마 남지 않으면서 사회 전반적으로도 성범죄자들에 대한 형량이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최근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수십 건의 아동 성매매와 인신 매매 범죄를 저지른 범인에게 징역 472년이 선고됐다는 기사를 봤어요. 현재 한국도 형법이 개정돼 성범죄자들이 무기징역 외에 유기징역도 최대 50년까지 선고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중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조두순 사건만 봐도 이런 부분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죠.

한국이 아시아에서는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 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등 선진 여성 아동 관련 법제를 잘 갖추고 있는 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두순 사건처럼 법에 맹점이 있어 3년 후 출소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위험한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거주지 제한이나 성충동 약물치료의 소급효 인정 등 다양한 선진국 사례를 반영한 입법 활동을 진행해 보호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어요.”

◆김진숙 변호사 약력 : 1964년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제32회 사법시험 합격. 2005년 광주지방검찰청 순청지청 부부장검사. 2010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2011년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부장검사. 2015년 전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 2017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현).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