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감세안 처리로 자신감…더 거세지는 ‘미국 우선주의’

[한경비즈니스=박수진 특파원(워싱턴)]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프라와 복지·국제기구 개혁에도 성공할까. 1조5000억 달러(약 1620조원) 규모의 감세안 처리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핵심 국정 과제로 인프라(사회간접자본) 확충과 복지 개혁을 꼽았다.

유엔을 포함한 세계무역기구(WTO)·세계은행(WB)·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개혁도 우선순위 과제로 거론된다. 중간선거(11월)와 202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브랜드인 ‘미국 우선주의’의 성과를 빛낼 수 있는 이슈들이다.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연초 인프라 투자 계획 발표”

마크 쇼트 백악관 입법담당 수석보좌관은 2017년 12월 24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프라 개선은 트럼프 대통령의 2018년도 우선순위 국정 과제가 될 것”이라며 “1월에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낙후된 미국의 도로와 교량·공항·상수도 시설 등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10년간 정부 예산과 민간 자본을 합해 1조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취임 후 오바마 케어(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도입한 전 국민 대상 건강보험법) 폐지, 세제 개편안 처리 등에 우선순위가 밀려 추진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첫 주말에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로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지도부를 불러 인프라 투자 방안 등을 포함한 2018년도 입법 과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쇼트 보좌관이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2월 22일 세제 개편법에 서명하면서 “민주당으로부터 인프라 법안 처리 과정에서 초당적인 지원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코널 원내대표도 여러 차례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조 달러 중 2000억 달러를 정부 예산으로, 나머지(8000억 달러)는 감세 등 인센티브를 주고 지방정부와 민간 기업에서 투자받아 충당한다는 복안이다. 민주당은 정부가 예산으로 1조 달러를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쇼트 보좌관은 “분명히 두 주장 사이 어딘가에 합의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엔지니어링협회(ASCE)는 2016년부터 2025년까지 10년간 미국의 노후 공공 인프라 개·보수 및 신설에 총 3조3000억 달러가 필요하지만 예상 투자 금액은 1조8000억 달러로 최소 1조5000억 달러가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40년까지는 투자 부족 금액이 5조2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 개혁 문제는 ‘발등의 불’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선언하자 유엔은 2017년 12월 21일 이스라엘의 지위에 대한 어떤 결정도 거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찬성표를 던진 나라는 128개국, 반대는 9개국뿐이었다. 35개국은 기권했
다.

트럼프 대통령이 표결 전날 “우리를 반대하는 표를 던질 테면 던져라. 그러면 우리는 그만큼 돈을 아끼게 될 것”이라고 유엔 분담금 삭감을 경고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도 결의안에 찬성하는 회원국들의 명단(블랙리스트)을 만들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유엔 표결 후 미 강경 우파들이 즉각 반응했다.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2017년 12월 26일 월스트리트저널에 유엔 분담금 지출 삭감, 유엔인권이사회 탈퇴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 국제기구에 그 많은 돈을 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유엔 관련 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고 있다. 2016~2017 회계연도 유엔 예산(54억 달러)의 22%, 유엔평화유지군 예산(78억 달러)의 28.5%를 냈다.

현재는 국민총소득(GNI) 기준으로 분담금이 결정된다. 유엔 예산은 미국이 22%로 가장 많이 부담하고 일본(9.7%)·중국(7.9%)·독일(6.4%)·프랑스(4.9%)·영국(4.5%)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한국은 2.0%로 분담금 순위 13위다.

2018년 유엔과 유엔평화유지군 분담금은 모두 2017년보다 축소된다. 2017년 12월 24일 유엔총회에서 확정된 2018~2019 회계연도 예산은 53억9600만 달러다. 2017년보다 2억8500만 달러(3066억원) 줄었다. 헤일리 대사는 곧바로 성명을 내고 “더는 미국인의 관대함을 이용하도록 방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던진 '개혁 승부수' 통할까
◆국제기구 탈퇴·분담금 삭감 예고

미국은 2018년 유엔평화유지군 분담금도 6억 달러 정도 삭감할 방침이다.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유네스코’에서 탈퇴할 방침도 밝혔다.

일각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세계은행(WB)·국제통화기금(IMF) 등 여타 국제기구들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 소식통은 “한정된 트럼프 행정부 인력들이 다른 개혁 이슈에 파묻혀 유엔을 뺀 다른 국제기구 조직 개편 등 개혁 이슈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 개혁 문제는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2018년 중간선거를 앞에 두고 사회보장보험(한국의 국민연금)과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지원 제도) 같은 민감한 복지 이슈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공화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의회예산국(CBO)는 사회보장보험과 메디케이드, 메디케어(고령자 및 장애인 의료 지원 제도), 부채 이자 등으로 재정 적자가 확대돼 2027년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부채 비율이 91%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씀씀이가 늘어나는 데 수입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해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이다. 2017년 재정 적자는 6930억 달러로 예상된다. 2027년이면 1조4630억 달러로 늘어난다. 이때 누적 적자(공공 부채)는 25조5240억 달러로 미국 한 해 수입(27조9990억 달러)에 육박하게 된다. 쌓인 빚 때문에 원리금을 갚느라 정상적인 나라 살림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은 앞으로 10년간 1조5000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유발하는 감세안을 통과시켰다. 경제성장으로 세수가 늘고 재정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 한 나라 살림이 파탄 나는 시기가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