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아토팜·아로마티카 등 유해물질 최소화한 ‘착한 화장품’ 각광
-'마데카소사이드', '판테놀' 등 의약성분 화장품 인기
화장품 업계 판도 바꾸는 새 키워드 ‘성분’
(사진)아모레퍼시픽은 아이오페·이니스프리·에뛰드 등 각 브랜드에서 화학 성분을 최소화하고 유효 성분을 강화한 저자극성 라인을 출시했다. / 아모레퍼시픽 제공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화장품업계가 ‘성분’ 전쟁에 나섰다. 음식을 먹을 때 원산지나 재료의 안전성을 따지듯 화장품을 고를 때도 어떤 성분이 포함돼 있는지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과장된 마케팅이나 닮고 싶은 연예인을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

이 같은 변화는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에서 시작됐다. 소비자들이 직접 제품의 이력을 명확히 알고 난 후에야 구매하는 ‘체크슈머(checksumer)’가 소비 트렌드로 등장했다.

또 가습기 살균제 사건, 살충제 계란 등으로 제품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져 화학제품을 거부하는 ‘노 케미족’까지 생겨났다. 성분 안정성에 대한 우려로 소비자들이 직접 성분을 분석하고 안전성을 검증하고 나선 것이다.

◆앱·유튜버 등이 유해성분 적극 알려

화장품 성분 정보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는 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화장품을 분석해 주는 애플리케이션(앱) ‘화해(화장품을 해석하다)’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해를 만든 이웅 대표는 ‘화장품’에 초점을 맞춰 창업을 준비하던 중 성분을 둘러싼 정보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품 전 성분 분석 아이템을 만들어 냈다.

이전에는 어려운 화학 용어만 줄줄이 써져 있는 화장품 용기를 보며 어떤 성분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는지, 어떤 성분이 피부에 유해한지 알기 힘들었다. 제품을 구매할 때 사실상 브랜드 이미지나 블로거들의 리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화장품 업계 판도 바꾸는 새 키워드 ‘성분’
2013년 화해가 등장하며 화장품업계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화해는 미국 환경보호그룹(EWG : Environmental Working Group)·대한피부과의사회·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20가지 주의 성분과 알레르기 주의 성분, 성분별 안전도 등급, 기능성 성분 등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소비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결과 누적 다운로드 550만 건을 돌파했다.

화장법이 아닌 성분만 분석해 주는 뷰티 유튜버도 등장했다. 패션지 뷰티에디터 출신인 ‘디렉터 파이(피현정)’는 성분의 단점과 효능을 꼼꼼하게 짚어주고 전문적 견해로 피부 타입별 추천 아이템을 제시한다. 성분에 대한 전문적인 리뷰로 구독자 29만 명, 동영상 총 재생 건수는 2000만 회를 넘어섰다.

화해나 디렉터 파이에게 성분으로 좋은 평가를 얻은 제품은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성장할 수 있게 됐다. 백화점 1층에서 만날 수 있는 해외 명품 화장품 브랜드가 아닌 아토피나 민감성 피부를 공략한 국내 중소기업 제품들에도 기회가 열렸다.

리얼베리어·아토팜·제로이드 등의 더마코스메틱 브랜드를 보유한 네오팜은 3분기 연결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5.8%, 18.8% 증가한 115억원, 25억원을 기록했다. 네오팜 브랜드는 줄곧 화해 랭킹 상위권을 유지했고 디렉터 파이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아로마테라피를 테마로 한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 ‘아로마티카’는 화해를 통해 천연 성분을 사용했다는 점과 사용 후기가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특별한 광고도 없었고 유통 경로도 좁았지만 EWG로부터 안전한 화장품 챔피언에 선정될 정도로 제품력을 인정받았다.

◆대기업도 ‘더마’ 라인 강화
화장품 업계 판도 바꾸는 새 키워드 ‘성분’
화장품업계는 이런 변화에 따라 불필요한 위험 성분을 빼고 천연 재료와 의약 성분으로 효능을 높인 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군은 의학 성분과 화장품을 합친 ‘코슈메티컬’과 ‘천연 원료 화장품’이다. 융합연구정책센터에 따르면 ‘코슈메티컬(더마코스메틱)’의 세계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40조원에 달한다. 2017년 5000억원인 국내시장은 2020년 1조2000억원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성민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연구원은 “기업도 이전에는 천연 원료에 콘셉트를 입혀 마케팅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컸다면 최근에는 임상 시험이나 실제 효능 효과의 입증을 토대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코슈메티컬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성분은 ‘마데카소사이드’와 ‘판테놀’이다. ‘마데카소사이드’는 병풀로 알려진 식물(센텔라 아시아티카)에서 추출된 성분으로 상처 치료제 ‘마데카솔’의 주원료다. '시카크림'이라고 불리는 마데카소사이드 화장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출시되며 화장품 시장을 점령했다.

뷰티 앱 화해에 마데카소사이드가 함유된 화장품을 검색하자 총 823개 제품이 등장했다. 의약 분야에서 습진이나 상처·피부염 등의 보조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판테놀이 함유된 제품은 1만4086개에 달했다.

‘더마’와 ‘천연’을 정체성으로 삼은 중소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도 ‘코슈메티컬’ 라인을 강화하며 시장 대응에 나섰다. 아모레퍼시픽은 아이오페·이니스프리·에뛰드 등 각 브랜드에서 화학 성분을 최소화하고 유효 성분을 강화한 저자극성 라인을 출시했다.

특히 2017년 선보인 에뛰드하우스의 순정 라인은 천연 유래 성분을 90% 이상 함유하고 판테놀·마데카소사이드를 함유했다. 아이오페의 ‘더마 리페어’ 라인도 출시 5개월 만에 약 15만 개 이상 판매를 기록했다.

LG생활건강은 2013년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더마리프트’를 내놓은 이듬해 CNP차앤박화장품의 지분을 인수했고 2017년 태극제약을 인수하며 더마코스메틱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더마리프트는 2016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약 22% 성장했고 CNP차앤박화장품은 LG생활건강에 인수된 뒤 2015년 321억원, 2016년 52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손 연구원은 “앞으로는 의약 성분이 더욱 강화돼 성형시술에 쓰이는 히알루론산 필러 성분이나 보톡스 원료를 이용한 화장품 개발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